[이달의 고전] 1월 『금각사』 함께 읽어요

D-29
미조구치가 태어난 곳은 마이즈루 동북쪽, 일본해로 튀어나온 쓸쓸한 곶이라고 해서 마이즈루시가 어딘지 찾아봤는데요. 교토부 북쪽에 있는 항구 도시라고 합니다. 저는 미조구치의 고향이 금각이 있는 교토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라는 감각으로 읽었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미(美)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골의 소박한 승려였던 아버지는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만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 것이 된다.
금각사 (무선) 34,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나는 그 사건을 통해서 단숨에 모든 것들에 직면했다. 인생에, 관능에, 배신에, 증오와 사랑에, 모든 것들에.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숭고한 요소를 내 기억은 고의로 부정하고 간과했다. p.17 밤하늘의 달처럼 금각은 암흑지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꿈꾸는 금각은 그 주위로 몰려드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답고 가냘픈 기둥의 구조가 안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발하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이 건축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더라도 아름다운 금각은 잠자코 섬세한 구조를 드러내 보이며 주위의 어둠을 참고 견뎌야 한다. p.33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금각이라고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말입니다.
금각사 (무선) p.45,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첫 장부터 묘사와 서술의 완급 조절이 탁월합니다. 우이코와 탈영병의 죽음을 목도하는 구절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자세했다가 간단해지고, 열렬했다가 차가워지는 기술이 좋습니다. 세부 묘사의 날카로움은 말할 것도 없이 일류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너무 세련되다 보니 연출된 상황이라는 작위성을 지울 수 없기도 합니다. 제가 유미주의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에 가지는 편견 중 하나입니다. 1장에서의 경우 화자가 주로 구경꾼 역할에 머무는 점도 한몫합니다. 화자는 우이코와 탈영병의 죽음으로부터, 첫 마주한 금각사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철저히 유리되어 있습니다. 관계가 없다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화자와 엮이는 이유는 화자가 이들을 자신의 자아가 각성하는 계기로 수단화하기 때문입니다(물론 이는 <금각사>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소설이 벗어날 수 없는 혐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각사>를 읽을 때 묘하게 소름 끼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바로 그런 지점에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금각사>를 읽는 이유라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제 1장 시작입니다. 금각사를 오래 전에 읽어보았고 간만에 다시 읽어 보네요. 1장에서는 주인공의 성격 형성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작가의 세심함이 눈에 띄네요. 우이코에 대한 서술도 기억에 남구요. 저 나이 또래 소년에게는 아름답고 순결한 여성에 대한 동경이 금각에 대한 동경과 대등할 정도로 중요하게 자리잡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이코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증오하는 마음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읽고 다시 부지런히 감상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1장을 읽으면서 금각사=단검=우이코가 모두 주인공에 손에 닿지 않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읽혀서 이런 것들이 잘 짜여져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도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나깨나 나는 우이코가 죽기를 바랐다. 내 수치의 입회인이 없어져버리기를 바랐다. 증인만 없다면 지상에서 수치는 근절되리라. 타인은 모두 증인이다. 그러나 타인이 없으면 수치라는 것도 생기지 않는다.
금각사 (무선) p.21,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배신행위로 인해 드디어 그녀는 나까지도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 순간에야말로 내 것이다.
금각사 (무선) p.28,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 이후의 그녀는 온 세상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고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단지 애욕의 질서에 굴복하여 한 남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금각사 (무선) p.28,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책을 펼치기 전에는 따분한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문장을 섬세하게 잘 써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주인공 미조구치의 성격과 외모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나타난 것 같아요.
그렇기에 모든 것은 금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금각의 미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금각사 (무선) p.31,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금각이라고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말입니다.
금각사 (무선) p45,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 48~78쪽
나는 단지 그 낙하를 기다렸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낙하를.
금각사 (무선) 72,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시체는 다만 보여지고 있었다. 나는 다만 보고 있었다. 본다는 것, 아무런 의식도 없이 평소 하고 있는 대로 본다는 것이 이토록 살아 있는 자의 권리의 증명이며 잔혹함의 표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참신한 체험이었다.
금각사 (무선) p.50,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나는 놀랐다. 시골의 거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이런 종류의 다정함을 몰랐다. 나라는 존재로부터 말더듬 증세를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나일 수 있다는 발견을, 쓰루카와의 다정함이 가르쳐 주었다.
금각사 (무선) p.66,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아버지의 죽음과 쓰루카와라는 친구의 등장, 육군 사관의 이별의식이 주요 사건으로 등장했습니다. 미조구치의 의식 속에서 금각은 '현상계의 덧없는 상징'이다가, 곧 나처럼 폭격을 받아 사라질 존재, 즉 나와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금각에 대한 미조구치의 생각 변화가 계속 이어지는데 주목하게 됩니다.
2장 앞 부분에 시골 주지의 죽음과 단가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단가가 무엇인가 찾아보았는데, 단가 제도는 일본인 모두가 사찰에서 장례와 제사를 치르도록 강제한 제도라고 합니다. 그들의 사후를 위탁받은 사람이라는 문장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절이 계속 등장하니, 일본의 불교 문화에 대해서 알면 작품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기도 하네요!
여자의 하얀 가슴과 그 가슴에서 나온 하얀 젖을 마시는 군인. 이 장면은 예전에도 기이하다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기이하군요. 사귀는 사이라면 굳이 젖을 찻잔 안에 담아 마셔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기묘한 장면이 어쩌면 주술적인 의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충분히 더 에로틱한 장면으로 빠질 수 있음에도 군인이 찻잔에 든 젖을 마시는 것으로, 그리고 여자가 젖을 짜는 모습을 주인공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으로 처리하면서 절대적인 미에 지저분한 것이 들러붙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저마 1장에서는 우이코, 2장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라니. 작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아름다운 여인이 빠지지 않는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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