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고전] 1월 『금각사』 함께 읽어요

D-29
4장에서 미조구치는 대학에 진학하고, 안짱다리 가시와기라는 친구를 사귑니다. 미조구치와 쓰루카와를 자신의 양화라고 여기는 것과 반대로 가시와기는 흔히 말하는 '나쁜 친구'인 것 같아요. 앞장에서 나왔던 여자의 배를 밟은 사건의 의미가 미조구치의 입을 통해 선명해집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5장 158~194쪽
시대적 맥락으로만 <금각사>를 바라보는 것은 작품의 여러 매력과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금각사>의 전형성 중에는 독문학의 교양소설을 비튼 듯한 느낌도 있는데 4, 5장이 그렇습니다. 교양소설이 도덕적인 인물로 어떻게 살지를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금각사>는 도발적이게도 삶을 거부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여기에 걸맞게 화자는 좀 자기 삶이 없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얘는 왜 제 삶이 없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주어진 배경이 있을 뿐이고, 부재하는 삶을 채워주는 건 금각의 환상입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주장하고픈 교양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덕이 위선에 불과할 때 그 껍데기 아래서 도리어 사람을 진정으로 살게 만드는 건 타인에의 가학적인 추동과 머릿속 환상을 향한 집념이라고요. 숫제 내용이란 없고 오직 콤플렉스 뿐인 삶이 어쩌면 우리와 결코 멀지 않으며 그 구체성이 이러함을 낱낱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숙집 딸을 안으려는 순간 나타난 금각의 환영이라니....절대적인 미와 현실이 양립할 수 없다는 주인공의 믿음이 참...금각을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금각이 붕괴되기를 은근 기대하는 주인공의 양가적 감정이 세심하게 그려진 장이었습니다. 미에 감싸이고 싶다면 인생에 손을 뻗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금각을 숭배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영원보다는 실제적인 인생을 만지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럼에도 가시와기는 뒷면에서 인생에 도달하는 어두운 샛길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친구였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파멸로 돌진하는 듯 보이면서도, 의외의 술수에 능하기에 비열함을 그대로 용기로 바꿔 우리들이 악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금 순수한 에너지로 환원시키는 일종의 연금술이라 해도 좋았다.
금각사 (무선) p. 180,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를 잃고 나서 지금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나와 밝은 대낮의 세계를 잇는 한 가닥의 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끊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금각사 (무선) p. 186,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이상한 일이다. 나는 허무와도 연대감을 지니지 못했다.
금각사 (무선) 190,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이 무렵부터 금각에 대한 나의 감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겨난 것 같다. 증오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내부에 서서히 싹트고 있는 것과 금각이 결코 서로 용납되지 않는 사태가 언젠가 오고야 말리라는 예감이었다.
금각사 (무선) 191,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를 잃고 나서 지금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나와 밝은 대낮의 세계를 잇는 한 가닥의 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끊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금각사 (무선) p. 186,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5장에서는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미조구치가 여성과 관계를 맺으려합니다. 여성과의 관계 마다 금각이 등장하는데요. 주인공이 콤플렉스를 가진 대상이 자연스럽게 겹쳐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쓰루카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미조구치는 더욱 심한 고독을 느낍니다. 그의 말마따나 쓰루카와는 미조구치의 어두운 삶과 대비되는 밝고 투명한 세계인데요. 미조구치에게 쓰루카와가 계속 곁에 있었다면 이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겠네요. 그래서 그가 적절한 타이밍에 작품에서 퇴장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요...
그때 쓰루카와의 눈에 비친,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슬픈 빛을, 훗날 나는 얼마나 심하게 후회하며 되새겼는지 모른다. 167p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6장 196~224쪽
익히 알려져 있듯 『금각사』가 단편적인 일화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다 중후반부에 접어들며 서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구체적인 방향을 가지게 되는데, 6장은 본격적인 트위스트가 발생하는 부분입니다. 전체를 두고 6장을 보면 여기에는 금각과 제 앞날에 대한 암시도,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관한 화자의 고집스런 집념들도, 일부 외삽된 것처럼 보여지는 환상과 미에의 교환 불가능한 추구도 담겨 있어, 앞뒤의 내용을 잘 압축하고 있는 장처럼 보이기도 해요.
또다시 나타난 금각의 환영이라....마치 금각이 의지라도 있는 것처럼 6장에서 등장하고 있네요. 금각 외에는 어떠한 미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상황은 주인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까요. 마지막에 금각을 저주하며 금각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이제 금각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다음 장부터 달라지게 되는 걸까요?
음악만큼 생명과 유사한 것은 없었고, 똑같은 미라 하더라도 금각만큼 생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을 모욕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미는 없었다.
금각사 (무선) p.20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조그만 도둑질이 나를 쾌활하게 만들었다. 가시와기와 관련될 때면 언제나 우선 조그만 배덕이나 조그만 신성모독 혹은 조그만 악이 동반되어, 그것이 반드시 나를 쾌활하게 만들었으나, 그러한 악의 분량을 점차로 늘려간다면 쾌활함의 분량도 그에 따라서 한없이 늘어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금각사 (무선) p.207,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6장에서는 가시와기와 미조구치의 퉁소 연주나 '남전참묘'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각자의 미의식이 드러나는데요. 가시와기는 '인식'을 상징하는 인물이면서, 위악적인, 어둠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주인공의 금각에 관한 집착이 점점 선명해지는 장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7장 226~277쪽
7장에서는 주인공이 금각만이 미를 점유하고 그 밖의 것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야기 하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악은 가능할까?' 그리고 그 후 노사의 행동을 통해 이 질문을 자신의 내부에서 계속 증폭시켜 나갔던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미조구치는 출분을 해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에서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는 상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쯤 되니 미조구치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복잡했을지 이해가 될 듯도 싶네요. 한두번도 아니고 여자를 안을 때마다 나타나는 금각으로 인해 미조구치는 현실로 스며들기 어려운데 노사는 존경받는 주지로서 현세에 초월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실 돈이나 여자같은 현실의 단물은 다 빨고있고...혈색 좋고 따뜻한 시체라는 표현이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가 무섭다기보다 혐오스럽다고 표현하는 미조구치의 말이 결국은 금각의 방화와 연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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