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고전] 1월 『금각사』 함께 읽어요

D-29
익히 알려져 있듯 『금각사』가 단편적인 일화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다 중후반부에 접어들며 서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구체적인 방향을 가지게 되는데, 6장은 본격적인 트위스트가 발생하는 부분입니다. 전체를 두고 6장을 보면 여기에는 금각과 제 앞날에 대한 암시도,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관한 화자의 고집스런 집념들도, 일부 외삽된 것처럼 보여지는 환상과 미에의 교환 불가능한 추구도 담겨 있어, 앞뒤의 내용을 잘 압축하고 있는 장처럼 보이기도 해요.
또다시 나타난 금각의 환영이라....마치 금각이 의지라도 있는 것처럼 6장에서 등장하고 있네요. 금각 외에는 어떠한 미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상황은 주인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까요. 마지막에 금각을 저주하며 금각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이제 금각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다음 장부터 달라지게 되는 걸까요?
음악만큼 생명과 유사한 것은 없었고, 똑같은 미라 하더라도 금각만큼 생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을 모욕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미는 없었다.
금각사 (무선) p.20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조그만 도둑질이 나를 쾌활하게 만들었다. 가시와기와 관련될 때면 언제나 우선 조그만 배덕이나 조그만 신성모독 혹은 조그만 악이 동반되어, 그것이 반드시 나를 쾌활하게 만들었으나, 그러한 악의 분량을 점차로 늘려간다면 쾌활함의 분량도 그에 따라서 한없이 늘어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금각사 (무선) p.207,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6장에서는 가시와기와 미조구치의 퉁소 연주나 '남전참묘'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각자의 미의식이 드러나는데요. 가시와기는 '인식'을 상징하는 인물이면서, 위악적인, 어둠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주인공의 금각에 관한 집착이 점점 선명해지는 장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7장 226~277쪽
7장에서는 주인공이 금각만이 미를 점유하고 그 밖의 것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야기 하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악은 가능할까?' 그리고 그 후 노사의 행동을 통해 이 질문을 자신의 내부에서 계속 증폭시켜 나갔던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미조구치는 출분을 해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에서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는 상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쯤 되니 미조구치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복잡했을지 이해가 될 듯도 싶네요. 한두번도 아니고 여자를 안을 때마다 나타나는 금각으로 인해 미조구치는 현실로 스며들기 어려운데 노사는 존경받는 주지로서 현세에 초월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실 돈이나 여자같은 현실의 단물은 다 빨고있고...혈색 좋고 따뜻한 시체라는 표현이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가 무섭다기보다 혐오스럽다고 표현하는 미조구치의 말이 결국은 금각의 방화와 연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장 280~314쪽
쓰루카와는 미조구치보다 선한 사람, 가시와기는 미조구치보다 악한 사람으로 보이는데요. 알고보니 쓰루카와와 가시와기가 친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것은 선과 악은 자신 내면에 항상 존재하고,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쓰루카와 (선)이 죽으면서 미조구치의 내면에는 악만 남습니다. 또한 미조구치는 가시와기 (악) 와 친하게 친하게 지내는 것을 선택합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력에 이끌린 거죠. 선과 악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조구치에게 금각을 불태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의 입을 통해 계속 설명이 됩니다. 미조구치는 다시 교토로 돌아왔지만 당장 일을 실행하지는 않는데요. 1950년 지상의 불안을 느끼면서, 과거의 불안과 현재의 불안을 연결해보려 합니다. 가시와기는 미조구치가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쓰루카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가시와기는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인식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미조구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미조구치가 어떤 행위를 하고야 말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장이었네요...
8장에서는 세계를 변모시키는 것이 인식이냐 행위냐의 토론을 즐기는 미조구치의 모습이나 미라는 것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원수라는 그의 말을 통해 혼란스럽던 미조구치의 정신상태가 어느정도 정리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자는 주인공이 금각을 불태울 수 밖에 없게 되는 밑밥을 성실하게 주욱 깔아 왔지만, 이번 장에서는 확실히 그 밑밥을 크게 떼어 던지는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9장 316~342쪽
이 장에서 미조구치는 방화 준비의 일환으로 동정을 버리러 갑니다. 미조구치의 내면에서 방화 전에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우이코 사건으로 촉발된 감정이 아니었나 싶네요. 미조구치는 이제 절에서 추방될 일만 남았다고 여기는데요. 우연히 니와즈메 자세를 한 노사를 목격하고, 오히려 방화의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그리고 또 방화를 서두르게 된 결정적 계기, 한국 전쟁이 발발합니다.
어떠한 부패에도 침범당하지 않고 살그머니 따뜻하게 분홍빛으로 번식하는 살
금각사 (무선) p. 317,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이미 죽어버린 우이코와의 실재하지 않았던 황홀한 잠자리를 상상하며 현실 세상의 창녀와 가지는 잠자리는 그다지 황홀하지 않았죠. 심지어 유이코의 대타였던 마리코는 파리가 앉을 정도로 부패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걸 보아 미조구치는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그가 꿈꾸었던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9장은 우이코에 대한 비틀어진(?) 미조구치의 집념과 세상에 대한 그의 허무감이 크게 느껴지는 장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0장 344~376쪽
6장부터 10장까지 다 읽었습니다. 사건과 결말을 향하여 가능성을 좁혀 나가는 구간입니다. 본격적인 발동이 의외로 느리다는 생각이 드네요.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전에는 못 느낀 개인적인 불만이 꽤 있습니다. 취향 차이겠지요. 설명과 내면의 독백이 좀 줄었으면(아니면 아예 3인칭으로), 그리하여 분량이 더 짧았더라면 현재의 구성을 지금보다 훨씬 짜임성 있게 유지하면서도 더 담백하고 간결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이 소설만의 고유성을 깎아 하나의 전형으로 만드는 패착이겠죠. 하여튼 <금각사>가 작가 나이 30대에 쓰였다는 것이 와닿았습니다. 능숙하고 완연하지만, 너무 도취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한 실제 사건의 해설에 머무르는 부분도 크게 느껴집니다. 맨 마지막 두 문단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이 그래도 좀 위안이 됩니다. 재독에서는 여러 모로 죽음과 에로티시즘의 관계 맺음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바타유의 소설들이 떠오르는데, 좀 다르기는 합니다. 금각은 제겐 그렇게 절대적인 미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화자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금각은 죽음을 극복하는 행위의 명분입니다... 너무 뻔한 시선일까요? 미시마의 초기작 <사랑의 갈증>이 떠오르는 면모도 있습니다. 근데 두 소설 모두 시작은 참 좋은데 뒤에 가서 미진했다는 인상이기는 하네요. 제 생각에 그 두 소설은 끝까지 안 갔습니다.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 멈춘 느낌. 아무리 전반적으로 묘사와 서술의 구체성이 치밀하고 미적이어도 결국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범상한 겁니다(예컨대 영화로 치면 히치콕이나 박찬욱 감독 작품들도 참 그렇지 않나요?) 참 희한하지요. 저 같은 불평쟁이는 미적인 작품에서 가장 범상한 부분을 꼭 찾아냅니다(반대로, 미적이지 않다고들 하는 작품에서 미를 느낄 때가 저는 많습니다.) 하여튼 그럼에도 이 소설은 시대를 문학적인 방식으로 증언한다는 점에서 고전의 무게감이 있습니다. 결국 제가 느끼는 불만들도 또 고전의 관점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요.
결말에서 금각사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금각사와 자신을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금각사를 태워보니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마지막 장에서는 금각에 불을 지른 구체적 과정을 보여줍니다. 미조구치는 금각에 불을 지르고 금각에서 죽으려 했으나, 빠져나와 산 정상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살아야지 생각하는데요. 결말은 각자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읽었기 때문에, 인식의 세계에서 행위의 세계로 넘어온 주인공이 당연히 앞으로 살아갈 날만 남지 않았는가...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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