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감정선 따라 읽기] 2. 희랍어 시간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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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풍경들은 오직 내 눈동자 속에만 기록되었다. 어차피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 들은 귀와 코와 얼굴과 손에 낱낱이 새겨졌다.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고독한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의 눈. 진지함과 장난스러움, 따스함과 슬픔이 부드럽게 뒤섞인 눈. 무엇이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일다나 들여다보겠다는 듯, 커다랗게 열린 채 무심히 일렁이는 검은 눈.
희랍어 시간 35p., 한강 지음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눈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물들의 상이 맺히고 그녀가 걷는 속력에 따라 움직이며 지워진다. 지워지면서, 어떤 말로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다.(p.75)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희랍어 시간 p.49, 한강 지음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 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희랍어 시간 p.21, 한강 지음
내 눈이 멀게 된 두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p48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p51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 주문처럼 그 문장이 반복되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잠시 부풀어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p52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 1장 첫 문장). 화자는 "그 '서슬 퍼런' 칼날이 , 만년의 보르헤스와 세계 사이에 길게 가로놓였던 실명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라고 적는다. 나와 너, 나와 세계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 다다를 수 없는 무엇이 있겠지.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밝고 진해진 정적이 어둑한 항아리 같은 몸을 채웠다.
희랍어 시간 p.19, 한강 지음
그렇다면 나의 신은 선하고 슬퍼하는 신이야. 그런 바보 같은 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다면, 어느 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버리고 말걸.
희랍어 시간 p.47, 한강 지음
처음의 침묵이 출생 이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침묵은 마치 죽은 뒤의 것 같다.
희랍어 시간 2 침묵, 한강 지음
말이 흘러나왔던 길에 바늘 자국을, 핏자국이라도 새겨뒀더라면.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희랍어 시간 2 침묵, 한강 지음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희랍어 시간 5, 한강 지음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희랍어 시간 7 눈, 한강 지음
세계는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잠시 부풀어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희랍어 시간 7 눈, 한강 지음
그 여자의 침묵에는 두려운 데가, 어딘가 지독한 데가 있었어. 오래전, 죽은 삐비의 몸을 하얀 가제 수건에 싸려고 들어올렸을 때...... 우리가 얼어붙은 숟가락으로 파낸 작은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꼈던 정적 같은. 상상할 수 있겠니.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희랍어 시간 9 어스름, 한강 지음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변화에 대해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희랍어 시간 11 밤, 한강 지음
질끈 감은 눈꺼풀에 힘을 준다. 눈을 감았으므로 보이지 않는다. 반짝이는 육각형의 커다란 결정들도, 깃털 같은 눈송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짙은 보랏빛 바다도, 흰 봉우리 같은 빙하도 안 보인다.
희랍어 시간 11 밤, 한강 지음
모든 사물의 몸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와, 방금 잠이 씻긴 두 눈 속으로 기적처럼 스며들어오는 새벽. p72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올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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