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감정선 따라 읽기] 4. 채식주의자

D-29
희미하지만 힘이 있는,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웃음이었다.
채식주의자 pp.123-124, 한강 지음
역시 그는 안 된다. 그렇다면 누구? 누구에게 그녀와 섹스하게 할 것인가.
채식주의자 p.139, 한강 지음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보다 더, 화자의 화법에 빠져들기 쉬운 구간인 것 같아요.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가끔이라 할지라도) 잔인한 평가를 하는 사람은 보다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잖아요. ‘저 사람이 그래도 기준은 확실한 사람이야.‘ 같은 평가를 하게 되는거죠. 139쪽 들어서는 그 환상 같은 인상이 깔끔히 벗겨지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영혜를 욕망하고 지배하고자 하는구나.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지배 당하는 생물로서 인고해야하는 폭력과 그 생물이 재생산하는 폭력‘을 보여주었다면, <몽고반점>의 영혜는 ‘대자연으로 숭배 받으면서도 또 개척 당하는 자연‘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자연 경관! 여기에 아파트를 지으면 대박이겠군!하는 모습이요.
폭우에 잠긴 숲은 포효를 참는 거대한 짐승 같다.
채식주의자 p.182, 한강 지음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채식주의자 p.231, 한강 지음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채식주의자 p.237, 한강 지음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채식주의자 p.242, 한강 지음
다 읽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인혜의 삶에 떠올리는 질문이 약간 허망하기도 합니다. 사건은 벌어지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 와중에 내가 선택해서 내가 이끌어갈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선택지 하나를 누르면 돌이킬 수 없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삶일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인생을 그저 주어지는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태도, 죽어있는 채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채식주의자>를 읽고 무엇을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을까,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으로는 내가 저지른 폭력, 묵인한 폭력, 그리고 저지를 폭력의 무게를 인지하고 그 경중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듭니다. 그 무게만큼은 조절하겠다는 태도보다는 그 무게를 알고 있고 무언가 해보려 했다는 시도만으로 살아있음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왠지 지금 나이에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정말 주옥같은 코멘트에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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