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철학자가 규정하기를 관용은 모종의 멸시를 함축한다고, 상대가 얼간이임을 알더라도 그저 용인하는 태도에는 냉소와 방임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와 기름』 59p, 단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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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서가
기한이 명시되지 않은 최후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피와 기름』 단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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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서가
“ 돈의 권세에 합류하는 순간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돈은 인간성의 표현이므로 원죄의 등가물이라는 겁니다. 자율성과, 좋고 나쁨을 분별하여 사랑하는 마음과, 풍부한 욕망 같은 가치들이 돈을 타고 흐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고삐가 풀리는 순간부터 몹시도 인간적이며 자율적인 방식으로 비인간성과 부자유를 강요하게 되지요. 이러한 모순적인 굴레가 세계를 옥죄고 무너뜨립니다.
”
『피와 기름』 단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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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서가
“아니야. 온 세상 사람한테 투표 받을 게 아니라면 이런 건 혼자 결정하는 게 맞아
『피와 기름』 단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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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서가
“ 사람은 오직 실체만을 알아보는 상태로 태어났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추상과 이상이야말로 실체를 규정하는 요인임을 깨닫게 된다. 이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어디에도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써 허상과 실체를 바꿔치는 기예다. 따라서 믿을 사람이라면 기적을 보기 전에 이미 믿으며 믿지 않을 사람은 무엇을 목격하든 삿된 생각을 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