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인간 세계의 운명을 인간 이외 존재들의 세계와 분리하려 애쓰며 나아가던 우리는 바로 그 위협들 앞에서 별안간 멈춰 서게 되고, 비로소 생물학적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바로 자연은 우리 없이도 잘 지내리라는 현실을.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어떤 문화에 속한 이든 지혜로운 사람들이라 해도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한 형이상학적 가정을 철두철미하게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다른 민족들을 이끄는 설화들이 펼쳐질 때 꼼꼼히 귀 기울이는 일도, 또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축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를, 사실과 은유를 제대로 분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문화 안에서 살고 있든 우리만 옳다고 고집한다면, 따라서 우리가 보통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에 관해 논의할 마음도 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느 것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계속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바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치명적 숙적이 될 가능성만 더욱 커질 뿐이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사람들이 각자 떨쳐내려 기도하거나 소망하거나 노력하는 외로움의 무거운 짐은 사랑하지 못한 결과다. 사랑의 실패는 사람들이 각자 털어내려고 기도하거나 희망하거나 노력하는 인간의 무거운 외로움을 보여줄 뿐이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저자가 페르난데스베이 아래쪽에 서 있다는 콜럼버스 기념비로 헤어쳐가며 세상의 모든 불의한 것들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권정생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마지막까지 이땅의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은 어떡하냐고 걱정하셨던 모습...
나는 아무 의심 없던 그 순진한 남자아이를, 세상을 알고 싶고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곳보다 더 멀리 헤엄쳐 나가고 싶은 욕망에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그 아이를 되돌아본다. 그 아이가 바로 그렇게, 자기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언제나 무언가를 찾으려 하며 인생을 살아가게 되리라는 걸 나는 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르는 소명이라는 것을 아이가 이해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야 할 것이다. 혼돈을 마주할 때 때로 우리는 자신이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 일관성이라고, 우리가 살면서 한 모든 경험의 조각들을 의미 있는 전체로 짜 맞춰주고 계속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줄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일관성을 찾는다면 우리를 따라다니는 불안 중 일부에서나마 벗어날 거라 기대하면서.
호라이즌 53,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렇게 조금씩 다른 모습들은 내게 당시 중국 진나라 진시황의 궁궐 근위대의 경직된 사회 조직 안에서도 관용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또 아마 그렇게 오래전의 중국인들은 질서를 확립하려는 모든 성공적 시도에는 다양성이 필수적 요소임을 알았으리라는 것도.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 물건들은 나에게 여전히 통렬한 매력을 발휘하고, 침묵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생명의 다양성, 태곳적 지구의 돌로 된 살갗, 인간 행동의 치명적 폭력성, 점점 더 무용한 것이 되어가는 현대의 전쟁. 이 물건들에 눈길을 주는 것은 내가 이런 것들을 곧잘 잊어버린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 탄피들은 나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정서에 관해, 이렇게 외딴 곳에 있는 황량하고 사실상 아무도 점유하지 않는 땅을 식민지화하려는 현대국가의 집요함에 관해, 인류가 정치적 신념을 강력하게 고수하고 폭력적으로 행사하는 일에 보이는 열성에 관해 도발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라이즌 P.73,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자기 가족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 먹을 것이 물범 고기든 자루에 든 곡식이든 아보카도 과육이든, 죽음이 생명을 공급하는 방식에 관한 불편한 질문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여기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이 범하는 죄를 직시하는 일, 자신의 일족이 계속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른 생명을 빼앗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우리는 그런 일을 명령한 자들을 규탄하고 그 정책을 수행한 자들을 비난하며 그들을 비인간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인간다운 행동이다. 우리가 그 어둠이다. 우리가 빛이기도 하듯이.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나는 침대에 누워 내가 느꼈던 격분이 정말로 역사 때문에 불타오른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무력함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 결과였는지 생각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인간의 다양성을 계속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바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치명적 숙적이 될 가능성만 더욱 커질 뿐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오랫동안 나는 우리 대부분이 찾고 있는 것이, 창피해하지도 않고 비판이나 보복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을 표현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갓 지구가 형성되고 난 후의 그 태곳적 돌을 마주한 기분은 어땠을지.. 우리 인간은 이 Hadean zircon이 있던 Hadean Eon(명왕누대)과 지구 역사의 가장 반대쪽 끝인 Phanerozoic Eon(현생대)에 아주 잠시 살아왔을 뿐인데 그 인간이 만든 페트라나 마추피추 등의 고대유적을 보고 한없이 제 자신이 얼마나 유한한 우주의 찰나인지 실감했던 과거의 제가 우습네요.
한때 매일 직장에서 고통이나 죽음을 곁에서 보고 살아가며 인간의 생명은 정말 찰나같이 느껴져서 예전에는 죽음이야 말로 인생이 바라보는 수평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다소 비관적이죠? 가장 패기가 넘쳐야했던 20대에 그런 생각에 빠져 살았다니;;)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더 멀리 헤엄쳐 나가는 수평선이 될 수 있는데.. 당시 저는 죽으면 남기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해서 여행은 많이 하고 방황도 많이 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며 기념품은 물론 사진도 안 찍었어요. 어쩌면 새폴스키가 말했던 너무 극심한 공감은 아픔으로부터 눈을 감고 싶게 만들 수 있다는 위험을 실감했던 시기여서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도 전혀 소유하고 싶지 않았고 제 미흡한 사진 실력으로 포착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세상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덫'에 걸린 채 절망으로 내몰리지 않았던 작가의 글을 보며 저 또한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느껴지네요. 어찌 보면 그 모든 방황 속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그런 생각이 아닐까요.
@borumis 님의 댓글을 읽고 생각이 깊어집니다. 저 또한 삶의 의미를 꾸준히 찾아가기에 더 와닿기도 했고요. 여러 곳을 여행 다니시면서 기념품은 물론 사진도 찍지 않았다는, 미흡한 사진 실력으로 포착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말씀이 눈에 콕 들어오는데요. 뜬금없는 전개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난주에 김환기 미술관을 다녀왔어요. 김환기 화백의 여러 작품을 가만히 보면서 압도적으로 시선을 끄는 경이로운 작품도 많았지만요. 유독 제 발길이 머물렀던 곳은 연필로 낙서처럼 스케치해놓은 작품들이었어요. (본)작업에 들어가기 전 습작 같았는데 이걸 전시해뒀다는 것도 새롭고, 괜히 친근감이 들더라고요. 저도 @borumis 님 말씀처럼 제가 만든 무언가가 '미흡하다'여겨지면 그걸 과감히 찢어 버리거나 보관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이게 웬 낙서람?' 이러면서요(아 그림은 아닙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 하나하나가 다 추억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지나온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도 전혀 소유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대해서도 가만가만 공감해봅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혹은 인생의 어떤 덧없음이 느껴지면, 그 시기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던 때가 있었어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느끼지 못하고, 감사한 걸 감사하다 여기지 못하던 지독한 시기요. 지금은 삶의 태도를 달리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또 그런 시기(방황하고 넘어지는)가 찾아올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게 다 인생이 아닌가 싶고, 그 시기에 제가 가진 생각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게 삶인 것 같고... 일단 부지런히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쿠스코를 보러 갔을 때 저희는 워낙 여행하면서 기념사진을 잘 안 찍어서 카메라를 안 갖고 다니는데 (그 당시는 폰카도 없었으니) 예쁜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사진을 찍히고 돈을 받기를 바라더라구요. 저흰 어차피 사진 찍을 생각도 없어서..;;; 그냥 코카 티나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목걸이나 팔찌 등을 사줬지만.. 제게는 그다지 의미없는 기념품이나 사진이어도 어찌보면 그들에게는 절실한 수입인 것 같아서 미안했던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여행다니다 찍은 게 다음날 마추피추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는데 남동생이 하드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다 사라졌습니다. 하하하. 뭐 인생이 그런 거죠. 어차피 사진 찍은 거 다시 보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저도 제가 낙서처럼 스케치 해놓고 별 것도 아닌 글을 끄적여댔던 독서노트들은 아직 갖고 있답니다. 다시 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그나마 제가 그 당시 이런 부족한 생각을 했던 것도 제 부족함과 미흡함을 더 배우고 깨닫기 위한 좋은 reminder여서요.
하지만 그와 달리 자신과 그 혼란스러운 세상 사이의 간극 속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해 거기서 그 광활함과 복잡함과 그 세상이 지닌 가능성들에 압도되어 휘청거릴 수도 있으며,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잔인함의 강도를 줄이고 삶의 모든 측면에 정의가 닿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나는 서구 예술의 역사를 공간의 양감과 시간의 연장, 빛과 소리의 진동을 이용해 행한 다양한 실험의 역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근본적 강점은 예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라이즌 212/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다산북스/책 증정] 『모든 계절의 물리학』을 저자 &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번역가와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송승환 시인과 함께 시를 읽습니다
[문학실험실/신간] 송승환 시집『파』(문학실험실, 2026) 출간 이벤트. 시집 완독회!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읽기 모임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버지니아 울프의 다섯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4월 16일, 체호프를 낭독합니다
[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싱글챌린지로 읽었어요
아니 에르노-세월 혼자 읽기 챌린지숨결이 바람 될 때MT 법학 싱글 챌린지밀크맨 독파하기
스토리 탐험단이 시즌 2로 돌아왔어요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10번째 여정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스토리 탐험단 9번째 여정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유디테의 자본주의 알아가기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그믐의 흑백요리사, 김경순
브런치와 디저트 제대로 만들어보기ㅡ샌드위치와 수프디저트와 브런치 제대로 만들어보기솥밥 제대로 만들어보기
혼자 읽어서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