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멈춰 선 앞에는 흰색 브래지어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물건이었다. 누군가 나무 그루터기의 넓은 면을 감싸는 식으로 브래지어 끈을 당긴 다음 압정으로 고정해놓았다. 양쪽 컵에는 오렌지색 동심원이 그려져 있고 각각 대여섯 발의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브래지어를 풀어내 잡초가 무성한 덤불 속 깊이 밀어 넣고는 다시 트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지. 나는 돌아와 다시 브래지어를 집어들고 운전석 아래에 밀어 넣었다. 뉴포트에 가면 쓰레기통에 넣을 생각이었다.
궁금했다. 그런 물건에, 인간 정신의 악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소리 없는 증거에 신경이 쏠리는 것은 좋은 일인가? 그 증거를 감추는 건 소용없는 일, 어쩌면 혹시 심지어 잘못된 일일까? 여성 혐오에도 그냥 있을 자리를 허용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지 못하게 막으면 모방자가 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제불능일 정도로 순진한 생각일까? 나는 칼리만탄이나 사라왁✻의 시골 벌목지에서도 이런 퇴보의 신호를 볼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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