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더 알고자 하는 욕망, 감지하고 측정하는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히 알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비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끝이 없는 추구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건 인간의 본성과 역사를 포함하는 더 큰 범주로서 자연이 결코 정지해 있지 않음을 너무도 명백히 드러내주는 환경에서 마주한,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설계이며, 그 제목은 적응과 변화이고, 그 명령은 '적응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다. 현대의 사회적 영장류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그와는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협력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인간에게 협력은 궁극의 적응 기전 및 생존 대책일지도요.
관찰자가 감각으로 지각한 것을 즉각 언어로, 그러니까 우리가 자신의 경험을 정의하려 할 때 사용하는 어휘와 구문의 틀로 옮기지 않고 두면,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 사소한 세부들이 인상의 전경에 생생하게 남아 머물 기회가 많아지고, 그 덕에 인상 속에서 무르익은 세부들이 시간이 흐른 뒤 그 경험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1%,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벽돌책모임 중 뇌과학 관련 책들에서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 언어의 priming effect에 대해 여러번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일상에서 실제적으로 확인하는 게 신기하네요. 원주민들로부터 배우는 통찰을 뇌과학에서 뒤늦게 따라가는 걸까요?
저는 많은 경험에서 배운 패턴, 언어로 정의내리거나 설명하기 힘든 그런 통찰도 직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들을 긍정하거든요. 한데 과학계에서는 제 입장에서는 그런 직관과는 오히려 거리가 먼,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쉽게 무너질(걸핏하면 빗나가는 예측인) 무의식적 편견을 직관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프라이밍 이펙트 등을 예로 들면서 직관에 대체로 부정적이더라고요. 커너먼의 책들이나 새폴스키의 행동이나 리사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같은 뇌과학이나 행동/인지심리학 책들에서 언급하는 직관도 대체로 그런 직관이었던 거 같고요. 저한테는 앞서의 패턴에 대한 학습도, 대체로 의식적인 알아차림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직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과학계에선 그런 직관의 존재는 무시하는 듯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요.
실은 지금 제가 예술과 뇌과학 관련 책인 '통찰의 시대'를 읽고 있어서 통찰과 직관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봤는데요. 우선, 뇌과학에서는 통찰(insight)과 직관(intuition)을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직관은 좀 더 즉각적인 반면 통찰은 직관보다 좀더 한참 후에 이루어지고 좀더 복잡한 듯합니다. (어쩌면 커너먼의 fast와 slow system에 각자 해당되는 걸지도요) 그러나 직관을 섣부른 판단이나 편견으로 단정하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부분의 뇌과학자들은 얘기하고 이런 직관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인류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네. 직관이 효율적이고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건 대부분의 뇌과학자가 동의하는 것 같지만 현대의 행동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편견의 불합리함과 비효율을 강조하느라 직관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긴 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통찰과 직관은 다른 개념이죠. 그런데 어떤 직관은 통찰이 체화돼서 대니얼 카너먼식으로 얘기하자면 시스템2가 아니라 시스템1에 편입돼 즉각적으로 반영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카너먼도 그런 사례를 보고한 바 있고요. 그러니까 통찰과 직관에는 교집합이 있다고나 할까요. 포수가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서 공의 움직임을 계산하지 않고도 공을 잡아낸다거나, 사격선수가 풍향과 풍속을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도 바람을 읽어내는 것 같은. 저는 '무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는데 그 녀석이 또 '접대 고양이'이기도 했어요. 녀석은 낯을 가리지 않고 손님 무릎 위에 냅다 앉아 버리거나 손님 앞에 엉덩이를 들이대곤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녀석을 쓰다듬거나 궁디팡팡을 해주곤 했는데 그러면 저는 꼭 녀석한테 물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해줬어요. 실제로 열에 여덟 정도는 그러다가 녀석의 앙칼진 경고 소리를 듣거나 물리거든요. 저는 녀석이 더 이상의 스킨십을 원하지 않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타이밍을 놓쳐서 물려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그 타이밍을 말로 설명하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지가 먼저 들이대도 어느 순간 문다...고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었죠. 그 타이밍을 아는 건 물론 무의식적인 본능은 아니고, 녀석과의 상호작용 경험에서 얻은 직관이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서 통찰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 한데 고양이 행동학 전문 수의사가 방송에서 고양이가 싫다고 보내는 행동 메시지 해석하는 것 보니 아 내가 그동안 저런 몸짓들을 읽고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죠. 어떤 패턴을 잘 알아차리는 능력(직관)과 그것을 분석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은 별개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같은 마케팅 시대엔 대체로 자기가 알아낸 패턴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잘 팔리니 첫 번째 능력 못지않게 두 번째 능력도 잘 연마해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저는 후자가 서툴지만 전자가 기막히게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그들이 해낸 작업들에 경의를 느낄 때가 많아요.
네 맞아요. 카너먼도 결론에서 시스템1과 시스템2가 반드시 분리되어있지 않고 어느 정도 교집합과 상호작용이 있다고 했죠. 아무래도 직관적인 사고가 좀더 차분히 그리고 꼼꼼히 곱씹어보는 analytical thinking과 거리가 있어서 현대 심리학에서 편견이나 오류의 원천으로 치부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긴 하네요. 하지만 저도 말씀하신 운동선수들이나 기타 사회적 상호작용 등에서도 이런 직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런 게 너무 부족하다고 (오감 뿐 아니라 길치에 방향치에 약간 자폐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사회성이나 눈치가 없는;;)자주 지적받아서 그런지 직관적 능력을 어떻게 키우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성과 감정을 굳이 구분할 것이 아니라는 심리학/뇌과학의 연구 트렌드를 따라가다 보면 그런 직관적 사고에 대해 더 긍정적이고 더 밝혀지는 게 많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리를 분간하는 신체의 능력을 정신이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정신의 앎은 피상적인 상태로 남는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1%,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건 그럴 필요를 별로 못 느껴서인 것도 같아요.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데는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데 밤참새의 노랫소리의 맥락에까지 애정과 관심을 두는(그럴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요즈음에는 좀처럼 흔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다방면에서 전문가들은 여전히 자신의 감각으로 사물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는 일들을 하고 있고, 그들의 감각은 비전문가들 눈에는 초능력처럼 보일 정도로 벼려져 있거든요. 저는 그런 전문가들의 '초능력'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극한직업'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걸 즐겼어요.
앗 저는 '극한직업' 프로그램은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달인' 등 좀 전문적으로 뭔가 한 가지 일에 평생 몸 담은 장인들을 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저는 가족들이 다들 어쩌면 저렇게 둔감한 인간이 있을까...하고 탄식할 정도로 시각은 물론이고 청각(덕분에 사물놀이 속에서도 잘 잡니다;;) 후각 미각(자취하던 일년 넘게 삼각김밥과 우유만 먹고 버텼고 딱히 새로운 걸 먹고 싶은 욕구도 없었어요;;) 촉각(간지럼도 하나도 안 타요;;)은 물론 눈치?육감?이나 영감?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전 야생에서 가장 먼저 죽어버릴 생물이겠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감각이 둔한 저같은 인간도 문자 숫자를 다루는 IQ는 높아서 잘 살아남은 사회적 환경인 것 같아요..;; (인간이어서 다행일지도;;)
그들은 개별적인 대상들보다 자신이 만난 것에 내재한 패턴들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1%,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것도 WEIRD와 구분되는 집산주의 문화에서 더 많이 나타날 듯합니다.
영원히 굶주려 있는 냉담한 방문자 죽음이 어떤 곳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임을 당하기는 했지만 끝내 쓰이지는 않은 그 여우 해골을 앞에 두고 내가 느낀 것은 슬픔도 비극도 아닌, 다시금 인식하게 된 삶의 피할 수 없는 공포였다. 내가 속한 문화는 기이할 정도로 그러한 삶의 공포에 대해 무지한 것 같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2%,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누구는 이런 사건들에서 '사악함'을 보고, 또 누구는 자포자기와 고통을, 그저 인간적인 모습을 본다. 매킨슨 내포에서 아사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는 식인을 택했지만, 누군가는 다른 두 어른과 두 아이를 데리고 그 끔찍한 공포에서 빠져나갈 만큼 충분히 민첩하고 노련했다. One does not find "evil" in these events, one finds desperation and pain, the merely human. At Makinson Inlet, in the face of starvation, one finds cannibals but, too, an unknown person inspiring enough, skilled enough, to get two other adults and two children away, clear of the horror.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2%,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 부분의 한글 번역이 원문과 좀 다른 느낌이어서... 원 글과 함께 올려봤습니다. 첫번째 문장은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는 게 아니라 사악함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을 본다는 것 같고... inspiring enough를 민첩하다로 번역한 것도 좀 아닌 것 같은데..
올려 주신 원문을 보니 저도 @borumis 님 해석이 맞는 것 같네요.
책의 1/3 정도 읽어가고 있는데 확실히 관심 분야기도 하지만 작가의 시선과 탐험을 따라가면서 질문들이 계속 생기니 재미있네요. 고고학 인류학 뿐만 아니라 언어학 뇌과학 및 사회윤리학적인 범주까지 두루 생각이 뻗어나갑니다. 근데 이 와중에 페테르가 연료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왜 작가를 두고 먼저 간 건지 궁금해지네요.
꿈의 쓸모를 파악하려 할 때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합리적 정신에 걸맞은 논리적 진실을 우선시하기 위해 꿈들은 무조건 거부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상상력과 지성의 대화, 이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대화, 지성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하고 상상력 혼자서는 이끌어낼 수 없는 대화를 떠올려보는 일이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3%,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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