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어렸을 때부터 외교관 아빠를 따라 2-3년마다 이사했던 저로서는 그런 생활이 지겨워서 다들 외교관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전 절대로 여행 많이 하는 직업은 선택 안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어릴 적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작가가 커서 더 먼 곳으로 여행다니는 게 신기해요.
실은 저는 이 책을 이미 갖고 있어서 원서로 읽고 있지만 밀리의 서재도 구독 중이라 한글도 함께 읽겠습니다. ^^;; 제가 동물은 좋아해도 식알못이고 지리는 잘 몰라서 비교해가며 읽으니 좋네요.
한 해 한 해 지나며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작업실에 들어가거나 나오면서 그 옆을 지날 때 이 물건들은 나에게 여전히 통렬한 매력을 발휘하고, 침묵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생명의 다양성, 태곳적 지구의 돌로 된 살갗, 인간 행동의 치명적 폭력성, 점점 더 무용한 것이 되어가는 현대의 전쟁.
호라이즌 121/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것은 내게 과거와 현재에 인간이 겪고 있는 파국적 고통에 대한 세계적인 무관심을,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는 시베리아와 캄보디아에서, 샤 치하의 이란과 찰스 테일러 재임기의 라이베리아에서,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서 일어난 것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학살을 겪어온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전 세계의 무관심을 상기시키는 물건이다.
호라이즌 130/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때로 이런 윤리적 도전에 부딪칠 때 나는 유창하게 반박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무슨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또 어떤 때는 옆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누가 이런 걸 바꿀 수 있겠는가? 나는 내게 힘주어 말한다.
호라이즌 132/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 모든 곳의 체류에는 기다란 학습곡선이 내재해 있다는 점을 강조해두는 게 좋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또는 언제 그것을 배웠는지(혹은 배웠던 것을 언제 다시 지워버렸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내게 어떤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나도 항상 분명히 인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크랠링섬의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갔던 젊은 남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포트패민으로 가는 길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 이와 같은 사람이지만,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호라이즌 9/1553,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작가의 말부터 밑줄을 그었네요. 일 특성상 일 년의 절반을 한국 밖에서 보내는데요. 생의 어느 한 지점에 지나쳐온 곳을 오랜만에 찾으면, 그곳뿐만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제가 항상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 더하고 뺀 달라짐 속에서 공간을 마주하는데,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로 덮어쓰게 하기보다는 옆에 병치해 놓고 보는 게 즐거웠던 거 같아요. 같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사람이니까요. 작가처럼 저도 십 년 뒤, 이십 년 뒤, 한동안 살았던 유럽과 남미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도시를 대할지 기대하며 밑줄을 쳤습니다.
늦었지만 참가하겠습니다. 오늘 책이 도착했네요. 그동안 벽돌책을 사기만하고 한번도 읽지를 못했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명령한 자들을 규탄하고 그 정책을 수행한 자들을 비난하며 그들을 비인간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인간다운 행동이다. 우리가 그 어둠이다. 우리가 빛이기도 하듯이.
호라이즌 133/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물론 그 누구의 인생도 이렇게 기억의 구슬들을 꿰어놓은 것처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인생이란 불완전하게 기억된 결심들이 연거푸 쏟아져 내리는 일종의 폭포로 이해할 수도 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삶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폭넓은 시야를 놓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의 나라면 삶을 달리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을 것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20대에 너무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다 못해 삶을 뿌리칠 뻔한 부끄러운 제 삶을 되돌아보고 달리 어떤 식으로 내가 받아들였을 건지 되묻기도 하고 나만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는 데 위로를 받고 갑니다.
들러가며 2장에서 언급된 바미안 석불관련 령상 가져와봤어요. 작가가 여행한 곳들은 제가 가봤거나 가볼 수 있는 곳들이지만, 여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궁금해서 영상으로라도 보고 싶더라구요. https://youtube.com/shorts/aLRiFRt9Af4?si=y-ejeNDeddI_lFRU
어머, 감사해요~ 잘 봤어요.
아무리 여러 차원에서 엄밀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곳을 아무리 여러 번 여행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 장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장소 자체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장소는 그 깊은 본성상 투명하지 않고 불명료하기 때문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나는 매일같이 인간의 삶에 대한 화학적, 정치적, 생물학적, 경제적 위협에 관한 글을 읽는다.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인간의 문화적 세계와 인간 이외의 존재들의 세계 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그으려는 일부 사람들의 고집 때문에, 혹은 그 세계를 침략하거나 능률화하거나, 그저 물질을 보관하는 창고나 단순한 풍경으로 일축해버리려는 시도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호라이즌 141/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올해는 12권 벽돌책 부수겠습니다! <호라이즌>은 정말 몰랐던 책인데, 덕분에 이런 책도 읽게 되네요. 정말 책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거 같아요!
1979년, 알래스카 브룩스산맥의 아낙투북패스라는 곳에서 에스키모인 누나미우트족의 작은 마을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전통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는데 그중에는 이런 당연한 의문도 있었다. '왜 나는 이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게 이렇게도 없을까?' 물질 문화나 사냥 기술이나 그들이 선택한 혹독한 땅에서 살아남게 해줄 생존 기술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지식 말이다. 그들이 수수께끼 같지만 그래도 온전한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대상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그들은 그걸 그대로 두었을까 아니면 분석적으로 파고들었을까? 올바른 삶을 사는 일에 따르는 난관이나 역설은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다 똑같은 것이었을까? 내가 다녔던 번듯한 학교들에서는 왜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렇게 읽으라고 하면서 이 사람들도 그리스 철학자들만큼 물리적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은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호라이즌 <들어가며>,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들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나름의 태도와 접근법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속한 문화는 어쩌면 근대의 시작과 함께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태도와 접근법은 모조리 내던져버린 게 아닐까? 아니, 애초에 그에 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건 아닐까? 삶의 곤경에 대한 그들의 통찰은 인류의 운명에 관한, 점점 확대되어가는 세계적 논의에서 왜 더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을까? 서구 문화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들의 은유를 덜 경험적이고 덜 세련되었다고 여겼을까?
호라이즌 <들어가며>,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물론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세워둔 좋은 행동에 대한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산만함과 무관심을 탈출구 삼아, 직면하기 너무 힘들거나 참혹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경험한바, 세상 모든 모퉁이에는 아직도 그러한 낙담과 패배를 뚫고 계속 밀고 나아가며, 자신의 상처를 동여매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살피는 많은 사람이 있다.
호라이즌 <들어가며>,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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