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래릭미술관이라는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게다가 제 스타일,, 다음에 꼭 가봐야겠어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Nana

새벽서가
꼭 다녀오세요~ ^^

새벽서가
작가가 니컬러스 래릭을 알아야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던게 처음은 이니고 록웰 켄트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했는데, <기억하라> 는 원서에서는 Remember 로 표기되었던데, 찾아봐도 이미지를 못찾겠네요. Memory 라는 그림은 있습니다만. 혹시 제대로 된 작품을 찾으시면 이미지정보 나눠주세요. 궁금합니다. ^^

FiveJ
이그림 같습니다~
“Remember”
From His Country series
1924
https://nrm.s3.amazonaws.com/website/images_collections/03/700053.jpg
다른 그림들
https://www.roerich.org/museum-paintings-slideshows.php

오구오구
지금 찾다가 포기하던 중이었는데, 감사합니다. 근데 그림이 너무 아름답네요. 색감도 그렇고 구도도 그렇고.. 산을 좋아하는 1인으로, 히말라야는 못 가봤지만.... 찾아보니 박신양배우가 화가가 되는데 영향을 준 화가라 니콜라스 라는 정보도 알게되었네요 ㅎㅎ
죽음 후 화장하여 그 유해를 히말라야에 뿌렸다는 것, 그림과 삶을 보니 호라이즌의 저자가 왜 니컬러스 래릭에게 연결된 느낌을 갖았을지 이해가 됩니다

새벽서가
저의 버킷리스트중 하나가 네팔 방문이에요. 몇해를 벼르고 별러 2000 여름방학 기간에 가려고 준비했었는데, 결국 못갔네요. ㅠㅠ

새벽서가
아! 파이브제이님이 올려주셨군요! 점심시간에 찾고는 신나서 올리려고 돌아오던 참이었어요.
그나저나, 저만 그런가요? 이 그림, 왜 이렇게 좋죠?

FiveJ
그림이 좋아서....들어가며 3장 읽다가 그림보고 한참 빠져있었습니다. 예전에 티벳여행하던 경험이 있어 더 몰입해서 봤습니다.

새벽서가
우와! 부럽습니다, 티벳여행!!

FiveJ
“ 아낙투북패스에서 처음 며칠을 보낸 뒤로 어디를 여행하든 내게는 늘 이런 궁금증이 따라다녔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인간에게 무관심한 자연의 세계가 우리를 덮쳐오는 가운데, 우리가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인류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
『호라이즌』 6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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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J
이런 의미있는 사색을 하지못하고.... 관광하다 혼듯해서... 저자처럼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ㅠㅠ

새벽서가
제가 위에 너무 길어서 문장수집을 못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다고 했던 부분이 여기였어요. 두페이지 가득 올라오는 질문들 보면서 난 세상 헛살고 있나? 이런 질문을 내게 던져본 적이 언제였지? 이럴거면 책은 왜 읽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borumis
근데 이걸 저번에 읽은 '행동'에서도 생각해보면 약간 사회문화적 맥락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질문을 잘 못 하더라구요. (ㅋㅋㅋ 맥락맥락맥락..;;)이게 Collectivist culture와도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학회 강연 후 Q&A 시간이나 북클럽을 할 때도 질문보다는 뭔가 요약 정리 또는 내가 좋았던 부분 짚어가기 정도로 끝나는 것 같더라구요.

dobedo
저는 그 부분을 질문이 아닌 비판으로 읽었어요.
‘파울웨더곶에서 나는 나의 정신으로부터 분석하는 마음을 비워내고, 끊임없이 분석하며 핵심을 찾으려는 욕망을 유보한 채 몇 시간씩 보냈는데, 그럴 때면 윌리엄 브레이크가 말한, 모래 한 알 속에 우리를 위한 온 세상이 갖춰져 있다는 불멸의 은유를 수시로 실감했다.'
'여러 해에 걸쳐 내 안에서 종교를 대체하게 (혹은 어쩌면 강화하게) 된 믿음 체계 속에는, 생명이 없는 어떤 대상에는 그 질감이나 색채만큼 실질적인 영적 차원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이런 글을 쓰는, 이런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있죠. '우리'의 범위가 유난히 확장돼 있어서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고, 연민의 대상도 광범위하고, 자연의 경이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고는 하죠. 그리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절박감’을 느끼고, 그걸 자주 이야기하곤 하죠. 저는 그런 영적인 면에선 대충 중간 정도의 사람인 것 같은데 이런 면에서 한쪽 끝에 있는 사람은 다른 쪽 끝에 있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하고, 서로가 서로를 몹시 싫어하더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해한 존재인 것만 같았어요.
산 바로 아래 아파트, 꼭대기에서 한 칸 내려간 층이라 완벽한 마운틴뷰에서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가 집자랑을 하면서 그러더라고요. 사람들 참 바보라고, 이렇게 조용하고 공기도 좋은 거 모르고 다들 시끄러운 대로변 아파트를 찾는다고. 그래서 제가 친구에게 얘기했죠. 그 사람들이 여기 전망이 더 좋고, 공기도 더 깨끗하고, 조용한 거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지금 그들에겐 전망이나 공기나 소음보다 버스 정류장이나 편의점이 가까운 게 더 중요한 거라고. 그들은 당신보다 전자에 덜 민감하고 후자에 더 민감한 거라고. 대로변 아파트가 좋은가, 가장 구석진 안쪽 아파트가 좋은가 하는 단순한 취향 문제에도 이런 오해와 단절(?)이 있는데 더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더 민감한 가치관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울까 싶네요.
다른 이들의 고통에 더 민감한 사람이 있죠. 그들 눈에는 자기만큼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심하고 게으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걸 느끼는 것도 능력일 수 있겠죠. 어쩌면 ‘폭군들, 과두정치 지배자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들’도 다양한 인간의 모습 중의 하나일텐데, 바로 앞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두려워하면 ‘우리 스스로 자신의 치명적 숙적이 될 가능성만 더욱 커질 뿐’이라고 말하던 로페즈 자신도 폭군과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들을 호명할 때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우리가 그 어둠’이자 ‘빛’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 어둠은 타자화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군요.
누나미우트족의 전통이나 통찰은 서구에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기에 아마도 너무 비주류 문화고, 소수자의 문화겠죠.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로페즈도 충분히 알 것 같은데, 이게 질문이라면 참 공허한 질문을 던지는구나 싶었어요. 그보다는 ‘삶의 곤경에 대한 그들의 통찰’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책의 뒷부분에서 나올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는 사실 이 책에서 그런 부분들을 기대했거든요.
@새벽서가 님의 질문에 짧게 몇 마디 대답한다는 게 쓰다 보니 너무 장황한 독후감이 되어버렸네요. ^^;;

새벽서가
비판이 섞인 질문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질문들에 대한 멤버님들 의견이 어떠신지 궁금하긴 했어요. 저 스스로는 몇개의 질문에만 답을 할 수가 있었거든요.
이런 독후감(?) 너무 좋습니다. 올려주신 글 잘 읽었어요. ^^*

borumis
감사합니다. 정말 작가가 설명한 그대로네요.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과 자꾸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의 양가감정이 느껴져요.

Nana
감사해요~ 저 홈페이지에서 찾다가 어지러워서 누군가 올려주셨을거야! 하고 들어왔답니다. 이 분 처음들어보는 화가인데 그림이 참 좋네요. 색체예술가라는 표현이 딱 맞네요.

연해
우와... 감사해요.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그림이랑 함께 보면서 다시 읽으니까 문장 하나하나가 더 생생하게 와닿는 것 같아요. 새벽서가님 말씀처럼 그림도 너무 좋습니다. 뭔가 아련한데, 또 새로운 시작 같기도 하네요.
"이는 떠남에 관한 그림인 만큼 공간에 관한 그림이기도 하며, 내가 본 모든 그림 가운데 작별이 한 사람의 기억을 어떻게 촉발하는지를 이만큼 통렬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연해
“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떠나는 일의 곤란-떠나고 싶은 너무나 강력한 욕망, 그러나 동시에 어떤 틈이 벌어지고 결속이 단절된다는 느낌, 그리고 그 틈과 단절은 오직 돌아오는 것으로만 복구될 수 있다는 느낌-속으로 순식간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 벌어진 틈의 저편에서 어떻게든 떠남을 정당화할 경험을 발견할 수 있을까? ”
『호라이즌』 <들어가며>,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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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그림을 보고 나니까, 이 문장도 다시 보이네요. 저도 @borumis 님 말씀처럼 떠나고 싶은 마음과 자꾸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의 양가감정이 느껴져요.
꼭 여행뿐만 아니라 관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같이 붙어있으면 강렬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다가도, 혼자의 적막에 또 누군가의 온기를 찾게 되는. 그래서 하나가 좋다는 건지 둘이 좋다는 건지 그 이상을 바라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요(하하). 혼자 사는 건 편안하지만 가끔 집으로 향할 때, 복작복작 불 켜진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