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나는 침대에 누워 내가 느꼈던 격분이 정말로 역사 때문에 불타오른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무력함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 결과였는지 생각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인간의 다양성을 계속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바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치명적 숙적이 될 가능성만 더욱 커질 뿐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오랫동안 나는 우리 대부분이 찾고 있는 것이, 창피해하지도 않고 비판이나 보복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을 표현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갓 지구가 형성되고 난 후의 그 태곳적 돌을 마주한 기분은 어땠을지.. 우리 인간은 이 Hadean zircon이 있던 Hadean Eon(명왕누대)과 지구 역사의 가장 반대쪽 끝인 Phanerozoic Eon(현생대)에 아주 잠시 살아왔을 뿐인데 그 인간이 만든 페트라나 마추피추 등의 고대유적을 보고 한없이 제 자신이 얼마나 유한한 우주의 찰나인지 실감했던 과거의 제가 우습네요.
한때 매일 직장에서 고통이나 죽음을 곁에서 보고 살아가며 인간의 생명은 정말 찰나같이 느껴져서 예전에는 죽음이야 말로 인생이 바라보는 수평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다소 비관적이죠? 가장 패기가 넘쳐야했던 20대에 그런 생각에 빠져 살았다니;;)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더 멀리 헤엄쳐 나가는 수평선이 될 수 있는데.. 당시 저는 죽으면 남기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해서 여행은 많이 하고 방황도 많이 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며 기념품은 물론 사진도 안 찍었어요. 어쩌면 새폴스키가 말했던 너무 극심한 공감은 아픔으로부터 눈을 감고 싶게 만들 수 있다는 위험을 실감했던 시기여서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도 전혀 소유하고 싶지 않았고 제 미흡한 사진 실력으로 포착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세상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덫'에 걸린 채 절망으로 내몰리지 않았던 작가의 글을 보며 저 또한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느껴지네요. 어찌 보면 그 모든 방황 속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그런 생각이 아닐까요.
@borumis 님의 댓글을 읽고 생각이 깊어집니다. 저 또한 삶의 의미를 꾸준히 찾아가기에 더 와닿기도 했고요. 여러 곳을 여행 다니시면서 기념품은 물론 사진도 찍지 않았다는, 미흡한 사진 실력으로 포착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말씀이 눈에 콕 들어오는데요. 뜬금없는 전개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난주에 김환기 미술관을 다녀왔어요. 김환기 화백의 여러 작품을 가만히 보면서 압도적으로 시선을 끄는 경이로운 작품도 많았지만요. 유독 제 발길이 머물렀던 곳은 연필로 낙서처럼 스케치해놓은 작품들이었어요. (본)작업에 들어가기 전 습작 같았는데 이걸 전시해뒀다는 것도 새롭고, 괜히 친근감이 들더라고요. 저도 @borumis 님 말씀처럼 제가 만든 무언가가 '미흡하다'여겨지면 그걸 과감히 찢어 버리거나 보관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이게 웬 낙서람?' 이러면서요(아 그림은 아닙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 하나하나가 다 추억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지나온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도 전혀 소유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대해서도 가만가만 공감해봅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혹은 인생의 어떤 덧없음이 느껴지면, 그 시기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던 때가 있었어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느끼지 못하고, 감사한 걸 감사하다 여기지 못하던 지독한 시기요. 지금은 삶의 태도를 달리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또 그런 시기(방황하고 넘어지는)가 찾아올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게 다 인생이 아닌가 싶고, 그 시기에 제가 가진 생각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게 삶인 것 같고... 일단 부지런히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쿠스코를 보러 갔을 때 저희는 워낙 여행하면서 기념사진을 잘 안 찍어서 카메라를 안 갖고 다니는데 (그 당시는 폰카도 없었으니) 예쁜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사진을 찍히고 돈을 받기를 바라더라구요. 저흰 어차피 사진 찍을 생각도 없어서..;;; 그냥 코카 티나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목걸이나 팔찌 등을 사줬지만.. 제게는 그다지 의미없는 기념품이나 사진이어도 어찌보면 그들에게는 절실한 수입인 것 같아서 미안했던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여행다니다 찍은 게 다음날 마추피추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는데 남동생이 하드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다 사라졌습니다. 하하하. 뭐 인생이 그런 거죠. 어차피 사진 찍은 거 다시 보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저도 제가 낙서처럼 스케치 해놓고 별 것도 아닌 글을 끄적여댔던 독서노트들은 아직 갖고 있답니다. 다시 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그나마 제가 그 당시 이런 부족한 생각을 했던 것도 제 부족함과 미흡함을 더 배우고 깨닫기 위한 좋은 reminder여서요.
하지만 그와 달리 자신과 그 혼란스러운 세상 사이의 간극 속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해 거기서 그 광활함과 복잡함과 그 세상이 지닌 가능성들에 압도되어 휘청거릴 수도 있으며,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잔인함의 강도를 줄이고 삶의 모든 측면에 정의가 닿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나는 서구 예술의 역사를 공간의 양감과 시간의 연장, 빛과 소리의 진동을 이용해 행한 다양한 실험의 역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근본적 강점은 예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라이즌 212/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예술은 즐거움을 주는 일을 열망하지 않는다. 예술이 갈망하는 것은 대화다. 또한 예술은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에 관해 클라우지우스가 했던 말처럼 운명이 정해진 삶에 관한 것이다.
호라이즌 213/168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예술은 즐거움을 주는 일을 열망하지 않는다. 예술이 갈망하는 것은 대화다.] 너무 좋은데요. 나중에 꼭 써먹으렵니다.
저도 너무 좋아서 밑줄친 문장이에요. Art does not aspire to entertain. It aspires to converse.
니컬러스 래릭 미술관, 위치를 찾아보니... 뉴욕 거주자들도 존재를 모를만한 위치네요.. 걷기도 지하철로 가기도 애매하고 으슥한 위치 ㅠㅠ @새벽서가 님이 여기까지 찾아가신 게 대단... 바로 근처에 있는 거대한 세인트존디바인 성당도 존재를 모르는 뉴요커들이 많더라고요. 이 부근에서 관광객의 행선지는 모두 컬럼비아 대학교 ㅎㅎ 니컬러스 래릭 검색하다가 발견한 짜투리 정보 - 박신양 배우가 러시아 유학때 니컬러스 래릭 그림을 보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 Remeber는 @FiveJ 님도 올리셨는데, 저도 찾아서 링크 올립니다. 그림에 대해서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설명을 한담. https://www.wikiart.org/en/nicholas-roerich/remember-1924
맨하탄에 살 때 그 근처에 살았었거든요. ^^;
오오, 올려주신 링크로 들어가보니 니컬러스 래릭의 다른 작품들도 많네요! 분위기와 색감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Star of the Hero'가 좋았어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예전에 보았던 거의 모든 걸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날 파울웨더 옆구리에 텐트를 치고 늦은 겨울의 폭풍을 기다리고 있던 그 남자가, 유년기의 몇몇 장면을 회상하는 동시에, 해안가로 다가오는 쿡의 레절루션호가 처음에는 수평선의 작은 점으로만 존재하다가 몇 시간 뒤에 세 개의 돛을 절반만 펼친 채 갑판 배수구에서 검은 선체 옆면으로 녹물을 흘리며 전장 범선의 위용을 드러내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찾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와아~ 이 문장에 제대로 치였네요. 한 장소에 켜켜이 쌓인 서로 다른 시간을 어떻게 한 문장에 이렇게 담았지? 이건 스페인이나 남미 소설에서나 보던 경지인데... 저는 이 책에서 만연체가 괜찮은게, 독자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해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긴 문장 읽는 동안 그 장면을 머리 속에 충분히 떠올리게 해요. 저에게 이 책의 힘든 점은 지명, 인명 등 고유명사 엄청 많은데, 외래어표기법에 맞춰서 쓴 고유명사로는 영어로 찾을 수가 없어 ㅠㅠ
전 그래서 영어로 읽다가 문장수집한 부분만 한국어책에서 찾아서 나누고 있어요. 대체 왜 띄어쓰기도 없이 지명같을걸 저렇게 쓴건지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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