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내가 만난 여러 문화의 공식적인 원로들—어떤 것이 통하고 어떤 것이 통하지 않는지에 관한 지혜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들—은 모두 자기네 문화 안에서 자신들만의 은유와 신화에서 벗어나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소수였고, 동시에 역사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행동 방식들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소수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세계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유의 차이를 아는 이들이다.
호라이즌 37%,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저도 이 문장 좋았어요. 뒤에 이어지는 문장도 좋았습니다.
그 어른들을 착잡하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과된 세계의 유혹적 매력, 그러니까 물질적 평안과 부의 매력, 모든 욕구를 만족시켜주겠다는 광고주의 약속이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부패를 초래할 수 있다고 여기며, 거기에 저항은커녕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굴복하는 것은 죽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여긴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871/234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전 어제 밤에 알렉산드라 피오르 동영상 짧은 것을 몇 개 봤는데 처연한 느낌의 툰드라 지대였습니다. 작가가 이런 환경에서 겪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호기심을 갖고 독서중입니다.
어쨌든 그런 믿음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물리적인 이 땅, (...) 이 기후 뿐 아니라 땅 자체가 간직한 기억을 통해 느끼고 반응해준다는 믿음, 또한 곁으로 명백히 보이는 것과 미묘하게 감춰진 것들 안에서 많은 것을 내어주리라는 믿음이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25%,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나바호 사람들은 이런 나빠진 상태나 세상과 불완전하게 통합된 상태를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사람에게 생겨나는 정상적인 상태로 본다. (나바호 세계관의 복잡한 체계에서 볼 때, 조화로운 상태가 점진적이고 필연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열역학 제 2법칙에서 클라우지우스가 정의한 엔트로피에 빗대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27%,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아름다움'이 세계에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높은 수준의 정합성을 가리킨다는 관념, 그리고 우리가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에 우리 자신을 다시 통합함으로써 우리 안에 아름다움을 되살릴 수 있다는 관념을 의식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 바로 뷰티웨이 의식이고, 이를 알게 된 뒤로 나는 쭉 그 관념에 마음이 끌렸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27%,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저도 이 문장 너무 좋았어요:)
그 집단의 원로들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았을 뿐 아니라 두렵게 보이는 것들 가운데 무시해도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27%,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미 알려진 세계에서 하나의 경계선이었던 것(...)이 이제는 손짓해 부르는 지평선이 되고, 더 멀리 자리한 목적지로 이끄는 가장자리가 되는데, 그러면 그 전까지 전혀 몰랐던 한 세계가 그 사람의 새로운 우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기억과 상상력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지의 미래가 현재를, 또 기억된 과거를 불러내고, 그 확장의 순간에 상상된 미래는 이룰 수 있는 미래로 보인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29%,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인류의 생존에 대한 위협들이 축적되면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엔 거의 선명하게 보였던 우리의 앞길에 이제 종말론적 장벽이 버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 장벽 뒤에 무엇이 있는가다.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장벽 너머에서 무엇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가다. 무엇이 우리를 미래로 떠밀고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모든 위대한 예술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주는 경향이 있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더 알고자 하는 욕망, 감지하고 측정하는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히 알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비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끝이 없는 추구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건 인간의 본성과 역사를 포함하는 더 큰 범주로서 자연이 결코 정지해 있지 않음을 너무도 명백히 드러내주는 환경에서 마주한,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설계이며, 그 제목은 적응과 변화이고, 그 명령은 '적응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다. 현대의 사회적 영장류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그와는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협력하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인간에게 협력은 궁극의 적응 기전 및 생존 대책일지도요.
관찰자가 감각으로 지각한 것을 즉각 언어로, 그러니까 우리가 자신의 경험을 정의하려 할 때 사용하는 어휘와 구문의 틀로 옮기지 않고 두면,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 사소한 세부들이 인상의 전경에 생생하게 남아 머물 기회가 많아지고, 그 덕에 인상 속에서 무르익은 세부들이 시간이 흐른 뒤 그 경험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호라이즌 스크랠링섬, 31%,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벽돌책모임 중 뇌과학 관련 책들에서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 언어의 priming effect에 대해 여러번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일상에서 실제적으로 확인하는 게 신기하네요. 원주민들로부터 배우는 통찰을 뇌과학에서 뒤늦게 따라가는 걸까요?
저는 많은 경험에서 배운 패턴, 언어로 정의내리거나 설명하기 힘든 그런 통찰도 직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들을 긍정하거든요. 한데 과학계에서는 제 입장에서는 그런 직관과는 오히려 거리가 먼,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쉽게 무너질(걸핏하면 빗나가는 예측인) 무의식적 편견을 직관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프라이밍 이펙트 등을 예로 들면서 직관에 대체로 부정적이더라고요. 커너먼의 책들이나 새폴스키의 행동이나 리사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같은 뇌과학이나 행동/인지심리학 책들에서 언급하는 직관도 대체로 그런 직관이었던 거 같고요. 저한테는 앞서의 패턴에 대한 학습도, 대체로 의식적인 알아차림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직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과학계에선 그런 직관의 존재는 무시하는 듯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요.
실은 지금 제가 예술과 뇌과학 관련 책인 '통찰의 시대'를 읽고 있어서 통찰과 직관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봤는데요. 우선, 뇌과학에서는 통찰(insight)과 직관(intuition)을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직관은 좀 더 즉각적인 반면 통찰은 직관보다 좀더 한참 후에 이루어지고 좀더 복잡한 듯합니다. (어쩌면 커너먼의 fast와 slow system에 각자 해당되는 걸지도요) 그러나 직관을 섣부른 판단이나 편견으로 단정하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부분의 뇌과학자들은 얘기하고 이런 직관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인류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네. 직관이 효율적이고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건 대부분의 뇌과학자가 동의하는 것 같지만 현대의 행동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편견의 불합리함과 비효율을 강조하느라 직관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긴 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통찰과 직관은 다른 개념이죠. 그런데 어떤 직관은 통찰이 체화돼서 대니얼 카너먼식으로 얘기하자면 시스템2가 아니라 시스템1에 편입돼 즉각적으로 반영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카너먼도 그런 사례를 보고한 바 있고요. 그러니까 통찰과 직관에는 교집합이 있다고나 할까요. 포수가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서 공의 움직임을 계산하지 않고도 공을 잡아낸다거나, 사격선수가 풍향과 풍속을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도 바람을 읽어내는 것 같은. 저는 '무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는데 그 녀석이 또 '접대 고양이'이기도 했어요. 녀석은 낯을 가리지 않고 손님 무릎 위에 냅다 앉아 버리거나 손님 앞에 엉덩이를 들이대곤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녀석을 쓰다듬거나 궁디팡팡을 해주곤 했는데 그러면 저는 꼭 녀석한테 물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해줬어요. 실제로 열에 여덟 정도는 그러다가 녀석의 앙칼진 경고 소리를 듣거나 물리거든요. 저는 녀석이 더 이상의 스킨십을 원하지 않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타이밍을 놓쳐서 물려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그 타이밍을 말로 설명하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지가 먼저 들이대도 어느 순간 문다...고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었죠. 그 타이밍을 아는 건 물론 무의식적인 본능은 아니고, 녀석과의 상호작용 경험에서 얻은 직관이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서 통찰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 한데 고양이 행동학 전문 수의사가 방송에서 고양이가 싫다고 보내는 행동 메시지 해석하는 것 보니 아 내가 그동안 저런 몸짓들을 읽고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죠. 어떤 패턴을 잘 알아차리는 능력(직관)과 그것을 분석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은 별개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같은 마케팅 시대엔 대체로 자기가 알아낸 패턴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잘 팔리니 첫 번째 능력 못지않게 두 번째 능력도 잘 연마해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저는 후자가 서툴지만 전자가 기막히게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그들이 해낸 작업들에 경의를 느낄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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