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이거 원문에서는 보리고래를 못 본 사람들을 배려해서 자세히 무엇을 봤는지 얘기 못 한 것처럼 나오는데.. 한국어판에서는 상세히 이야기하고 후회로 괴로워하는 걸로 번역했네요;;; 그리고 원문에선 아기 고래를 nurse (모유 먹이는)하는 걸 얘기하고 있는데 돌보고 있었다고 해서 뭔가 그 장면이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데 고래가 아기에게 수유하는 것은 정말 신기하면서도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합니다. https://youtube.com/shorts/-XvIBxgtt8k?si=40A9VT9REO_pEQud
먹이를 먹을 때 홍학들이 보이는 위엄 있는 망설임과 석호 가장자리 물 위에 쌓인 깃털 수백 개의 파르르 떨리는 움직임이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없었던 어떤 틈새를 벌려 놓는다.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마음, 그리고 새들에 대한, 또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정 어린 마음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기이하지만 바다사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내가 한 바다사자의 머리에 걸린 초록색 그물의 마지막 몇 올을 자르려 할 때 녀석은 마지막 몇 올을 자르려 할 때 녀석은 나에게 저항하며 물려던 행동을 문득 멈췄다. 그러고는 물속에서 차분히 안정을 찾았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 광경이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느 3월 오후 한가운데서 적도의 그 장소가 지니고 있던 존재감이었을 뿐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여기에는 생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우리 가이드가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는 걸 그는 가족에게 어떻게 말할까?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정 어린 마음에 보리고래 아기의 수유하는 모습을 자세히 이야기 못 했을 것처럼 (번역가의 해석과 달리 제가 보기엔 작가가 미안해서 얘기 못했을 것 같습니다.) 시에라네그라의 화물트럭 운전사가 고장나서 처박힌 트럭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는 작가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집니다.
코끼리거북들은 우리가 거기 와 있는 상황에 대한 반응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를테면 우리가 어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주름투성이 파수꾼들이었다. 코끼리거북의 삶은 철저하게 국지적인 삶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제퍼스는 그 시에서 아름다움과 폭력의 대조에 관해 썼다. 그 둘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미덕만 추구하느라 부도덕함이 인간의 조건과 역사를 얼마나 강력히 정의해왔는지를 잊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끈질긴 선인장과 노란코르디아와 란타나 덤불은 거친 용암 부스러기 틈새에 기반을 잡고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의 광범위한 죽음은 생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살아 있는 생물의 원기 왕성함은 죽음의 횡포를 축소한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곳의 광범위한 죽음은 생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살아 있는 생물들의 원기 왕성함은 죽음의 횡포를 축소한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나는 이 섬에서 냉담한 관찰자도 아니고 노련한 고고학자도 아니며, 그저 크고 작은 신비의 가장자리에서 메모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이다. 스크랠링에 오기 칠 년 전, 나는 배핀섬 북쪽 끝에 있는 애드머럴티 내포의 해빙 위에서 작은 무리의 이누이트 사냥꾼들과 함께 야영했다. 그들은 일각돌고래를 사냥하고 있었다. 일각돌고래들이 돌아다니던 랭캐스터사운드의 물 옆에 얼음 캠프를 세워두고, 애드머럴티 내포의 얼음이 녹아 깨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작은 고래목 동물의 내장을 빼고 해체하는 일에 참여했다. 내 경험상 일반적으로 에스키모인들은 야생동물들이 사냥꾼에게 목숨을 내어주는 이런 상황에서 백인이 옆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럴 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너무 많았고, 대개 그 문제는 다른 문화에 속한 이들이 사냥꾼들을 야만적이라 비판하고 그들 삶의 방식을 비난하는 식으로 벌어졌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 텐트 안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만 글을 썼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들은 나를 나아자바아르수크라고 불렀는데, 그들 말로 북극흰갈매기라는 뜻이다. 군락을 이루어 사는 바닷새인 북극흰갈매기는 새하얀 갈매기다. 하지만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그 이름을 고른 건 그 깃털 색깔 때문이 아니었다. 북극곰(또는 이누이트 사냥꾼)이 해빙 위에 남겨둔 내장 더미 위로 갈매기들이 몰려들 때, 먹을 만한 내장을 독점하는 건 다른 갈매기들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갈매기들, 그러니까 작은재갈매기, 큰검은등갈매기, 흰갈매기 등이다. 더 작은 북극흰갈매기는 난리가 벌어지는 현장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틈이 생길 때 잽싸게 들어와 무언가를 낚아채 간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나를 나아자바아르수크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적극적으로 가담하다가 이내 뒤로 물러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관찰하는 내 방식 때문이었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이 이누이트와 얽힌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는데 빼놓고 지나갈 뻔했네요. '나아자바아르수크'. 북극흰갈매기. 이누이트 사냥꾼의 별명 짓는 센스, 멋져요. 우리가 뱀, 여우, 곰, 너구리, 소나무, 대쪽 따위를 동원하듯... 그곳에선 갈매기가 익숙한 대상이겠죠? 나아자바아르수크는 이때에는 아마 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멸종위기동물에 근접한 듯하네요. 오랫동안 북극곰이 남긴 사체 등을 먹던 녀석들은 10년 전 즈음엔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 먹을 걸 찾는 모습도 자주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https://blog.naver.com/polestory/221384042985
저도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 나라도 북극곰처럼 옛날엔 호랑이가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그만큼 인간과 가장 근접해서 인간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인간을 어머니로 삼기도 하는 등 인간 사회와 밀접하거나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이다가 80년대에 아예 멸종했는데도 올림픽 마스코트로 나오는 게 아이러니하군요. 북극곰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북극곰은 '환경보호'의 아이콘이 되어서... 인간들이 멸종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도 같네요. 설마 북부흰코뿔소처럼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무엇이 여기에 속하고 무엇이 속하지 않는지에 관한 논의—예컨대 선호되는 식물은 무엇이며 뿌리를 뽑아야 할 식물은 무엇인가?—에서는 오랜 세월 인간 사회에서 이민자 문제를 논할 때 등장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대립된 의견들이 음험하게 움직이고 있다. 때때로 갈라파고스를 두고 격앙되는 논의에서는 인종차별적 언사, 이민 배척주의의 편견, 경제적 사리사욕의 메아리가 분명히 들린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작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 나는 내게 말한다. 분명히 네 질문의 답이 아닌 것들도 자세히 살펴보라고. 오늘 네가 본 무언가에 관해 나중에 글로 읽을 기회가 있을 거라는 섣부른 가정은 하지 마.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팔로산토. Palo santo(거룩한 나무), Bursera graveolens. 남미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독특한 향이 나서 스머지 스틱으로 쓰기도 하고, 향이나 향수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팔로산토 나뭇가지를 태우면 나는 독특한 향을 아주 좋아합니다. 먼 이국에서 자라나는, 향이 좋은 신성한 나무로만 알고 있다가 갈라파고스 편에서 발견하고 반가워서 이참에 식생은 어떤가, 어찌 생겼나 검색해 봤습니다. 찰스다윈연구소 홈페이지 DB(https://datazone.darwinfoundation.org/en/checklist/?species=232)에 따르면 대부분 기간 이파리 없이 지내다가 우기 때 잠깐 푸른 잎을 낸다고 하네요.
대부분 기간 이파리가 없다는, 올려주신 팔로산토 나무 사진을 보다가 마침 겨울인 지금 나뭇잎을 다 떨구고 추위를 견디고 있는 우리 주위의 나무들 생각을 하게 되네요. 줄기를 자세히 보면 당연하게도 나무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릅니다. 사람의 튼 손처럼 나무껍질이 거칠게 벗겨지며 더덕더덕 붙어 있는 줄기가 있는가하면 이 혹독한 날씨에도 핸드크림을 바른 손등처럼 매끈한 줄기를 뽐내는 나무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과나무의 줄기는 색깔이 미세하게 달라 바둑판 격자처럼 구분이 되기도 하죠. 이파리 새순이 돋고 화려한 꽃들이 펴 우리 눈을 현혹하기 전인 겨울 막바지는 신경쓰지 않으면 그 신비로움을 알아채기 힘든 나무 줄기에 눈길을 주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저는 봄에, 잎을 다 떨군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는 걸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해요. 검고 메마른 목질에서 연녹색 새순이 나오는 모습은 되게 이질적이기도 하고요. 나무박사님 유튜브 보니 줄기 모양도 다들 달라 잎이나 꽃, 열매 같은 게 없어도 줄기 모양만으로도 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던데 하나하나 배워가면 참 재미있을 거 같아요.
네, 전 그 중에서도 은행나무 몸통에서 가끔씩 돋아나는 이파리 새순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눈높이 아래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갓난아기 손이나 발처럼 앙증맞은 연두색 잎이 정말 귀엽습니다. 보게 될 날이 얼마 안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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