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설] 2월 『폴란드인』 함께 읽어요

D-29
섹스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볼 수도 있지만 정말 오래된 부부 사이의 대화란 생각도 드네요. 어찌보면 남 얘기하듯 하기도 하고. 아님 남사친 여사친이 오랜만에 만나 최근 알게된 이성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우상인 쇼팽은 자신을 돌보는 여자에게 의존했던 병약한 남자였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폴란드인이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쇠잔해가는 말년에 그를 돌봐줄 간호사 말이다.
폴란드인 76,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갑자기 쇼팽 평전을 읽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면 사람이 이성을 보는 시각이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찾겠지만 자신이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인지상정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시작은 비톨트가 다짜고짜로 베아트리스를 사랑한다고 하는 건데 이런 경험 있지 않나요? 전 갓 스무살 때 길가다 어떤 사람한테 붙들려서 차까지 얻어 마시고 헤어졌는데 그땐 서로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사귀나 싶어 막 화를 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걸 꼭 나쁘게 생각할 건 아닌데 너무 심했나? 뭐 그런 생각도 하게 되더라구요. 근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
그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호기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틀렸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다. 아주 많다. 그러나 더 넓은 세계에 대해서도 아니고, 섹스에 대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것에 호기심이 많을까? 자신에 관해서다.
폴란드인 51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만약 그녀가 반응을 보이면, 그것이 그녀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더 중요하게는, 그녀가 반응을 보이기를 남자가 기대한다는 것이 그녀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그에게 평화를 준다. 그녀는 그에게 기쁨을 준다. 아리아치고는 별로다. 또한 운명이 그에게 드러났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그 운명이란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가? 그녀에게도 운명이 있지 않을까? 그 운명은 어떤 것일까? 언제 그것이 드러날까? 나는 당신의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 아니에요. 당신의 수수께끼도 다른 사람의 수수께끼도 아니라고요! ... 나는 그냥 나예요! 나는 당신을 위한 운명이 아니예요. 다른 누구를 위한 '운명'도 아니고요. 그 말이 무슨 의미든, 우리 중 누구도 어떤 '운명'이 아니예요.
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베아트리스가 비톨트를 처음에 별로라고 생각하다가 스며드는 모습이 전형적이면서도... “스파크”로 비유되는 성적 텐션이 없는 것 같아서 새롭기도 하네요.
그녀 때문에 헤로나에 클래스를 연 남자. "두 폴란드인, 즉 오래전에 젊어서 죽은 폴라드인과 아직 살아 있는 늙은 폴라드인" 때문에 혼란스러운 여자. "폴란드인이 말한다. 당신은 내게 평화를 줘요. 당신은 내게 평화의 상징이에요." p57
화제로 지정된 대화
3장 (83~139쪽)
시간이 뭔가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기억이 있어요. 기억에는 시간이 없어요. 나는 당신을 기억 속에 넣어둘 거에요. 그리고 당신도, 어쩌면 당신도 나를 기억할지 모르죠
폴란드인 p.102,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오! 밑줄 그은 문장이 저랑 똑같아요.
기억에 시간이 없다는 말 좋아요
나는 액체예요. 당신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나는 당신 손에서 물처럼 빠져나갈 거예요.
폴란드인 112,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112페이지에서 고체(solid), 기체(공기), 액체로 각자의 성향과 음악을 비유해 대화하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1부에서 비톨트의 쇼팽 연주가 무거워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베아트리스는 생각했는데 오히려 비톨트는 베아트리스를 심오한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 진중함(시어리어스)에 반하게 된다는 모순이 인생사 같네요. 스스로를 액체로 여기는 베아트리스는 어떤 종류의 액체일까 연상해 보았는데 그녀는 빛나는, 액체 중 비중이 큰 ’수은‘이 아닐까 싶어요. 그에 비해 비톨트의 음색을 묘사할 때 검은 액체 같다 하여 ’석유‘를 떠올렸는데요, 그 둘이 섞이면 어찌되려나 상상해 보았습니다. 섞이지 않을거 같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쇼팽과 드뷔시의 액체 음악도 듣고 싶어졌고요, 책 사이 등장하는 음악 연주를 찾아 듣는 즐거움도 있네요.
substance : 돈과 힘, 영향력이 많음.. 업무차 이 섭스턴스 라는 말을 하루에 열댓번은 쓰는데.. 오직 물질이라는 단어로,, 단일물질 혼합물질.. 할때 쓰는 단어인데.. 돈과 힘이라는 뜻이 있었다니... !!.. 놀랍네요.. 퍼슨 오브 섭스턴스,, 라고 해서 그냥 물질적? 사람.. 형태가 갖추어진 사람.. 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그럼 돈과 힘이 있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 건가보네요..?
제가 베아트리스의 감정선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 그녀가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두 사람의 관계가 급진전된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녀의 행동 어디에서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다보니 이건 그저 의미 없는 욕망의 분출인가 싶기도 한데 다른 분들 생각도 궁금해요~
사랑 고백이나 쇼팽에 대한 해석처럼 딱딱한 비톨트 방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새 비톨트에 스며든것 같아요. 싫어서 생각하다가 어느새 그 생각만 하고 있던걸까요? 일탈을 하지만 일상을 깰 정도의 열정은 없는 그런 정도
오디너리한 삶을 나란히 사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오. 항상 말이죠.
폴란드인 p. 102,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비톨트와 베아트리스가 영어로 대화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어려워하는 장면이 여럿 나오더라고요. 몸짓 역시 마찬기지고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지네요. 3장을 읽고 다시 3장 처음으로 돌아가보니 비톨트가 영어로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음악으로 말하기 위해 쇼팽의 연주 파일을 보냈다고 하는 문장에 더 눈길이 갑니다.
우리 중 일부는 좋은 것들을 기억하죠. 또 일부는 나쁜 것들을 기억하고요. 어떤 것을 기억할지 선택하는 거죠. 어떤 기억들은 언더그라운드에 묻고요.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맞나요?
폴란드인 118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새로움의 쇼크. 진흙더미에 쓸려 묻혀버리는 것처럼 어두운 쇼크가 아니라, 전기 쇼크처럼 밝은 쇼크.
폴란드인 132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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