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D-29
276쪽, [십대 자녀를 데려온 간호사 2명은 꼭 나가야 한다고 울면서 하소연했다. 이곳에는 아직 돌봐야 할 환자가 있지 않느냐고 간호부장이 말하자, 간호사들은 도리어 그녀에게 욕을 했다. 다른 간호사들은 이미 떠나라는 허락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안 된단 말인가?]
300~301쪽, [2층의 환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면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다른 사람들 역시 익명의 간호사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주사를 맞은 환자들과 친숙했던 몇몇 간호사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끝까지 안전하게 구조되지 못하리라고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한 직원은 마치 환자들에게 이런 주사를 놓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뭔가 비현실적인, 그리고 아직 생각이 여물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했다. 2층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다른 직원 대부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비록 끔찍하기는 해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313~315쪽, [다른 어디보다 많은 환자가 사망한 병원이 바로 메모리얼이었지만, 홍수 지역 주변의 다른 보건 시설에서도 끔찍한 이야기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인트버나드 패리시에서 무너진 제방 근처에 있던 단층짜리 요양원 세인트리타스에서는 무려 30명 이상의 환자가 익사한 것이 분명했다. 폭풍 직전에 시설 대피와 관련해 재촉을 받았던 운영자 부부도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342쪽, [루이지애나 주의 법률에서 규정한 2급 살인에는, 살인하려는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범한 살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트리나 직후의 어수선한 상황이다보니, 굳이 사형 판결을 목표로 삼지 말자고, 따라서 굳이 1급 살인 혐의를 씌울 필요까지는 없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듯했다. 이보다는 경미한 ‘의도 없는 살인(故殺)’, 또는 방조 살인 혐의는 언제라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참고: 고살 : 고살(故殺, manslaughter)은 영미법에서 살인에 대한 분류이다. manslaughter는 우발적 살인과 과실치사를 포함하며 처음부터 살인의 의도가 있었던 모살(murder)과 구분된다. 대한민국의 법학계에서는 고살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원래 한국어 단어 고살의 정의엔 과실치사가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82%B4
한자로 ‘故殺’이라고 적어 놓고 ‘의도 없는 살인’이라고 앞에 나와 있는 게 의아했는데, 고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확한 번역이 아니군요.
343쪽, [섀퍼가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곳에 풍기는 죽음의 냄새였다. 병원 어디에서나 그 냄새가 났다. 한번 맡으면 결코 잊지 못할 법한 냄새였다.]
아이티 지진이나 인도네시아 쓰나미 재난 이후 구호현장에 관련한 기사를 읽으면 항상 나오는게 그 냄새에 대한 내용이었네요. 현장에서 미처 수습되지 못한 부패한 시신들에서 풍겨오는 시큼하고 비릿하고 지독한, 한번 맡으면 잊지 못하는 그런 냄새에 대한 내용이요. 그 냄새들이 몸에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던 그런 강렬했던 묘사들이 기억납니다. 궁금하긴 한데 절대 맡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하고요.
동아일보 입사 동기 기자가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 출장을 가서 르포 기사를 쓰고 왔어요. 그 형도 시신의 악취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대구 지하철 사고 때 취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 후각 경험은 특별한 게 없네요. 쪽방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현장 쪽의 냄새가 더 기억이 강하게 납니다.
프롤로그부터 7장까지 1부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관점에서 쭉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다 2부 8장에서부터 수사관의 시선으로 사건을 다시 보게 되는데, 이러한 관점 전환이 독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1부에서는 의사의 선택을 거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부에서는 그게 도무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악행으로 여겨지려고 하고... 메모리얼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노련한 저자가 잘 설계해서 선사하는 당혹감이겠지요.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여러 가지다.
348쪽, 사고 뒤 수사도 어째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게 되나 봅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
365쪽, [“우리는 이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인도적으로 가능한 일을 모두 했습니다. 정부는 우리가 자택에서, 거리에서, 병원에서 그냥 죽도록 완전히 내버렸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건 그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요? 왜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저절로 죽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인생은 고통 그 자체고 죽음이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안식이 인생의 끝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어느 순간 삶 자체가 고통이고 죽음이 안식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특히 밤에 그런 생각에 매혹되기도 하고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재난, 그 이후』의 의사들처럼 행동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드물게 ‘살아 있음’이 즐겁기도 해요. 요즘은 너무 살아 있는 거 같아서 힘들지만...
366쪽, [당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생명윤리학자 아서 캐플런은 미국의 배심원들이 죽음을 재촉한 의사를 감옥에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문화는 의사의 살인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우리는 아주, 정말 아주 정상 참작이 가능한 상황에서 안락사에 대한 옹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371쪽, [정부는 굳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범죄였다. 거기서 죽은 사람 대부분의 사망 원인은 바로 그것이었다. 수사관들은 병원의 의사들이 아니라 차라리 부시 대통령을 수사해야 했다. 폭풍 때 혼자 남아서 일한 사람들은 가만히 두어야만 했다. 이스벨이 보기에, ‘타이타닉’호의 침몰 상황에다가 전쟁 상황을 합친 것과 다름없었던 상황에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이들의 고통을 덜어준 의사는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으로 간주해야 했다.] 정말 맞는 말...
387쪽, [그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까워 고통에 시달릴 경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 일부 환자는 땀이 흥건했고, 또 일부 환자는 탈수로 인해 축 늘어져 있었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일부 환자로부터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다 곧이어 침묵이 흘렀는데, 마치 요란한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이것이 바로 죽음의 박자였다. 틸은 이들이 안전한 곳까지의 여정을 버티고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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