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D-29
저도 어느 순간 삶 자체가 고통이고 죽음이 안식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특히 밤에 그런 생각에 매혹되기도 하고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재난, 그 이후』의 의사들처럼 행동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드물게 ‘살아 있음’이 즐겁기도 해요. 요즘은 너무 살아 있는 거 같아서 힘들지만...
366쪽, [당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생명윤리학자 아서 캐플런은 미국의 배심원들이 죽음을 재촉한 의사를 감옥에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문화는 의사의 살인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우리는 아주, 정말 아주 정상 참작이 가능한 상황에서 안락사에 대한 옹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371쪽, [정부는 굳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범죄였다. 거기서 죽은 사람 대부분의 사망 원인은 바로 그것이었다. 수사관들은 병원의 의사들이 아니라 차라리 부시 대통령을 수사해야 했다. 폭풍 때 혼자 남아서 일한 사람들은 가만히 두어야만 했다. 이스벨이 보기에, ‘타이타닉’호의 침몰 상황에다가 전쟁 상황을 합친 것과 다름없었던 상황에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이들의 고통을 덜어준 의사는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으로 간주해야 했다.] 정말 맞는 말...
387쪽, [그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까워 고통에 시달릴 경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 일부 환자는 땀이 흥건했고, 또 일부 환자는 탈수로 인해 축 늘어져 있었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일부 환자로부터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다 곧이어 침묵이 흘렀는데, 마치 요란한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이것이 바로 죽음의 박자였다. 틸은 이들이 안전한 곳까지의 여정을 버티고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에는 이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는군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맞닥뜨릴 줄은 몰랐습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저 환자들의 고통을 내버려두는 게 법적으로는 안전한 일일 텐데요.
388쪽, [이른바 ‘도덕적 명료성’은 실행보다는 개념으로서 유지하기가 더 쉬웠다. 진실의 순간이 왔을 때, 틸은 주저하고 말았다.]
‘도덕적 명료성은 실행보다는 개념으로서 유지하기가 더 쉽다’는 말.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쟁을 두고도 써먹기 좋은 문장이겠습니다.
388쪽, [틸은 모르핀을 몇 번 더 주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100밀리그램은 되어 보였다. 틸은 캐런 윈과 함께 ‘성모송’을 외웠다. 그 남자는 계속 숨을 쉬었다. 환자의 순환계 기능이 너무나 저하되어 있어서, 약품이 체내로 잘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틸은 환자의 얼굴에 수건을 덮었다. 그가 기억하기에, 그 남자가 호흡을 멈추고 사망하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389쪽, [자기가 한 일이 옳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게 정말로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곧바로 틸의 마음속에서 뛰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나요?’ 만약 이 환자가 지금 벌어지는 일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가 어쨌거나 한 시간 안에 사망한다면, 그를 질식사시키는 일을 과연 잔인하다고 할 수 있을까?]
389쪽, [이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높아졌으며, 이들의 혈압과 혈당 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사와 간호사와 구급요원으로 이루어진 소수의 의료진은 무려 이틀 넘도록 잠을 한 숨도 못 자고 일했으며, 지친 나머지 서로를 향해 막말을 퍼붓고 있었다.]
390쪽, [목요일 밤 내내 신음과 비명과 죽음이 이어졌다.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길 시간 여유조차 없었다. 틸은 가만히 누워 귀를 기울였다.]
390~391쪽, [그의 도덕적 명료성이 그제야 되돌아왔다. 메모리얼에서 그가 모르핀과 미다졸람을 주사했던 바로 그 환자들이 바로 이곳까지 왔다면, 그들은 기껏해야 고통을 받다 죽어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나요?” 재난 이후 원래는 도덕적인 차원이었던 이 질문이 틸에게는 법적인 차원으로 변모했으며, 그로서는 확신의 가격을 결가의 대가로 치른 셈이 되고 말았다.]
400쪽,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법 집행기관 공무원들도 비극에 대처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입맛 떨어지는 농담을 주고받을 때가 있었다.] 기자도 비슷합니다.
407쪽, [복도 저편의 간호사실에 있는 상자 안에는 접이식 부리가 달린 금속제 후두경이 들어 있었다. 포는 이 도구로 환자의 입을 벌리고, 이 도구를 입안으로 집어넣어 혀를 옆으로 제치고, 다른 손으로 호흡용 튜브를 꺾어 환자의 목구멍에 집어넣곤 했다. 여기에는 그녀가 생명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하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었다. 대중이 그녀의 이름을 알기 전에 그녀가 이런 증거를 내보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시먼스의 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런 걱정은 불과 며칠 뒤에 현실이 되었다.]
411쪽, [포는 항상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수술을 할 수 없으며, 한동안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허리케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그녀는 자기 경험이 정말로 끔찍했고, 거기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절대로,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브렌다에게 말했다. 즉 말로는 결코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말이다.]
26쪽, [하지만 이곳을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뱁티스트(침례교)'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은 본래 '서던 뱁티스트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의 행정 명칭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이름,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침례교라는 명칭이 카트리나로 발생하게 될 수해의 비유로 기능하는 연출에서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여담이지만 토니 모리슨의 글에서 이러한 기법이 때때로 발견되더라고요. 특히 '솔로몬의 노래'에서)
아, 침례교와 수해를 연결 지을 생각은 못해봤네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서울 강북구가 고향이고, 마포구처럼 역사가 오래된 동네에서 산 기간이 꽤 되어서, 행정 명칭보다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이름이 저한테는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마포구 같은 곳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정식 행정 명칭이 뭔지도 상당히 헷갈립니다. 행정동도 있고 법정동도 있고 해서...
『솔로몬의 노래』 좋은가요? 어릴 때(아마도 토니 모리슨이 노벨문학상 받은 직후에) 『빌러비드』 읽다가 그만두고 이후 펼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도전해보고 싶기는 한데... 그런데 제가 읽었던 책은 분명히 ‘비러브드’로 기억하는데... 그새 번역 제목이 ‘빌러비드’로 바뀌었나 봅니다.
샐린저의 말처럼 어떤 작가는 친구가 되고 싶게 만든다면 토니 모리슨은 배우고 싶게 만드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로몬의 노래'는 '빌러비드'보다 서사 구조도 어렵고, 이야기가 묘사하는 공간도 방대해서 읽기 훨씬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모리슨은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인간의 고통을 합당하게 제시하는 사람이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느슨한 공동체주의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가 한 인간의 삶이 역사에서(모리슨의 경우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겪은 상처의 역사겠지요?) 종속되지도 분리되지도 않고 흐름 속에서 발현한 듯한 모리슨의 글이 좋았고, 그래서 '솔로몬의 노래'가 좋았습니다. 제가 사람이 좀 구닥다리라 아직 소설에도 목표와 기능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제 경우에는 인간성의 재현이 소설의 끝에 있기를 바라고, 재현의 방식이 개인적인 것을(모호한 표현 죄송합니다) 넘어설 때 환희를 느끼고는 합니다.
겨울꿈님 작가 영업 너무 잘하시네요. 저는 솔직히 토니 모리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새 학기에 사귀고 싶은 동급생이나 그 아래서 배워보고 싶은 선생님보다는 가능하면 미루고 싶은 숙제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거든요. (얼마 전까지 조너선 프랜즌이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겨울꿈님 글 읽고 나니 안 읽을 수는 없겠다 싶네요. 『솔로몬의 노래』보다 『빌러비드』가 좀 더 읽기 수월하다는 정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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