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D-29
여담이지만 '솔로몬의 노래'라는 제목도 성서의 아가서에서 따왔더군요. ('재난, 그 이후'의 사적인 명명을 성서에서 따오신 것을 보고 덧붙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노래』가 『빌러비드』보다 더 먼저 쓴 작품이군요. 모리슨의 세 번째 소설이고. 작업 초기부터 걸작을 펑펑 써내는 작가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이 병원 이름이 원래는 ‘서던 뱁티스트 병원’이었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을 때에는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였다가, 이후 ‘악스너 뱁티스트 메디컬 센터(Ochsner Baptist Medical Center)’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네요. ‘침례’라는 이름을 병원에 다시 쓴 명명자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때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기는 했을 거 같아요. 물에 잠겨 정화된다는 상징이 너무 강력해서, 셰리 핑크 저자도 책 제목으로 관련 문구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저는 문득 창세기 노아의 방주 부분에서 한 구절을 따와서 제목을 짓는 건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요. 아니면 한국어로는 어차피 별 의미 없지만 영어 숙어를 활용해서 ‘Coming Hell or High Water’ 같은 제목도 상상해 봅니다. ‘Five Days at Memorial’도 건조하니 좋지만.
꽤나 매력적인 제목인데 카트리나 재해를 빈곤과 인종적 측면에서 분석한, 다른 책에서 먼저 선점해 간 것 같네요. <Come Hell or High Water: Hurricane Katrina and the Color of Disaster>(2007) 아마존에 있는 책이었습니다.
제목을 다시 한번 씁니다. 「Come Hell or High Water: Hurricane Katrina and the Color of Disaster」 처음에 제목을 화살괄호를 써서 표시하니 마치 쓰지 않은 것처럼 전부 날아가버리네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마 홑화살괄호라고 부르는 꺾쇠 안의 영문자들을 html 명령어로 인식하는 모양이에요. 꺾쇠를 많이 쓰게 될 것 같은 사이트이니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덴장... 어쩐지 너무 멋있는 문구더라니... Color of Disaster라는 표현도 멋진데요.
54쪽 [실제로 서던 뱁티스트 병원은 인종통합정책을 맨 마지막에 가서야 받아들인 남부의 병원 가운데 하나였다...(중략)...1966년 이 병원의 성명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병원의 운영 조건과 상태를 지시하는 정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남아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더 잘 봉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다른 인종에 관한 미국 남부 지역의 반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게 되네요. (앵무새 죽이기였는지 파수꾼이었는지 헷갈리지만) 남북전쟁에 나선 남부인의 대부분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연방 정부가 지시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싸웠다는 하퍼 리의 진술을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은 변화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이러한 모습이 하수, 배수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은 행정 체계의 태도와도 비슷하네요.
노예 해방 이전 시대의 정서가 수백 년째 내려오는 걸까요? 공장이 발달한 북부와 달리 남부에서는 목화 산업이 노예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아니면 미국의 경제 중심이 북부로 이동하고 남부가 소외되면서, 자기들의 전통에 대한 자존심이 기묘하게 과거의 편견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요?
105쪽 [JCAHO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비상 기준을 제안하자, 미국 전역의 병원 중역진들은 이에 저항했으며, 자칫 값비싸고 보조금도 없는 의무사항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JCAHO 관리들에게 보내는 이들의 메시지는 딱 이런 식이었다. "우리도 나름의 대비는 하고 있으니까."] 제 앎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답을 못하겠지만, 이 페이지의 수세적인 발화와 비슷한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전통이라는 단어를 이끌어낸다면, 자기 본위의 차원이 아닌 외부의 작용이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대한 반발 역시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제 앎도 새끼손가락 손톱의 때 정도의 수준이라 부끄럽습니다. 누구나, 어느 지역이나, 외부에서 변화하라는 압박을 넣으면 반발을 할 거 같고, 미국은 더군다나 독립심을 강조하는 문화인 것 같고, 그 중에서도 남부는 더 그런 분위기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인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미국에서 있어본 기간은 보름도 채 안 되어 잘은 모르겠습니다. 보건의료기구평가합동위원회가 제안한 새 비상 기준에는 남부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병원 임원들이 다 반발을 한 거긴 하네요. ^^;;;
400~445쪽은 다른 각도로 읽기 고통스럽네요. 수사망이 천천히 조여오고 있고, 언론도 먹잇감을 대충 찾았고, 그런데 포를 비롯한 의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제대로 모르고 있고.
446쪽, [“그건 안 됩니다!” 포티의 공보실장인 크리스 워텔은 거의 소리치다시피 반대 의견을 냈다. 카트리나 때 활동한 보건 전문가를 1급 살인으로 기소한다는 생각은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짓이었다. 단순히 이들을 2급 살인 혐의로 수사한다는 것만 가지고도, 각지에서 항의 편지가 쏟아진 바 있었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2급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사면 없는 무기 강제노역형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1급 살인 혐의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고 해야, 사형을 추구할 수 있는 선택지뿐이었다.]
450쪽 전후의 묘사를 읽다가 애너 포 박사님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검색해봤습니다. 이런 외모이시군요.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p0707917
와 저랑 딱 동일한 부분에서 검색해보셨네요. 저는 작중에 묘사된, 체포되어 구치소에서 찍힌 사진을 보았습니다. 포와 랜드리 그리고 부도가 나란히 있는 사진이었네요. 묘사되어 있는대로 포 선생은 많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어요. 계속 글로만 읽던 분의 실제 모습을 보니(그것도 머그샷으로)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셋이 나란히 서서 찍힌 것은 아니었구요. 각각 찍힌 머그샷들이 나란히 편집된 사진이었습니다. 포는 당황한 듯 보였고, 랜드리와 부도는 무언가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456쪽, [“이번 사건은 안락사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명백하고도 단순한 살인입니다.”]
459~460쪽, [“그러면 누구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 드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수요일부터 목요일 사이, 그러니까 이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가 벌어졌을 당시를 돌아보신다면, 루이지애나 주 정부가 그 병원을 ‘버림받은’ 상태로 방치했음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460~463쪽까지의 분석은 그대로 옮겨 적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네요. 냉철하고 명료하고 정확해서. 스케치와 분석을 이렇게 잘 교차해 몰입감과 깊이를 양손에 쥐는 기술도 논픽션 저자로서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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