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D-29
저는 2014년에 뉴스를 잘 안 봤어요. 그리고 그 사건을 입에 잘 올리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들이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은 때로 기괴했고 때로 부끄러웠고 때로는 불쾌했습니다. 격렬한 감정 상태 그 자체를 즐기는 것 아닌가, 자신의 감수성을 뽐내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요. 이런 이야기도 얼마 전까지는 삼갔는데, 얼마 전에 한 지인이 이와 비슷한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걸 보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안도했더랬습니다.
550쪽, [부도나 랜드리와 함께 있을 때면 그린은 마치 장례식에 참석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나지막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다음 순간에는 누군가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물었다. “왜 하필 나지?”]
비극을 함께 겪은 이들이 이후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551쪽, [이곳은 수술실의 에어컨도 종종 고장 났고, 때로는 머리에 쓰는 사냥용 플래시에 의존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는 자기네 의과대학에서 굳이 해외로 의사들을 파견하는 이유가 뭔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이곳 루이지애나 주야말로 “우리가 가려는 그 어디보다 더 제3세계 같았기” 때문이다.]
미국 진짜 이상한 나라인 거 같아요. 그 이상함과, 미국이 세계의 규범이 되는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이 관련성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궁금합니다.
552~556쪽, 저는 심정적으로 애너 포 박사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제 이야기는 기괴하게 돌아갑니다. 저처럼 포 박사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예비 피고들이 여론전에서 승세를 잡게 되었고, 포 박사는 사람들 앞에서 사실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포 박사는 자신이 하는 말들에 거짓이 섞여 있음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여론전에서 이기고 싶어서 선을 넘는 걸까요, 그냥 부주의한 걸까요, 아니면 기억이 왜곡된 걸까요. 혹은 애초에 공과 사의 구분이 희미한 얄팍한 인물이었던 걸까요.
포 박사에게서도 거리를 두는 묘사를 보며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 박사의 행동을 납득가능하게, 하지만 합리화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묘사했습니다. 포 박사에 감정 이입해왔던 독자로서는 참으로 모순된 기분이 들게 되네요.
논픽션 이렇게 써야죠. ‘약자를 편든다’는 자세가 너무 강해서 이런 기본을 못 지키는 한국 르포르타주 단행본 몇 권 읽었습니다. 그걸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제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570쪽, [시먼스의 고소장은 일종의 떠보기에 불과했으며, 외관상 법적 주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주 검찰총장 포티를 인신공격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인신공격은 참으로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합니다. 변호사의 이런 전략을 제3자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변호사가 법정 밖에서 그런 술수를 부리는 것도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므로 직업윤리에 맞는 건가요? 변호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의뢰인의 처지라면 물론 저런 변호사를 원할 텐데요.
584~587쪽, 존 틸 박사의 경험은 정말 몇 겹의 아이러니인지 모르겠습니다. 의사인데 말기 대장암을 발견할 때까지 자기 몸 상태를 몰랐고, 호흡기내과 전공의인데 호흡기 문제를 겪는 바람에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메모리얼 병원에서 안락사에 가담했는데 본인도 같은 처지에 빠져 의료진의 손에 운명이 맡겨졌으며, 정작 본인은 살아났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언제나 소설보다 현실이 더 기이하군요.
592쪽, 제가 병원의 현재 이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악스너 뱁티스트 메디컬 센터’라고 적었는데 한국어 발음이 ‘악스너’가 아니라 ‘오크즈너’라고 해야 하나 보네요.
592~603쪽, 정의가 실현된 것일까요? 포 박사와 틸 박사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기는 했지만, 몹시 찜찜합니다. 앞부분에서는 제가 포나 틸 박사의 처지라면 어땠을까를 물으며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제가 법의학자나 배심원이었다면 어땠을까를 묻게 됩니다.
603~604쪽, [왜 우리는 삶의 모든 이정표를 축하하면서도, 유독 이것 하나만큼은 제외하는 걸까? 그린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삶의 시작을 보기 위해서는 모두가 참석하고 싶어 하지만, 출생과 사망의 비율은 정확히 1대 1이었다. 우리 모두는 작별을 고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가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에게 존엄을 부여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녀는 이렇게 물어볼 것이었다. “만약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먼 여행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는다면, 당신은 선착장에 나가서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겁니까?”]
평소 같으면 저 문장들에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 캐시 그린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와 그의 주장을 읽고 나서 저 대목을 마주치니 몹시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 배치 역시 노련한 솜씨일 듯합니다.
259쪽, [2층 로비의 냄새는 수전 멀더릭이 수요일에 이 지역을 지나다녔을 때보다 더 지독했다. 창문을 깼는데도 불구하고, 화장실 근처의 공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딱 고정되어 있었다.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읽는 내내 얼마나 고역스러운 냄새가 병원을 휘감고 있을지 상상하게 되네요. 작가도 이 냄새에 대한 내용을 1부에서 지속적으로 언급(인터뷰이에게 들은 내용들을 포함해서)하는 것을 보면 병원에 있던 사람들은 참기 힘든 냄새로 정말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260쪽, [멀더릭은 상대방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의사라는 사람이 자기 주위에 널려 있는 환자들보다 고양이 한 마리를 더 걱정할 수 있단 말인가? (...) 심지어 가장 상태가 위중한 환자가 누운 곳에서 모퉁이 하나 돌아선 곳에서 직원들이 자기네 애완동물을 애지중지 돌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멀더릭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멀더릭 마음이 제 마음과 같습니다.
제 마음도 찌찌뽕입니다.
355쪽, [응급실 경사로에 있다가, 병원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퇴짜를 맞는 모습을 목격하고, 결국 그 일로 인해 CEO와 말다툼까지 벌이고 나자,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젠장, 이놈들은 모두 총을 갖고 있잖아. 이놈들은 나를 이 물속에 던져 넣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 "자네는 더 이상 이 안에 들어올 수 없어." (...) 분명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를 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자기를 제거할 수도 있다고 킹은 확신했다.] 사고 방식이 충격적이네요.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자라온 사람의(그것도 엘리트라고 볼 수 있는 의사) 생각이 이렇구나 하는 대목입니다. 물론 킹이 자라온 환경과 초유의 재난의 영향이 있겠지만서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생각해보니 할리우드의 많은 재난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의 세계와 일상을 망가뜨리는 이벤트가 벌어진 이후에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 이외 타인을 모두 적으로 돌려 놓더라고요. 환한 인사를 건네던 이웃을 여차하면 나에게 총부리를 들이밀 수 있는 적으로 간주하죠.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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