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D-29
제가 이 책 감상 쓰면서 만든 말인데 왠지 마음에 들어서 몇 번 더 써먹으려고 합니다. ^^
포가 그렇게 결백해 보이지는 않지요?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혼란이었고, 좋은 혼란이었습니다.
책의 1부는 허리케인이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메모리얼 병원을 다루며 여기서 클라이맥스는 안락사 결정입니다. 책의 2부는 이후의 소송전과 여론전인데, 여기서 절정은 대배심의 기소 여부 결정입니다. 두 절정부 모두 대단히 강렬하고 효과적인 선택입니다. 복잡한 사연을 다층적으로 소개하는 책에 뚜렷한 몰입 지점을 만들고 독자들이 여러 가지 생각을 펼치면서도 헤매지 않게 합니다.
저자가 여러 가지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601~614쪽에서는 대배심의 결정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소개합니다. 메시지를 차치하고서도 이런 연출은 이제 절정을 지나 결말이 되었다고 독자에게 알리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고 여전히 찜찜한 상태이지만, 하나의 이야기는 제대로 마무리되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신문에 미래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거든요. 종이신문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들이 지금 구상하는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면 그것은 통신사이지 신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그래서 후배 신문기자들에게, 논픽션 저자로 살 길을 찾아보라고 혼자 떠들고 다닙니다. 그런 때 이 책을 강력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르포르타주 단행본은 이렇게 쓰라고 하고 싶군요.
한국 기자나 언론사의 한 부서가 펴낸 르포르타주 단행본이 없지는 않은데, 연재 기사를 기본으로 하다 보니 이런 구성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습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승전결의 플롯 없이 병렬식, 조립식인 경우가 많고, 소설 같은 연출도 별로 없어요. 제 선입견인지도 모르겠지만 기자 훈련을 받지 못한 저자의 르포르타주는 한쪽을 지나치게 편드는 경우가 많고 당연히 취재해야 할 현장을 빼먹는 때도 흔하고요.
논픽션 단행본 저자가 되려는 기자 후배들에게 책을 한 권 더 추천한다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뚜렷한 현장이 있는 글감으로 논픽션을 쓴다면 『재난, 그 이후』를, 현장이 없다면 『아웃라이어』를 추천하겠습니다. 둘 다 단순히 글 잘 쓰는 학자나 에세이 저자들에게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는 취재와, 그리 학문적으로 정교하지는 않은 저널리즘 방식의 분석이 결합한 훌륭한 논픽션입니다. 일간지 혹은 주간지에서 취재하고 기사 쓰는 스타일이 전부라고 여기는 한국 기자들이 배울 점도 많습니다.
601~614쪽까지 대배심 결정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며 제 생각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자신이 없네요. 관계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저도 이리저리 반응하게 되었고, 그런 감정들에 생각을 나중에 장식품처럼 갖다 붙인 건지도 모릅니다.
먼저 저는 검시관 프랭크 미냐드, 윤리학자 아서 캐플런, 원목 존 마스 신부의 반응을 읽을 때 마음이 편안했고, 제가 이 상황에 있었다면 이들처럼 행동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릴 능력이 있는지 회의하는 사람들이며,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평가를 유보합니다.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고 신중하다고 할 수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가장 나약한 이들입니다. 다행히 이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압니다. 저도 저의 나약함을 잊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저는 이중에서도 존 마스 신부의 반응에 가장 끌렸습니다. 제가 신을 믿지는 않지만요. 611쪽, [신부가 내놓은 말은, 사람들이 나쁜 상황에 직면할 경우,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에게 최선의 이익인 선택을 내려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위안을 믿었으며, 메모리얼 직원들은 위안을 제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신부는 하느님이 자비롭고도 용서가 많으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가 두 번째로 편안하게 여긴 그룹은 수사관 버지니아 라이더와 주무 검사 아서 부치 섀퍼, 내과 전문의 브라이언트 킹과 호러스 볼츠, 법의학자 시릴 웨크트 등입니다. 이들은 중심이 단단한 수사관 혹은 의사들이며, 자신들이 옳고 그름을 안다고 믿습니다. 이들이 보기에 포 박사와 간호사는 유죄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단죄로까지 밀고 나가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타협이라 할 수도 있고 체념 혹은 너그러움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중에서는 아서 부치 섀퍼에 대한 묘사가 와 닿았습니다. 607쪽, [섀퍼는 메모리얼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여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검사로서 섀퍼는 자기가 고생 끝에 재판까지 끌고 간 피의자 상당수가 결국 무죄로 풀려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평생 동안 그 일 때문에 부루퉁하며 살 수는 없었다.]
간호사 지나 이스벨과 캐시 그린의 반응은 다소 헷갈리기도 하고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해야 하는 전문가들이며, 극한 상황에 있었고, 앞으로도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의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새롭게 얻은 신념은 어쩐지 자기합리화의 분위기도 풍깁니다. 특히 캐시 그린의 열정은 상당히 꺼림칙합니다.
그래도 이스벨의 다짐은 심금을 울렸습니다. 602쪽, [이스벨은 자기와 라이프케어 및 메모리얼의 동료들이 그 당시 최선을 다했다는 믿음에 매달렸다. 만약 요청을 받기만 한다면, 이 간호사는 또다시 폭풍 속에서 근무할 것이었다. 그건 바로 그녀의 직업이고, 또한 그녀의 맹세였으니까.]
다음으로는 제 눈에는 마뜩치 않은 이들입니다. 특히 저는 앤절라 맥마너스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이나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한 이해, 너그러움은 없고 단죄의 의지만 느껴졌으며, 심지어 단죄의 논리나 그 방법에 대한 탐구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울 테니 누군가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해 달라, 그런 걸까요. 그녀 역시 고통 받은 사람인데 제가 너무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걸까요.
에필로그에서 갑자기 1인칭 시점이 됩니다. 이런 시점 전환도 무척 세련되게 느껴집니다.
616쪽부터 나오는 허리케인 샌디와 뉴욕 벨뷰 병원의 사연. 미국이 커서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 건가요, 미국 보건의료시스템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가요.
623~624쪽, 포 박사가 재난 상황에서 봉사하는 의료 근로자를 보호하는 기준과 지침, 법안을 만드는 이야기. 감동을 받아야할지, 으스스함을 느껴야 할지.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636쪽, [아니면, 가장 좋은 원칙은 비상 아닌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원칙일까? 즉 ‘먼저 온 사람을 먼저 치료한다’는 방식이거나, 특정한 시점에 몸이 아픈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제비뽑기 방식일까?]
한국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엇비슷한 질문을 맞닥뜨렸다고 봅니다. 다행히 치명적인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고, 한국인에게는 늘 한국식 해법이 있죠. ‘동원할 수 있는 민관군을 동원한 뒤 사회적 압박을 주고 갈아 넣는다. 그리고 결과를 놓고 기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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