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챌린지] 2. 재난, 그 이후

D-29
225~226쪽, [한 남자 환자는 밤이 되었는데도 휠체어에 계속 앉아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내일 아침에 맨 먼저 떠날 수 있도록 대열의 맨 앞에 있고 싶었는데,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언제라도 움직일 채비가 되어 있으니 좀 더 유리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242쪽, [“그들에게는 식량이 없고, 버젓한 환경, 즉 쉼터가 없기 때문에, 급기야 원초적인 약육강식의 인간 본능이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59쪽, [멀더릭은 나이 많은 그 여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환자의 등에 깐 패드를 벗겨내고, 오물을 닦기 시작했다. 여자는 울었다. 기저귀와 깨끗한 침구가 부족한 상황에 더위까지 겹치면서, 환자들을 건조하고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간호사들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환자의 피부가 쓸려 있었다. 멀더릭은 환자의 엉덩이에서도 빨간 종기를 새로 발견했다. 간이침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계속 누워 있다보니, 피부가 결국 터져버린 것 같았다. 멀더릭이 아무리 살살 만져도 환자는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264쪽, [코커럼은 자기들이 이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일이 사실상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통의 과정을 겪게 하는 것이므로, 거의 범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276쪽, [십대 자녀를 데려온 간호사 2명은 꼭 나가야 한다고 울면서 하소연했다. 이곳에는 아직 돌봐야 할 환자가 있지 않느냐고 간호부장이 말하자, 간호사들은 도리어 그녀에게 욕을 했다. 다른 간호사들은 이미 떠나라는 허락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안 된단 말인가?]
300~301쪽, [2층의 환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면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다른 사람들 역시 익명의 간호사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주사를 맞은 환자들과 친숙했던 몇몇 간호사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끝까지 안전하게 구조되지 못하리라고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한 직원은 마치 환자들에게 이런 주사를 놓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뭔가 비현실적인, 그리고 아직 생각이 여물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했다. 2층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다른 직원 대부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비록 끔찍하기는 해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313~315쪽, [다른 어디보다 많은 환자가 사망한 병원이 바로 메모리얼이었지만, 홍수 지역 주변의 다른 보건 시설에서도 끔찍한 이야기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인트버나드 패리시에서 무너진 제방 근처에 있던 단층짜리 요양원 세인트리타스에서는 무려 30명 이상의 환자가 익사한 것이 분명했다. 폭풍 직전에 시설 대피와 관련해 재촉을 받았던 운영자 부부도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342쪽, [루이지애나 주의 법률에서 규정한 2급 살인에는, 살인하려는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범한 살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트리나 직후의 어수선한 상황이다보니, 굳이 사형 판결을 목표로 삼지 말자고, 따라서 굳이 1급 살인 혐의를 씌울 필요까지는 없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듯했다. 이보다는 경미한 ‘의도 없는 살인(故殺)’, 또는 방조 살인 혐의는 언제라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참고: 고살 : 고살(故殺, manslaughter)은 영미법에서 살인에 대한 분류이다. manslaughter는 우발적 살인과 과실치사를 포함하며 처음부터 살인의 의도가 있었던 모살(murder)과 구분된다. 대한민국의 법학계에서는 고살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원래 한국어 단어 고살의 정의엔 과실치사가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82%B4
한자로 ‘故殺’이라고 적어 놓고 ‘의도 없는 살인’이라고 앞에 나와 있는 게 의아했는데, 고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확한 번역이 아니군요.
343쪽, [섀퍼가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곳에 풍기는 죽음의 냄새였다. 병원 어디에서나 그 냄새가 났다. 한번 맡으면 결코 잊지 못할 법한 냄새였다.]
아이티 지진이나 인도네시아 쓰나미 재난 이후 구호현장에 관련한 기사를 읽으면 항상 나오는게 그 냄새에 대한 내용이었네요. 현장에서 미처 수습되지 못한 부패한 시신들에서 풍겨오는 시큼하고 비릿하고 지독한, 한번 맡으면 잊지 못하는 그런 냄새에 대한 내용이요. 그 냄새들이 몸에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던 그런 강렬했던 묘사들이 기억납니다. 궁금하긴 한데 절대 맡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하고요.
동아일보 입사 동기 기자가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 출장을 가서 르포 기사를 쓰고 왔어요. 그 형도 시신의 악취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대구 지하철 사고 때 취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 후각 경험은 특별한 게 없네요. 쪽방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현장 쪽의 냄새가 더 기억이 강하게 납니다.
프롤로그부터 7장까지 1부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관점에서 쭉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다 2부 8장에서부터 수사관의 시선으로 사건을 다시 보게 되는데, 이러한 관점 전환이 독자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1부에서는 의사의 선택을 거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부에서는 그게 도무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악행으로 여겨지려고 하고... 메모리얼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노련한 저자가 잘 설계해서 선사하는 당혹감이겠지요.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여러 가지다.
348쪽, 사고 뒤 수사도 어째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게 되나 봅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
365쪽, [“우리는 이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인도적으로 가능한 일을 모두 했습니다. 정부는 우리가 자택에서, 거리에서, 병원에서 그냥 죽도록 완전히 내버렸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건 그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요? 왜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저절로 죽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인생은 고통 그 자체고 죽음이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안식이 인생의 끝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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