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존속] 먼저, 보르헤스는 지옥에 대한 견해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맥이 빠지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유황불과 죄인의 비명으로 가득한 지옥의 이미지는 저 엄혹했던 중세 시대의 종교 재판을 연상케 한다는 겁니다. 2세기 카르타고 출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지옥의 영벌이 "가장 거창한 구경거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이런 지옥을 묘사할 때, 그 고통이 '영원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보르헤스에게 "영원이라는 속성은 소름끼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성으로서 '불멸'이란 인간에게는 귀속될 수 없는 속성이며, 오직 하느님의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옥의 영벌은 악을 영원하게 만들기 때문에 언어도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지옥의 고통이 '영원함'을 옹호하려고 갖은 논리를 만들어냈다고, 보르헤스는 설명합니다. 고통의 영원성으로 인해 교리가 강화되고,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무한함이 증거되며, 나아가 우리의 자유의지가 그 영원함을 원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보르헤스는 그것이 반종교적인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옥은 현 체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징벌 공간으로 상상되었습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았을 시에 가게 될 공간을 최대한 엄혹하게 묘사함으로써 현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공고히 해야 할 체제란 종교적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종교에 대한 권위가 점차 약화되면서, 지옥에 대한 상상력도 점차 바뀌게 되었습니다. 점차 지옥은 상상의 종교적 구금 시설이 아닌, 현실의 한 귀퉁이로 자리를 옮겨옵니다. 영화 ⟪무간도⟫의 지옥을 보십시오. 결말부에서 인물은 살아서 고통받는 현실의 지옥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오늘의 지옥의 모습은 어떤지 궁리해보게 됩니다. 이 글 뒤에 덧붙인 [후기]에 대한 제 작은 감상을 적어 보겠습니다.
얼마 전, 직장인이 많은 역 인근의 대로변을 특이하게 개조한 1톤 포터가 서행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트럭 적재함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운전석 위쪽 부분에는 확성기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조수석에는 한 중년 남성이 마이크로 자기 정치적 의견을 토로하고 있었는데, 그는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진짜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주장인즉,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고, 속고 있으며, 자신이 아는 진짜 진실을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한편으로는 괴기스럽고, 그 방식은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진실 안에서는 용기있는 진실의 담지자였겠지만, 대로변을 지나던 직장인 중 하나였던 저에겐 자폐적인 진실에 피폭된 환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진짜 현실'을 말했고, 스스로 계몽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 남자는 '나는 진짜 진실을 알고 꿈에서 깨어났다'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또 하나의 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무엇이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스스로 계몽되었다는 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쩜 현실이야말로 또 하나의 지옥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스스로 계몽되었다고 믿는 그 꿈 역시도 행복한 지옥이긴 매한가지일 겁니다.

무간도홍콩 경찰의 비밀 요원인 진영인(양조위). 경찰학교에서 훈련을 받다가 발탁된 그는 범죄 조직 삼합회에 잠입하여 10년째 조직원을 위장한 스파이로 살아가고 있다. 전과 8범에 2번의 형기를 치른 완벽한 범죄자가 되어 있는 그는 현재 보스 한침이 가장 신임하는 심복이기도 하다. 삼합회의 숨은 조직원 유건명(유덕화). 18살 때부터 경찰에 잠입해 스파이로 활동해온 그는 현재 경찰 내에서 가장 뛰어난 강력반 요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찰로서의 경력이 벌써 10년째에 이르는 그는 이제 그만 조직원으로서의 신분을 버리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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