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혼자 읽기

D-29
하지만 저는 동생과는 연락이 안 되는 상태에서 왠지 몹시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간상으로 문제의 그 열차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정말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저는 외부로 돌아다녀야 하는 영업사원이라 전차를 타고 고객을 만나러 갔습니다. 도중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급히 어머니께 연락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가 10시 반에서 11시 정도였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방금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시즈코가 지하철에서 독가스에 당한 모양이니 빨리 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은 니시신주쿠의 ○○병원입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급히 회사로 돌아와 전차를 타고 신주쿠까지 가서 병원에 도착한 게 12시였습니다. 그전에 전화로 어떤 상태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요?” 하고 물었더니 “아무튼 지금은 중독상태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중독이란 바로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이었지요. 불안한 마음에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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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해보니 피해자들로 가득 찼더군요. 넓은 병원 로비가 환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모두들 링거주사를 맞고 안과와 내과의 검진을 받고 있었습니다. 정말 큰일이 벌어졌구나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독가스로 추정된다는 텔레비전 보도가 있긴 했지만 그 이상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의사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더군요. 결국 그날 제가 들은 이야기는 농약으로 보이는 극약을 마셨다는 간단한 설명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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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니 마치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입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습니다. 고통스럽다든지 답답하다든지 하는 그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심장박동도 아주 약했습니다. 띄엄띄엄 약하게 뛰는 상태를 보일 뿐이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그날(20일) 저녁에는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들이 병원으로 왔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까지 다 부른 것입니다. 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시즈코가 큰일을 당했어” 하고…… 아이들도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울지 않는 줄 알고 있으니까요. 두 아이는 “아빠, 울지 마” 하고 같이 엉엉 울면서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부모님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오신 분들답게 묵묵히 참아내시더군요.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 밤새 우셨다고 합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담담해 보이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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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가 신주쿠의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그곳에 갔습니다. 가끔 몸이 좋지 않을 때만 제외하고 일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7시부터 시작되는 면회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갔습니다. 우리 회사의 소장이 차로 바래다줄 때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동안 체중이 많이 빠져서 여위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병원을 옮긴 8월 23일까지 약 다섯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표현만은 무척 간단하더군요. “이제는 다른 사람과, 예를 들면 가족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이죠. 요컨대 이런 말이었습니다. 일어날 수 없다, 말도 할 수 없다, 의식도 거의 없다. 그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차라리 시즈코는 그 자리에서 죽는 게 나았어! 저애는 그렇다 치고 너희들 고생이 말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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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때가 제일 가슴이 아팠습니다. 동생이 사고를 당한 일도 물론 가슴 아프지요. 그러나 그보다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하신다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차라리 그때 죽는 게 나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시즈코가 쓰러지고 열흘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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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이쪽에서 말을 하면 알아들을 정도는 됩니다. 의사의 말로는 자신의 가족관계(아버지, 어머니, 오빠, 올케, 조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요컨대 인간관계에 관한 인식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 것 같다는 거지요. 나는 늘 “오빠가 왔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제가 가면 오빠라는 사실은 아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빠와 자신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억도 거의 다 잃어버린 것 같으니까요.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입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은 콧구멍을 통해 직접 위 속으로 넣어줍니다. 목 근육이 굳어버렸지요. 성대에는 이상이 없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근육이 굳었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재활치료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발로 걸어서 병실을 걸어나가는 것이라 합니다. 실제로 시즈코가 그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여하튼 그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저는 병원과 의사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가족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저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합니다. 동생에게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함께 여행도 다니고 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시즈코가 우리 말을 알아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처음에는 “우─” 하는 소리뿐이었지만 정말 끝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같이 있던 간호사도 다행이라며 같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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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는 그때 “아, 우” 하는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변해버린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의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머릿속의 감정은 처음에는 울음과 외침의 형태로 불안정하게 표출된다고 하더군요. 그게 첫걸음이라고요.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사건 전날 밤,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걸 행복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정말 사소한 행복이지요. 그런데 하루가 지난 다음 날 그 터무니없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그 사소한 행복마저도 빼앗아간 놈들입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사건 직후 제가 병원의 기둥과 벽에다 마구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댔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옴진리교의 범행이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정말 화가 치밀어서 상대가 누구든 정말 가만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 손이 아파서 아내에게 “왜 여기가 아프지? 이상한데?” 하고 말했더니, “당신이 벽에다 주먹질을 했으니까 그렇죠”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서야 그때의 일이 어렴풋이 생각났습니다. 그 정도로 화가 났던 겁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중증 장애를 가진 동생의 모습을 낯선 타인에게 보인다는 것이 가족으로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남에게 그 모습을 보이는 걸 넘어 이렇게 문장으로 바꾸어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가족으로서 결코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일에 한 사람의 작가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시즈코 씨 본인에 대해서.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하야시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일을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하야시 야스오가 우산 끝으로 찔러 터뜨린 사린 봉지 때문에 피해를 입고 인생이 바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을 극명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료를 몇 번이나 면밀히 검토하면서 사건 당일 하야시 야스오가 취했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의 사실로서 머릿속에 선명하게 재현해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행동과 사린 봉지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연결해왔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물론 하야시 야스오가 체포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인생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1995년 3월 20일에 그 사건 현장에서 훼손되고 상실된 것들 대부분은 아마도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건은 정리되어야 한다. 그의 체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그러니 ‘최후의 한 사람이 잡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마땅한데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에서 힘이 쪽 빠져버리는 듯한 허무감이 들 뿐이었다. 오히려 ‘지금부터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절절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오랜 취재 생활 속에서 피해자들의 시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습관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쁨 같은 감정은 전혀 일지 않았다.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허무감과 아릿한 통증이 위벽을 긁는 산처럼 은밀히 솟구쳐오를 뿐이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시즈코 씨는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상태다. 애석하게도 사건 이전의 기억을 거의 떠올릴 수 없다. 담당의사는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등학생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다쓰오 씨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고의 전체적인 수준의 문제인지, 사고회로를 말하는 것인지, 또는 잃어버린 지식과 상식의 문제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인공호흡기에 의존할 때 목을 절개한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구멍은 지금도 직경 일 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금속으로 막혀 있다. 그것은 그녀가 넘을 뻔했던 죽음의 문턱을 보여주는 표정 없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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