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혼자 읽기

D-29
형님에게는 아이가 둘 있어서(저와 같은 시기에 마침 셋째를 출산하였습니다), 제가 훌쩍훌쩍 울고 있으면 그 아이들이 와서 “작은엄마 괜찮아?”라고 말하는 겁니다. “에이지 삼촌, 죽었지”라고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요코하마에 돌아온 것은 그해 9월이었습니다. 반년 정도 남편의 집에 있었습니다. 내 집 같은 기분이었습니다(웃음). 지금도 자주 가지만 갈 때마다 즐거워요. 모두 따뜻하게 맞아주고, 남편의 묘도 그곳에 있으니까요.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사건 후 일 년이 지나 조금 마음의 정리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이젠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점점 뚜렷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아직도 뭔가…… 남편은 미국에 출장을 자주 갔기 때문에 이삼 개월 집을 비운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없어도 당연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죽은 뒤에도 ‘아, 출장 갔지’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일 년 정도 계속 그랬습니다. 나는 출산 때문에 고향에 와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나 갑자기 “다녀왔어” 하면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합니다. 때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 그이는 출장 갔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한참 생각하다가 위패를 보고는 ‘아, 그렇지. 그이는 죽었어’라고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알면서도 아직도 왠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실과 공상이 뒤섞여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이가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성묘를 하는 그런 모순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그가 죽고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그건 정말 괴로웠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아버지가 아이를 목말 태우는 것을 보거나 하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젊은 부부의 대화를 듣거나 하면 고개를 돌리고 싶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러나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스스로 타일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태연해졌습니다. 다른 아버지가 아이를 달래는 것을 봐도 마음이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우에다로 관을 옮길 때도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과 카메라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정은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았어요. 정말 제멋대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만 내버려두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혼모쿠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저를 알아보고 길을 걸어가면 뒤에서 수군대며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 사람, 그 사린사건으로 남편을 잃었어’라고요.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등으로 그런 느낌이 전해져오는 겁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사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제가 처음으로 검찰청에 사건에 관한 개요를 들으러 갔을 때, 남편을 도와준 사람과 데리고 온 사람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지하철 직원도 증언했습니다. “남편이 죽을 때의 상태를 알고 싶습니까?”라고 검사가 묻기에 “물론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니…… 그이가 그렇게 괴로워하며 죽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 질질 끌며 죽이지 않는지’,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극형에 처하길 바랍니다. 재판을 보면 정말 화가 치밉니다. 남편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해되었을까요. 남편과 저와 아이의 미래를 망친 이 억울함을 어디에다 하소연하면 좋을지……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솔직히 아사하라는 제 손으로 죽이고 싶습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조금씩 천천히 죽이고 싶습니다. 히비야 선의 실행범인 하야시도 아직 잡히지 않았죠. 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희생자가 거기에서 얼마나 괴로워하며 죽었는지, 매스컴은 조금도 보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실은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쓰모토 사린사건 때는 약간 보도되었지만, 지하철 사린사건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픽 쓰러져 그대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신문기사도 이거나 저거나 모두 마찬가지죠. 저도 검찰청에 가서 검사가 읽는 조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남편이 굉장히 괴로워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죽었는지. 얼마나 허망한 마음으로 죽어갔는지를……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때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기서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상세한 것까지, 심장의 고동에서 숨결의 리듬까지 구체적으로 극명하게 알고 싶었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그것은 나일 수도 있었고 당신일 수도 있었다)이 도쿄의 지하에서 이런 생각지도 않은 기묘한 사건에 갑자기 휘말려들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많든 적든 ‘정의’ ‘제정신’ ‘정상’이라는 커다란 승합마차에 올라탔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상대성과 절대성이 한없이 근접하기 때문이다. 즉 아사하라 쇼코나 옴진리교 신자에 비하면, 또는 그들의 행위에 비하면 이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분명한 ‘정의’이고 ‘제정신’이고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만큼 알기 쉬운 콘센서스(Consensus, 의견 일치)는 없다. 매스미디어는 하나같이 그 흐름을 타고 그 기세를 점점 가속시켰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한 가지만은 명확하다. 약간 기묘한 ‘거북스러움과 께름칙함’이 남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갸웃한다. 도대체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은 그 ‘거북스러움과 께름칙함’을 잊기 위해 그 사건 자체를 과거라는 궤짝 속에 쓸어넣어버리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건 그 자체의 의미를 ‘재판’이라는 고정된 시스템 속에서 그럴듯하게 문장화해 제도 차원에서 처리해버리려는 것 같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다시 말해 ‘옴진리교’와 ‘지하철 사린사건’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커다란 충격은 아직도 유효하게 분석되지 않았고, 그 의미와 교훈은 아직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끝내는 지금 나는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광적인 집단이 일으킨 예외적이며 무의미한 범죄 아닌가’ 하며 사건을 간단히 정리해버리는 게 아닐까. 극단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결국 네 컷 만화 같은 ‘웃음거리’로서, 기묘한 범죄 가십으로서, 또는 세대별로 수렴된 ‘도시전설’의 형태로만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우리가 이 불행한 사건을 통해 진실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거기서 일어난 일을 다시 한번 다른 각도에서 다른 방식으로 철저히 분석하고 조사해야 할 때를 맞은 것이 아닐까. ‘옴진리교는 악이다’라고 말하는 건 쉽다. 또한 ‘악과 정상은 다르다’라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간단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논리로 정면에서 파헤쳐본들 그것으로 ‘승합마차적 콘센서스’의 주술을 풀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기본 자세는 ‘피해자=무구한 존재=정의’라는 ‘이쪽’과, ‘가해자=더럽혀진 존재=악’이라는 ‘저쪽’을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쪽’의 포지션을 전제조건으로 고정시켜두고 그것을 이른바 지렛대의 받침점으로 삼아 ‘저쪽’의 행위와 논리의 왜곡을 철저하게 세분화하고 분석해가는 것이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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