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에 회사 일을 마치면 다쓰오 씨는 그 차로 병원으로 가서 한 시간 정도 동생 곁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손을 잡기도 하고 딸기 요구르트를 먹여주기도 한다. 말하기 연습도 한다. 그리고 동생의 뇌에서 사라져버린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되살리는 작업을 한다. 가족과 함께 갔던 곳, 함께 했던 일에 관한 기억이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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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병원 면회 시간은 밤 8시 반까지지만 다쓰오 씨의 경우는 병원에서 특별히 배려를 해준다. 면회가 끝나면 세탁물을 들고 다시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간다. 그리고 지하철역까지 오 분 정도 걷고, 거기서 전차를 세 번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역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다쓰오 씨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 험난한 생활이 벌써 일 년하고도 팔 개월이나 계속되고 있다. 피로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오래 이런 생활이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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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이게 교통사고 때문이라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원인이 있고 어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터무니없는 범죄 행위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잠시 입을 다문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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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이렇게 매일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회복 속도가 너무 느려서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시즈코는 확실히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진전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참 잘 견뎌냈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시즈코의 내면에는 ‘좋아지고 싶다, 빨리 낫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 수 있고, 시즈코의 그런 의지가 저를 떠받쳐주었습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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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시즈코는 괴롭다, 피곤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병원에 와 있는 일 년 삼 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훈련, 언어 훈련, 그것 말고도 전문의가 붙어서 각종 기능 회복을 위한 훈련을 합니다. 이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막대한 노력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렇지만 피곤하냐고 묻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한 적은 세 번밖에 없습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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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본인의 노력 때문에 이 정도의 회복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의식조차 없었던 최초의 몇 개월 동안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의료 관계자 대부분은 그녀의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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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그러나 현실적인 것이든 가상적인 것이든 그녀의 의식 속에는 ‘디즈니랜드’의 풍경이 있다. 나는 그 존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풍경인지는 모른다. 나는 가능하다면 그것을 그녀의 눈을 통해 보고 싶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시즈코 씨 자신뿐이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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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휠체어 곁에 서서 손을 내밀자 그녀는 아까보다 더 세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아까보다 더 강한 의지로 뭔가를 전하려는 듯 내 손을 오래오래 잡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세게 내 손을 잡아준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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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그날 저녁 병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용기를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도무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었다.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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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이렇게 원고를 쓰면서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오랜만에 그런 ‘근원적인 명제’에 직면했다. 만일 내가 시즈코 씨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그녀만큼 ‘살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나에게 그 정도의 용기가 있을까? 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세게 다른 사람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줄 수 있을까?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정말 자신이 없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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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종교에서 구원을 찾는다. 그러나 만일 종교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원을 찾아야 할까? 시즈코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 번이나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사람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 빛은 무엇을 비추고 있을까. 언젠가 그녀가 건강을 되찾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그때 무엇을 보고 있었나요?”라고.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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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그러나 결코 그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회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만큼 정확하고 방대한 정보를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사건을 미리 막을 수 없었다는 회한입니다. 사회를 향하여 좀더 큰 목소리로 호소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두 겁을 먹고 뒤로 빠져버린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두려웠습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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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지만, 간호사가 모두 굉장한 미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 간호사는 참 미인이야. 미인은 성격이 차갑다고 하던데 그 사람은 정말 친절해” 하고 말했지요. 얼마 후 의식이 돌아온 다음에 보니…… 아마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던 모양입니다(웃음).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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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그러나 밤에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병원 침대 가장자리에 파이프가 있지 않습니까. 그 파이프를 만지면 어둠 저편에서 젖은 손이 불쑥 튀어나와 저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낮에는 환하고 주위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안 들지만, 밤에는 자려다가도 파이프에 손이 닿으면 젖은 손이 뻗어나와 저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의식이 명료해지고 기억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면 될수록 그 공포는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저는 그게 환각증상인지도 모르고, 이 병실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를 불러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창피해서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저는 집에서 절대적인 남편이며 가장이라서 ‘무섭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거든요(웃음).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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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 병원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을 먹지 못할 때는 아내에게 비닐봉지에 넣어서 버리라고 했습니다. 회복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그렇게 해서 억지로 열하루째에 퇴원을 했습니다. 적어도 보름은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말이죠.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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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그러나 집에 돌아와도 결국 마찬가지였습니다. 발이 이불 밖으로 비어져나와 차가운 물건에 닿으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공포가 되살아나는 겁니다. 혼자서 욕실에 들어갈 때도 그렇습니다. 나 혼자 남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밤늦게 거실에 있다가 제각기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나면 정말 두렵습니다. 목욕탕에도 혼자 있는 게 두려워서 아내를 불러 등을 밀게 합니다. 아내는 간단히 등만 밀고는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절대로 내가 나가기 전에 욕실을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나가기 전에 욕실을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먼저 나가겠다고 말이죠(웃음).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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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유럽에서는 테러가 일상적인 일처럼 자주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제까지 그런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 살면서 역시 일본이 안전하고 좋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무차별 테러에 화학병기인 사린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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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를테면 IRA 같은 경우는, 그들이 어떤 수단을 쓰느냐는 제쳐두고라도 그들이 지향하는 목적은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린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다행히 후유증도 없이 회복되었지만, 생명을 잃은 사람이나 심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그 울분을 풀 데가 없을 것입니다. 죽으면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죽음이 있고 의미 없는 죽음이 있지 않습니까.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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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이번 사건은 여러 각도에서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법치국가이므로 이번 기회에 납득할 수 있는 논의를 거쳐 이 사건의 책임 소재를 명시하고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범한 죄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그 처벌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뇌에 의한 범죄의 전례가 없으므로 거기에 관한 명확한 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판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처참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의 위기관리에 관한 논의를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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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우리 앞 세대가 힘들게 노력해서 이 나라를 풍족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었으니 우리는 그것을 보전하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 일본에 절실한 것은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지금처럼 물질만 추구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없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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