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운동에 있어서의 '대표'는 이런 세계사적 격동 속에서 태어났다. 지금껏 계승되고 있는 '33인 민족대표'라는 명칭, 이것은 '대표' 개념 자체가 해체ㆍ재구성되고 있던 상황에서 시도된 숱한 실험 중 하나였다. 그 정당성이 민중봉기에 의해 추인됨으로써 '민족대표'는 1919년 4월의 상해 임시정부 구성까지 이어지는 동력이 될 수 있었다. '대표'임을 자임하는 이들이 많았던 만큼이나 '임시정부'로서 스스로를 표명한 단체가 많았던 1919년 봄, 갈래 갈래 분열됐을지도 모를 그들 흐름은 3.1 운동의 폭발에 힘입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일될 수 있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84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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