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옛 왕조를 민족의 상징으로 승인하는 심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1 운동을 통해 그런 심리는 민족의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갔다. 물론 그런 진행이 처음부터 의식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전개가 미리 토의되고 준비되지는 않았다. 3.1 운동을 통해 국가와 정부가 탄생했으나, 그 실제는 3.1 운동을 통해 어떤 각성과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명확히 이해, 정리하지 못한 채 3.1 운동의 결과로서의 대중 심리를 수용한 측면이 크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0년간 3.1 운동을 회고하고 평가할 때 겪였던 혼란은 3.1 운동 자체가 지닌 혼란의 반영이기도 하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00쪽, 권보드래 지음
세계적으로 군주정이 붕괴하고 있던 1910년대에, 그러나 공화정은 무조건 선진적이요 왕정은 무조건 후진적이라고 전제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에서 정체(政體)의 결정은 본격적 토의와 조정이 필요한 과제였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05쪽, 권보드래 지음
3월 1일의 서울, 그리고 4월 23일 국민대회 날 서울에서 태극기가 목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둘만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사건은 3.1운동에서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인력이나 사려의 부족 때문에 미처 태극기를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두 사건의 주동자들은 공히 태극기의 사용을 꺼리거나 적어도 주저했다고 생각할 수 있음직하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06쪽, 권보드래 지음
요컨대 3.1 운동에 있어 태극기의 위상과 의미는 통념보다 불안정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1900년대와 1910년대를 통해 국기의 의미 자체가 변화했기에 태극기는 3.1 운동에서도 등장할 수 있었다. 즉 군주의 통치권을 표상하는 측면이 약화되면서 국가-국민의 일체화 쪽으로 그 중심축이 옮아갔기에 태극기는 1910년 강제병합 후에도 민족 상징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 3.1 운동기에 '독립만세'로써 보충된 태극기는 바로 그런 일련의 변형을 상기시키는 바 있다. 대한제국에 빚지고 대한제국을 기억하면서도 그 못지않게 강렬하게 신생(新生)에의 열망을 품고 있는 '만세 태극기'라면 말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07쪽 , 권보드래 지음
3.1 운동은 봉기의 터전일 뿐 아니라 공론의 토대였다. 새로운 정치적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토론의 장인 동시 행동의 장이었다. ... 언어와 사상이 무르익은 후 행동과 제도화가 뒤따르는 장기적 과정일 수 없었다. 총칼에 맞서 봉기를 조직하면서, 선전전을 펼치고 임시정부를 만들어 가면서, 3.1 운동의 대중은 언어와 행동이 하나된 식민지의 공론장을 개척했다. 그들은 독립이 박두했다는 소문에 고무돼 만세 부르며 일어나, 그 이후의 몇 달을 거쳐 이후의 정치체제와 그 속에서 살아가게 될 자기 자신을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3.1 운동은 각성의 과정이자 자아 형성의 과정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12쪽, 권보드래 지음
10년간의 침묵 끝에 연대와 공공성의 세계를 다시 만난 대중은 그 사이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민감하게 포착해냈다. 천도교와 기독교라는 종교 조직의, 또한 근대학교 및 학생층의 선도적 역할을 보면서, 옛 황제와 황실이 수동적이지만 안전한 생애로 도피해 있는 동안 어떤 주체가 부상했는지를 절감했으며, 오래된 지배 계층이 무력화되고 보수화되어 향촌에서조차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음을 깨달았다. 3.1 운동을 통해 대중은 (망명) 공화국을 추동해냈고 또한 스스로 공화국의 (잠재적) 국민이 되었다. 지금은 식상할 만큼 익숙한 태극기, 그것은 3.1 운동을 통해 대중이 피로써 새로이 그려낸 새 나라의 깃발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15쪽, 권보드래 지음
왕(정)에 대한 식민지시기의 반응은 그야말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 불러야 할, 수백 년 기억이 얽혀 있는 복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15쪽, 권보드래 지음
각주에서도 밑줄치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가 부럽네요. "비동시성의 동시성"- 지금 병렬독서로 밀리의 서재에서 '낯선 삼일운동'을 읽고 있는데 무명의 인물들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모자이크나 콜라주처럼 역사의 편린들을 모아 놓은 구성이라 읽기 좀 버거운 면이 없지 않지만 이런 혼란스럽고 복잡했던 시대에 다각적 각도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이런 '회고하고 평가할 때 겪었던 혼란은 3.1 운동 자체가 지닌 혼란의 반영'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대표' '깃발' 등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 당시의 표면적이고 사건 중심의 역사적 상황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대의민주제, 의회민주제 등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논제와 깃발의 도입 및 변화를 통해 군주 통치 중심의 국가에서 공론과 각성을 통한 국민의 자아 형성으로 군주가 아닌 국민=국가가 일치하는 태도가 자리잡으며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게 되는 변천 과정, 즉 이 역사적 사건들이 시사하는 심층적인 민주주의의 과제들 또한 비춰보는 게 좋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번 주에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첫 주 감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읽기도 수월하고,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책 읽기였을까요? :) 예고한 대로, 주말에는 쉬면서 병행(병렬) 독서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운동도 하는 시간을 보내요. 주 중에 일정이 바빠서 뒤따라오시는 분들은 길지 않은 분량이니 주말에 따라잡기를 권해 드리고요. 저는 주말에는 함께 읽고 있는 아래 세 책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마감이 코앞인 외고도 써야 하는군요;)
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 -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어떻게 우리의 건강을 좌우하는가경제학에서 주로 활용하는 ‘자연실험’ 방법을 통해 대규모 건강보험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분석하고,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인과관계를 밝혀낸다. 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적 접근으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작가와 작품의 도덕성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논의를 아우르고, 활용할 만한 기초적인 이론과 분석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다.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두 번째 아이1999년, 해리 포터 역을 맡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소년을 찾는 캐스팅이 시작됐다. 어린 배우 수백 명이 오디션을 보았고, 단 두 명만이 최종 후보로 남게 된다. 그리고 두 소년 중, ‘조금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배역을 따내게 된다. 이 소설은 끝내 선택받지 못한, 일생 동안 해리 포터의 바깥을 헤매야만 했던,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해리 포터 ‘마틴 힐’의 이야기다.
와, 동시에 몇권을 읽으시는건지... 게다가 원고 마감까지...
잠을 안 주무시는 거 같습니다...
@장맥주 @오구오구 정말 하루 일곱 시간 이상 자는 게 목표인데, 실제로 자는 시간이 적긴 합니다.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정말 잠을 잘 자야 합니다.
잠이 보약입니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와 『두 번째 아이』라는 책 제목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특히 해리포터는 어렸을 때, 정말 좋아해서 몇 번을 재독했는지 몰라요. 나에게는 왜 부엉이가 오지 않나, 언제쯤 오려나, 하는 막연한 상상도 자주 했고요(동심으로 봐주시어요). 뭔가 번외편 읽는 느낌일 것 같아서 제 책장에도 고이 담았답니다:)
이 책에 푹 빠져서 쭈욱 읽다보니 어느덧 2부까지 끝냈습니다. 중간에 생각의 흐름이 끊길까봐 나중에 다시 찾아볼 부분을 포스트 플래그로 붙여가며 읽었더니 벌써 책이 플래그 무더기가 되버렸네요? 그런데 왜 책등은 벌써 갈라지는 걸까요? 이건 아니잖아요? ㅠㅠ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3.1운동을 바라보게 되어서 읽을 수록 생각이 많아지네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상 일반 대중이 세계 흐름과 발맞춰 논의의 장을 펼친 첫 번째 사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 전개의 공간이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세계 시민 정체성이 만들어진 최초의 사건이기도 한 것 같구요. 1차 세계대전 후 이상주의와 세계주의를 흡수하며 한중일 3국이 (신해혁명, 다이쇼 데모크라시 등)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저자분 이 책으로 비난도 꽤나 받으셨을 듯 하네요. 생전 처음으로 우드로 윌슨의 14개 조항 전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이 아저씨, 본인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약소국 국민에게 쉽게 깨질 꿈과 희망을 풍선 불 듯 불어 넣으셨다고 원망해야 할지, 그나마 동유럽 국가들은 독립했으니 다행이라고 보아야 할지..
@오구오구 @연해 저도 가끔 10대나 20대 친구들 만나서 얘기 나눌 일이 있을 때, 일제 강점기 얘기하면 다들 친일파가 되었을 것 같다고 얘기해요. 사실, 저도 먼저 그런 얘길 꺼냅니다; :)
저도 이 부분이 참 조심스럽습니다. 친일파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기는 한데요. 저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실리를 악착같이 챙길 만큼 사리에 밝은 편도 아니고, 독립운동을 할 정도로 용감하게 앞장서는 사람도 아니라서, 그 중간 어디쯤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사람. 그러다 엉망진창인 현실을 견디다 못해 홀로 조용히 자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회사에도 비슷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 같은데요. 가끔 뭔가가 불꽃처럼 솟아오르려다가도, 현실에 다시 안주합니다. 사회 초년생 때는 불의를 보면 이리저리 부딪치기도 하고, 남들처럼 조용히(가만히) 좀 살면 안 되겠냐고 엄마에게 핀잔도 자주 듣곤 했더랬죠. 전 직장도 비슷한 이유로 과감하게(?) 그만뒀고, 후회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때랑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현실적인 부분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고, 이상주의가 지나치면 얼마나 독인지도 알 것 같고(언행일치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럭저럭 제 한 몸 건사하는 사회인 1 정도가 되어가는 중.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화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에서 극중 형의 모습처럼,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면(영화에서는 살아있었다는 게 반전이었지만, 어쨌든) 친일파든 독립운동이든, 어느 쪽으로든 확실히 돌아설 것 같아요. 제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처단(?)하는 방향으로요. 좀 지독한가요? 이래저래 고단한 세상살이, 하지만 책 읽는 건 좋아요. 한 줄기 빛이랄까(헷).
아뇨. 실제로 전쟁에서 몸을 던져서 총알을 받고 싸우는 군인들도 실은 이데올로기나 어떤 나라나 원대한 어떤 것에 대한 충정보다는 같은 전장에서 함께 하던 전우들을 위해 싸우는 일들이 더 많다고 하니까요. 멀고 추상적인 국가보다는 가까운 동지나 가족의 고통이 더 와닿을 것입니다.
@YG 링크해주신 책들 목차 훑어보았는데.. 제 취향이 맞는 거 같습니다. ㅎㅎㅎ 우선 <독립운동 열전 1>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3월 1일의 밤>과 <이완용 평전>을 완독한 후에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권 모두 전자책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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