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최남선을 포함해서 3월 1일에 일제에 저항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나섰던 이들의 친일 행적을 알고 있는 처지라서,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합니다. 한때 저렇게 독립과 대의에 앞장섰던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또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무려 20년 넘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한 명 한 명씩 좌절하고 결국 사익을 좇아가는 모습. (사실, 저도 그때로 돌아가면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친일파라기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 매몰되어 그냥 살아가지 않을까요. 적극적인 사람들 중 일부가 친일파가 되고 일부는 독립파가 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그냥저냥 살게 되겠죠. 그러다가 뭔가 세계 정세가 전과 다르게 흘러가고, 때마침 응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역사 흐름의 큰 줄기가 바뀌는 것 아닐까요.
저도 딱 이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당시에 살았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YG 님은 친일파가 되었을 거 같다고 하시는데, 저는 천성적으로 굼뜨고 느려서, 기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여 친일파가 되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친일파는 아무나 하나~) 그렇다고 10%도 되지 않는 만세운동의 물결에 동참해서 공원으로 시장으로 혹은 산으로 올라가지도 (3부에 야밤에 산상 만세를 부르는 무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너무 무서워~) 않았을 것 같아요. 가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는 이회영이나, 조국 독립을 위해 볼셰비키 혁명주의자가 된 김알렉산드라나,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 던진 윤봉길 같은 인물은 어림도 없구요. 그냥저냥 갑남일녀, 장삼이사, 필부필부, 무명씨 1로 살았을 확률이 가장 높았을 겁니다. 솔직히 거의 대부분 이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다룬 모든 담론은 한쪽은 친일파 다른 한 쪽은 독립운동가 이야기만 합니다. 친일파의 선택을 숙고해보기 전에 무조건 때려 잡아야할 악마 족속으로 치부해버리고, 독립 운동가나 3.1운동 참여자와 자신을 고민없이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광복 80주년이라는 지금에도 많이 부족한 것같습니다. 일제강점기동안 무명씨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기 십상이구요. 그래서 <3월 1일의 밤> 1부의 정신산란함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손에손에 태극기를 쥐고,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에 밀물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일사분란하게 외쳤다는 3.1운동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었는데, 1부의 풍경이 훨씬 더 타당하고 실제성있게 여겨집니다.
심지어 '대한독립만세' 보다는 '조선독립만세'가 더 많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니 당연히 대한독립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당시에는 그들을 버렸던 대한제국을 생각하니 오히려 조선을 부른 게 많았다는 점도 놀라웠어요. 게다가 뒷 장에서도 나오지만 '만세'라는 말 자체가 그리 쓰인 지 얼마 안 되었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데다 대한제국 또는 천황에 대한 말로 3.1운동 전에는 강요(?)했던 말이라는 게 인상 깊네요. '대한'이란 단어처럼 '만세'라는 말의 의미나 연상되는 것도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고 새로 거듭난 것 같네요.
안그래도 33인의 독립선언서나 운동방식도 좀 소극적으로 보였고 오히려 더 확실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던 사람들은 당시 맨 먼저 앞장섰던 사람들도 엘리트 지식인들도 아니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일반인들 중 총격에 희생당했거나 뒤에서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지원했던 사람들일 것 같아요. 어쩌면 그들은 그런 좇아갈 만한 사익조차도 없었고 오직 이 극한상황에서 벗어나기 급급하지 않았을까 해요. 요즘 '낯선 삼일운동'을 읽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행적이나 이름들은 역사에서 묻히거나 잊혀지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낯선 삼일운동 - 많은 인민을 이길 수 없다저자는 엘리트가 남긴 사료 중심으로 연구, 서술되는 역사를 비판한다. 삼일운동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201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가기록원이 공동 주최했던 삼일운동 100주년 특별 전시회뿐 아니라 전국에서 열린 삼일운동 100주년 특별전이 모두 ‘엘리트 중심의 전시’였음을 분석해냈다.
이름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만 거론하면 안 될 듯 하여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ㅎㅎ
@밥심 아니요. 젊은 분 중에서. 당시 최남선의 나이가 만 29세였어요. :) (젊은 분을 떠올리셨다면 죄송;)
29세 최남선 이야기를 하시니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제가 애국심 투철한 사람도 완전 아니고, 태극기보면 울컥하고 뭐 이런 일도 절대 없고.. 아무튼 그런데요,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나 헤이그 이준열사 기념관같은 그런 독립운동과 관련있는 이러저러한 장소를 들른 적이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다크 역사 투어같은 거 종종 했습니다 ㅎㅎ). 그럴때마다 해당 장소에 있는 자료나 사진들을 유심히 보곤 했는데요, 빛바랜 액자 사진 속에 담겨 있는 너무 앳되고 마알간 얼굴에 흠칫 놀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맙소사! 이 얼굴이 그 일을 했다고? 이 청춘을 대체 어쩐단 말이냐? 뭐 이렇게 장탄식 하기도 했구요.
자체적 다크 역사 투어..ㅎㅎㅎㅎ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에 참여한 때가 20세가 채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 그러고 보면 참 조숙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시대가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진봉인가? 38세에 며느리를 봤다지 않습니까? 14,5만되어도 혼담이 오고간 때니. 지금 갓 스물은 정말 꽃봉오리들이죠. 근데 80년 대 2, 30대들은 굉장히 성숙했던 것 같아요. 그들도 그 어려운 시대를 격지 않았다면 편하게 아니 좀 다른 방식으로 보냈겠죠.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건 맞는 말 같습니다. 이준 열사도 독립이 아니었으면 다른 일을 했겠죠.
약간 뜬금없는 연결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20대 청년이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해 메시지를 내서 반향을 일으킨 사례가 누가 있었나 생각해보니 류호정 전 의원이랑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생각납니다. 그 두 사람의 역량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요. 류 전 의원은 이제 30대가 되었군요.
아..... 그 메시지...
"최근 10년 사이에 20대 청년이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해 메시지를 내서 반향을 일으킨 사례" --> 왜 저는 BTS의 UN 연설 "Love Yourself" 와 장원영의 원영적 사고 '럭키비키'가 떠오르는 걸까요? (장원영 추천템이라는 '초역 부처의 말'도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
어... 음... 저는 두 경우 다 그 안에 별 메시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ㅎㅎㅎ
유신시대, 또 이후 군사정권에도 이름없는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에 빚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31운동만 그랬던 것은 아니군요.
저도 안그래도 그런 움직임이 즉각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지만 한편 정확한 정보나 중추가 없이 안 좋은 방향으로 큰 여파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일단 뒤엎은 다음에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대책이 없이 더 큰 혼란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도 있구요. ('구체적인 개혁 방향에 대해 함구'한 것도 어찌 보면 그런 점을 보여주는 걸지도요)
<3장 깃발: 군왕과 민족과 대중> 89쪽 3월 1일 시위가 20만이 넘는 국장 상경객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진 데 이어, 3월 5일 시위는 독립선언이 일회적 사건으로 끝날 수 없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천명했다. 97쪽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왕에 대한 애도를 고양시킨 것은 분명하다. 98쪽 믿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었으므로 민심은 쉽게 독살설을 받아들였다. 99쪽 왕과 왕실에 대한 묵은 기억이 어떻든지 간에 삼일운동 직전 왕에 대한 태도는 거의 만장일치의 추모와 공분이었다. 냉담한 축이 없지 않았으나 절대다수가 왕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그 상실에 민족의 비극적 처지를 겹쳐보는 시각을 택했다. 100쪽 대한제국기의 깃발을 꺼내 들더라도 그것이 옛 군주에 대한 충성으로 오인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삼일운동기 고종에 대한 추모 열기는 이렇듯 왕조의 종말을 확인한 안도감에 의해 고양됐던 듯 싶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얼마 전 읽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1>이 창경궁과 창덕궁을 주로 다루는데 거기에 마지막 왕손들이 창덕궁 낙선재에서 쓸쓸하게 살다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글을 읽고 얼마 안 되어 이 파트를 읽으니 자꾸 위에 수집한 글들에 눈길이 갔습니다. 삼일운동 주최 측은 고종 장례식에 모여들 사람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운동을 더 전파시켜주기까지 기대하고 장례식 이틀 전에 운동을 한 걸까, 아니면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회를 노린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마 3.1 후의 후속 전개까지 내다보진 못했겠죠?
일찍이 건국 때부터 조선 왕조의 수명은 28대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고종이 제28대 왕이니 "금회의 홍거에 의해 이조는 완전히 멸망"했다고도 했고, "이조도 28대에서 망하였으니 조선의 전도가 실로 암담하지만" 곧 조선 전도(全道)에서 한 명을 뽑아 "목하 지나(支那)에 있어서의 대통령과 같은 것을 두고 국사를 통제할 계획이" 있다고도 했다. 왜 고종을 제26대가 아닌 제28대로 헤아렸는지는 의문이지만, 순종을 제쳐두고 고종을 '최후의 군주'로 대접하는 동시에 그의 죽음으로 조선 왕조가 완전히 멸망했다고 진단하는 시각은 여러 풍설을 통해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3·1 운동은 봉기의 터전일 뿐 아니라 공론의 토대였다. 새로운 정치적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토론의 장인 동시 행동의 장이었다. 그것은 유럽에서와 같이 살롱과 카페와 공원에서 대화와 토론과 연설을 통해 형성되는 공론의 장일 수는 없었다. 언어와 사상이 무르익은 후 행동과 제도화가 뒤따르는 장기적 과정일 수 없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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