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하는 대신 비애에 사로잡히는 것은 한반도 전체를 통 해 일반적 반응이었던 듯 보인다. 동래군 기장면 "선비의 딸"로서 1950~1960년대에 야당 지도자로 맹활약한 박순천. 그는 1910년 8월 "주막집 담에 붙은 네 글자의 벽보"를 보았을 때 들었던 감정을 '수심'과 '눈물'로 요약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수심에 싸여 있었고 그중에는 한숨짓는 어른들도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어 덧없이 울기만 하였다." 1900년대를 통해 열혈과 애국으로 타올랐던 사람들, 그들은 어째서 "덧없이 울기만"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문장모음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