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3 ·1 운동'이라는 명칭은 다분히 해방 이후의 결과다. '3·1'이라고 하여 사건의 내용보다 날짜를 앞세우는 명칭부터 암유(暗喩)적 수사가 3·1 운동을 지배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에 '3·1 운동'이라는 표현이 없지는 않았으되, 보다 직접적으로 '3·1 운동'은 국내에서 쓰인 '기미운동' · '만세사건' · '만세운동' 등의 이름과 국외에서의 '3·1 혁명'이라는 용어가 합성된 결과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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