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 아, 작가님 2부 2장으로 넘어가셨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인물과 그 대응을 평가할 때 지금 시점이 아니라 당대의 맥락에서 세심하게 살펴보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야 결과론적 해석이 아니라, 그때 그와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까, 같은 질문도 의미가 있어지니까요.
그런 점에서 친일/반일과 같은 이분법적 시각은 그 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지금 시점에 더 의미가 있을 유산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YG

장맥주
네, 저도 @YG 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고요, 이 대목 읽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만 윤치호에 대해서는 그냥 막연하게 현실에 좌절한 회색 지성인 정도로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되어 생각이 많아졌네요. 수감 생활로 정신적으로 무너졌다는 것, 서구를 향한 분노는 참을 수 있었다는 것, 그 분노가 오히려 약자를 향했다는 것 등등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윤치호나 그 시대 인물에 대해 워낙 무지하네요, 제가. ‘윤치호의 협력 일기’라는 제목으로 나온 그의 일기 분석서도 기회 될 때 읽어보고 싶습니다. 제 안에 윤치호가 있기는 하지만 제 안에는 다른 사람도 있을 거라 믿고요. (제 안에 ‘근대적 합리주의자’ 이완용도 있지만 저는 이완용과 다른 사람임을 확신하듯이.)
그나저나 <3월 1일의 밤>은 어려운 단어도 많이 나오고, 내용도 쉽지 않은데 이상하게 술술 넘어가는 책입니다. 마감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진도가 뒤쳐진 거 같아 오전에 읽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2부 2장이었습니다.

윤치호의 협력일기 - 어느 친일 지식인의 독백60년에 걸쳐 기록한 방대한 양의 일기를 통해 윤치호의 일제 협력과정을 분석한 책. 유럽의 나치 협력자 청산과 1970년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신화의 파괴 과정을 소 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진지하고 학술적인 본격적인 친일청산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그 실례로 윤치호의 일제 협력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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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아이고, 장맥주님 안엔 도대체 누가 몇명이 들어있는 건가요?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다고 노래한 시인과 촌장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흐흑~ 다중인격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장맥주님 한 사람만으로 족합니다. ㅎㅎ

장맥주
“ 그러나 19세기 이래 서양 사상가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참조해내고 '세계'와 '인류'라는 계기를 발견했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의 문제의식은 같을 수 없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국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데 일본 청년들이 반발했다면,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은 국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가 허락될 수 없다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다이쇼기 일본 청년의 비정치성이 정치적 경험을 포식한 뒤 에 온 것이라면, 조선 청년들에게 있어 정치성의 탈피란 패배주의일 수밖에 없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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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3 ·1 운동'이라는 명칭은 다분히 해방 이후의 결과다. '3·1'이라고 하여 사건의 내용보다 날짜를 앞세우는 명칭부터 암유(暗喩)적 수사가 3·1 운동을 지배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에 '3·1 운동'이라는 표현이 없지는 않았으되, 보다 직접적으로 '3·1 운동'은 국내에서 쓰인 '기미운동' · '만세사건' · '만세운동' 등의 이름과 국외에서의 '3·1 혁명'이라는 용어가 합성된 결과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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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결과적으로 3·1 운동은 많은 변화를 일구어 냈으나 청년들이 기대했던 '정치조직·사회조직의 근본적 변혁', 유토피아적 신세계의 실현에는 현저히 미달했다. 그 후로도 오래도록 3 ·1 운동은 '혁명'이라고 불렸으나 그것은 현실태가 아닌 이상태, 요구하는 목표를 가리키는 명사에 가까웠다. 신해혁명과 러시아혁명을 보면 서 기대한 것 같은 '혁명'이 이룩되지 못했을 뿐더러, 정치와 경제를 평화적으로 갱신하자는 '개조'도 추진되지 못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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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벽돌책 읽기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해봅니다. 어제 부랴부랴 읽기 시작해서 오늘 1부3장까지 진도 맞췄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처음엔 국문학자가 역사책을 썼다는 것에 대해 뭐랄까 조금 갸우뚱하는 게 있었는데, 책을 읽어갈수록 그런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내용이 더욱 기대되네요.

연해
엇, 벽돌 책 읽기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하신다니, 제가 다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저도 아직 새내기(?)예요).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다양한 이야기 즐겁게 나누어요:)

siouxsie
전 책이 무거워서 못 들고 다니다 오늘 집에서 1부 다 읽었어요(전자책은 어디에? 뿌엥~~).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읽다가 그동안 몰랐던 구한말 시절의 세계 정세까지 정리가 돼 있어서 관심도가 쑤욱 올라갔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고종에 대한 국민들의 이중적 태도예요.
저에게 한국은 중요하지만 그닥 애국심은 없어서요.(정부는 별로지만 한국인은 사랑도 하고 증오도 하고?)
아무리 왕이라도 같은 사람인데 상징적인 존재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중요하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마이클 돕스의 1945/1962/1991 시리즈 생각도 났어요.
역사가 머릿속에 정리 좀 되었으면 좋겠네요~~으아~~~

오구오구
대중정치와 유토피아의 이념이 결합할 때의 무시무시한 부작용은 오늘날 세계가 짐지고 있는 역사적 과제 중 하나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49,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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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요컨대 1910년대 일본은 제국주의로서의 통치 기술이 미숙한 상태에 있었다. 그만큼 그 통치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에 의존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67,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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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 식민권력은 공식적으로는 충민을 요구했지만 실제로는 양민을 키워내고자 했다. 온순하고 선량한 백성, 제 앞가림에 착실한 백성, 성실히 일하고 근검히 저축하며 휴일에는 공원 산보로 만족해하는 백성-무엇보다 정치나 세계 대세 같은 허황한 화제에 유혹되지 않고 개인과 가족을 지상가치로 삼는 백성이 식민권력의 이상이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69,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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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사람들은 '독립'에 실로 각인각색의 열망을 투영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24,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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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 3.1 운동 당시 '만세'와 '독립'은 민족해방으로 소진되지 않고 계급 이동으로 다 해소되지 않는 미정형의 유토피아적 충동을 표시한다. '만세'가 저마다의 불만과 희망을 표현했듯, '독립'은 그런 불만과 희망이 해결된 미래상을 지시했다. 인민은 고통스런 현실이 철폐되길 소망했고 또한 현재의 부조리를 보상할 만한 새 나라를 꿈꾸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25,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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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조선시대 토지 소유가 배타적 사적 소유가 아닌 중층적이며 관습적 소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소작농도 장기간 경작권을 보장 받았고 그에 대한 권리를 상속이나 매매까지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네요. 이것이 일부 지역에서만 이루어졌던 지역적 관습이었는지 아니면 전국적인 보편적 관습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롱기누스
4장은 3.1운동에서 '만세'의 의미를 알려주는 장이었습니다. 중국 황제를 찬양하고 일본 천황을 연호하는데 사용되었던 '만세'가 3.1.운동에서는 어떤 의미로 변주되어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변주는 하나의 의미로 함축되지 않았기에 지속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만세'는 그 의미 만큼이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던 믿음의 기원도 다양했습니다. (혹세무민의) 종교, 자신의 신념, 20세기 초 만연했던 유토피아적 희망까지... 1부를 마치면서 저는 역사적 감정이입(historical empathy)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고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약 26년의 시간 동안, 나는 과연 변절자, 아니 친일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만세'의 변주곡 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질문으로 1부를 마무리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장맥주 작가님 말씀처럼, 뜻밖에 잘 몰랐던 일이 많았던 때이고 생소한 단어도 많이 나오는 책인데 이상하게 읽기 시작하면 술술 넘어가죠? 그래서 앞서가시는 분들도 많으시네요. 각자 호흡대로 읽으시되 또 의견이나 감상은 수시로 나누길 권해드립니다.
오늘 3월 10일 월요일은 1부의 마지막 장 4장 '만세'를 시작합니다. 이 장에서는 3월 1일에 만세를 불렀던 사람들의 욕망과 그것의 표출로서의 만세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장을 읽으면서 2016년의 '촛불'을 한 번 떠올려봤어요. 그때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었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 거의 10년이 지난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괜히 마음이 착잡해졌답니다.
하지만, 이번 주도 다들 기분 좋게 시작하세요. 이번 주는 오늘 1부 4장을 읽고 금요일까지 2부 네 장을 모두 읽는 일정입니다. (2부 엄~청 재밌어요!)

YG
@롱기누스 님, 환영합니다. 오랜만에 벽돌 책 함께 읽기로 돌아오신 것 같아서 괜히 반갑습니다. :)

롱기누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장님께서 환영해주시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

YG
@롱기누스 친일 얘기가 나오니까, 예전에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녹색평론>의 고 김종철 선생 님과 술자리에서 사담을 나누다가 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때 하급 공무원(?)이셨던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창비 계열의 민족 시인으로 아~주 유명하신, 교과서에도 나오는, 한 원로 시인과 나눴던 대화도 들려주셨는데, 그 분의 처지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둘이서 막거리를 마시다가 '어휴, 우리도 친일 부역자의 자식이네요.' 하면서 씁쓸하게 웃으셨다는 얘기를 전해주셨어요.
김종철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서, 일제 강점기 35년, 1905년부터 시작하면 거의 40년 한 세대가 넘는 시간 동안 글 좀 읽고 쓸 줄 아는 조선 청년의 선택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과감하게 외국으로 건너가서 (어느 시점에서는 국내 독립 운동의 싹은 거의 짓밟혔으니) 해외 독립 운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거의 소수였을 테고. 국내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다수의 젊은이의 선택지는 결국 그나마 이런 직장(하급 공무원, 각종 조합이나 은행, 친일 부역 기업의 직원 등)뿐이었을 테니까요.
그들은 해방 후에 새 나라의 초석을 마련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제 강점기 때의 자신의 행적을 어떤 식으로든 반성하거나 변명하거나 은폐하거나 했어야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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