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경우,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달리 제1차 세계대전 시 이룩한 비약적인 경제,사회적 발전이 다이쇼 사상의 근거였다. 발전하는 사회의 작관적인 사유에 힘입어 신칸트학파가 대표하는 인도주의, 이상주의가 적극 수용될 수 있었으며 유소년 인구가 장노년을 압도하는 독특한 사회 구조 속에서 자아와 내면에 대한 관심 또한 본격화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런 자신감 혹은 낙관성이 정치로부터의 이탈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주목해둘 만하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6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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