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이래 서양 사상가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참조해내고 '세계'와 '인류'라는 계기를 발견했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의 문제의식은 같을 수 없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국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데 일본 청년들이 반발했다면,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은 국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가 허락될 수 없다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다이쇼기 일본 청년의 비정치성이 정치적 경험을 포식한 뒤에 온 것이라면, 조선 청년들에게 있어 정치성의 탈피란 패배주의일 수밖에 없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8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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