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전의 이주가 주로 생활에 쫓긴 결과였다면 1910년대부터는 이주를 새로운 삶에의 출구로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1910년 봄 신채호, 1910년 12월 이회영, 1911년 4월 박은식 등 '개신유학(改新儒學)'을 지적 배경으로 하는 명망가들이 대거 북쪽으로 떠났고, 1913년에는 이동휘도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활동을 개시했지만, 젊은 청년들도 식민지로 낙착된 조국에서 다투어 벗어났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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