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베버의 말마따나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 즉 국가를 장악한 존재로서 억압자는 다른 존재에 대한 폭력 행사를 일체 불법화한다. 군대나 경찰 같은 폭력 장치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개인적, 집단적 폭력 행사는 말살하려 하고, 증오나 공포를 제도화하고 있으면서도 개별적 증오나 분노의 폭발을 죄학시한다. 식민지와 피식민자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식민자는 하나의 폭력을 백배의 폭력으로, 한 명의 죽음을 수십,수백,수천의 죽음으로 되갚으려 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24쪽, 권보드래 지음
폭력의 무진장한 자원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식민자 자신의 폭력을 방어적 폭력으로 간주한다. 매를 막기 위해 쳐든 피식민자의 팔조차 폭력의 징후로 보고, 호의로 뻗은 손마저 공격의 조짐으로 해석한다. 피식민자는 흔히 궐기의 순간에도 비폭력에의 의지를 간직하고 있지만 식민자는 그 차이를 분별하려 하지 않는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26쪽, 권보드래 지음
저도 이 문장 수집했어요..쯧쯧
도둑놈들이 제 저린 듯..?
3.1 운동에 있어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는 자세에 가깝지 억압자의 죽음을 목표로 한 전략이 아니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33쪽, 권보드래 지음
"조선민족이라는 일체감 가운데 취"한 축제적 기분 속에 시위꾼들은 민족배신자조차 용서하려는 온정적 기분을 드러내곤 했는데 그렇듯 배신자와 적대자에게 손 내미는 심정은 3.1 운동기 전 국면을 통해 사라지지 않았던 듯 보인다. 만세 부르지 않으면 구타한다고, 시위에 협력하지 않으면 불지른다고 위협할 때, 그것은 물론 위험을 나누자는 협박이었지만 동시에 환희를 함께 하자는 초대이기도 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38쪽, 권보드래 지음
대체 총칼 든 헌병과 순사들에게 맨몸으로 덤벼 이빨로 물어뜯고 주먹을 휘두르다니. 이 무모한 장면을 엿보다 보면 힘(권력)과 폭력을 분별하는 영어 'power'와 'violence'보다 이 둘을 동시에 지시하는 독일어 'Gewalt'를 떠올리게 된다. 권력이 행위의 영역에 작용한다면 폭력은 육체를 대상으로 작용하는 힘이며 군력과 광포의 관계가 우연적, 부차적이라면 폭력과 공포의 관계는 필연적일 텐데, 공포라곤 없고 공포를 일으키겠다는 의지도 없는 이런 장면은 '폭력'의 문법으로 독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적 배치로 따질 때 공포가 아니라 유쾌ㆍ 환희ㆍ 희망의 성분이 결정적인 이같은 장면은 3.1 운동의 특징적 국면 중 하나다. 공포와 희망 사이를 분노가 매개하는 가운데 봉기 대중은 '폭력이 된 권력'을 휘두르는 식민권력에 맞서 줄기차게 '폭력 너머의 힘(권력)'을 추구하고 실천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40쪽, 권보드래 지음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생활환경의 단순한 물질적 개선만은 아니고 공장 운영에 참여하고 노동환경을 결정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 즉 산업체계의 혁명적 변화"였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65쪽, 권보드래 지음
3.1 운동 전후 노동쟁의는 개별 사업주와의 충돌이라기보다 식민권력 자체에 대한 저항으로 표상됐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식민권력이 쟁의에 빈번하게 개입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동시장의 성격상 중개-책임자를 넘어 문제를 추궁할 수밖에 없었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72쪽, 권보드래 지음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가 그러했듯 식민지 조선에서도 평화와 토지에 대한 요구가 드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고전적인 자유주의 정치학으로서는 그같은 요구를 수용하기 역부족이었다. 바야흐로 사회ㆍ정치적 대중이 탄생하는 가운데, 그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데 있어 '윌슨과 레닌 가운데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가 점차 민감하게 의식되는 상황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81쪽, 권보드래 지음
조선인들은 근대의 입구에서 이미 근대를 향해 불만을 느끼고 있었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의 그 해결 시도에 공명하고 있었지만, 그 방향은 '비근대(un-modern)'라고나 불러야 할 막연한 것이었다. 전근대적 요소와 탈근대적 요소를, 근대적 욕망과 반근대적 욕망을 함께 품은 혼잡한 벡터의 운동성이었다. 그런 가운데 복고보다 공화로, 중앙집권보다 자치로 대중의 욕망이 수렴돼 가긴 했으나, 그 방향성의 최대치는 세계적 유행 사조인 '개조'를 넘어서지 않았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381-382쪽, 권보드래 지음
민족과 국가라는 명분은 신분ㆍ지역ㆍ성별에 있어서의 소수성을 넘어서는 데 훌륭한 명분이자 계기였다. 그러나 혁명은 흔히 전개 과정에서 소수자에 빚지고도 최종적으로는 소수자에 등을 돌린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06쪽, 권보드래 지음
여성은 1900년대 애국계몽운동에 이어 3.1 운동을 겪으면서 급속히 사회화되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소수적 존재요 취약한 존재였다. '여성마저 민족을 위해 일어섰다는' 그런 의식 속에서 주목된 존재였던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19쪽, 권보드래 지음
무력한 희생과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타락 - 그것은 둘 다 주체성의 결여 양식으로서, 미래의 과제를 타자에게 의뢰해야 하는 존재에게 어울린다. 오랜 세월 후 1990년대의 이른바 후일담 소설에서도 여성 희생의 서사는 어지간히 번성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3.1 운동의 여성 표상은 희생이라는 측면에서나 타락이라는 측면에서나 극단의 전형성은 피할 수 있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19쪽, 권보드래 지음
제가 우리나라 근현대소설에서 여성을 이렇게 그리는 소설들에 질렸던 이유가 여기 있네요.
전 2010년 이전 드라마만 봐도 너무 놀라울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는 걸 느껴요(벌써 15년 전이긴 하네요;;;쩝). 말씀하신 내용 보니 borumis님이 문장수집한 부분도 얼른 읽고 싶네요.
안그래도 얼마전 Y2K 밀레니엄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명대사들을 보는데 어찌나 오글거렸는지..^^;;; 이 당시가 이런데 일제강점기 소설을 읽으면 정말 ㅎㅎㅎ '불상한 동무'보다도 낯설은 느낌입니다.
<3부 4장 여성: 민족과 자아> 419쪽 희생과 타락이 표리의 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무력한 희생과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타락-그것은 둘 다 주체성의 결여 양식으로서, 미래의 과제를 타자에게 의뢰해야하는 존재에게 어울린다.
국경과 치안의 완성과정, 즉 '국민'의 완성 과정은 '난민'의 형성과정과 일치한다. 447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저도 이 문장에 밑줄 쫙.. 요즘 난민에 대한 혐오 차별 관련 의견들을 볼 때마다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 때 난민이었을 때가 역사 속에서 많았는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벽 속에 갇혀서 반대로 너무 이질적에 대해 배타적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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