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회의 당시 파리에 체류했던 조소앙은 당대의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을 방문한 후 “쥐뿔도 모르는 놈!”이란 조롱마저 뱉을 수 있었던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부 1장 442쪽, 권보드래 지음
문장모음 보기
YG
앞에서 이광수의 호기로운 발언도 인용했었지만 (권보드래 선생님도 뒤에서 다시 한번 복기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엘리트 지식인에 한정하자면 100년 전의 그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세계 흐름에 조응했었고, 또 마냥 수동적으로 경탄하고 수용하는 데에만 주력했던 게 아니라 자기 사고로 맞서려고 했던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100년 전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aida
이 글을 책에서 만났을때 조소앙 선생님에 대한 폭풍검색으로 헌법 1조를 만든 임시헌장의 1조 민주공화제.. 민주공화제가 헌법에 들어간 세계최조라고 하더라구요.. 헌법이 이렇게나 회자되는 시국에 말씀하신대로 100년 전 주체적인 사상가를 만나보네요.. ( 아래 동영상에서 육성을 들었습니다. 17분45초에 46년 3.1절 기념사)
[기억록2 : 기억하여 기록하다] 조소앙, 대한민국 헌법 1조, 희망과 용기의 이정표가 되어준 '그 말'
https://youtu.be/6JH8_-jnhKE?feature=shared
밥심
영상 잘 봤습니다. 감동적이네요. 기념관이 양주에 있군요.
borumis
“ 김필순과 이태준이 중국을 향했던 1910년대 초반은 한반도를 벗어나려는 이동성이 최초로 의식화·본격화된 시기다. 그 이전의 이주가 주로 생활에 쫓긴 결과였다면 1910년대부터는 이주를 새로운 삶에의 출구로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38쪽, 권보드래 지음
문장모음 보기
borumis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민족국가 체제의 완성과 그 위기의 동시적 현시로 요약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내적 통치성의 완성과 외적 경계의 정돈을 핵심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