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운동이 즉각 독립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다 안다. (...) 침략주의·강권주의에 맞선 평화주의란 국제 정세를 오인한 결과에 불과했다는 견해가 주류화된 지 오래다. 3·1 운동 이듬해부터 이른바 문화통치가 조선에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운동의 성과로 인정하는 시각은 대체로 인색한 편이다. 봉기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한편으로는 파리평화회의와 워싱턴회의가 끝나고 나서 3·1 운동은 완연히 과거의 사건이 된다. 사회주의가 유행의 초점이 되는 가운데 3·1 운동 때 경험했던 민족의 공동체적 시간은 빠르게 박제화된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23-525쪽, 권보드래 지음
문장모음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