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3월 25일 화요일은 4부 3장 '낭만'을 읽습니다. 이른바 삼일 세대가 한국 문단에 남긴 족적을 중심으로 1920년대의 문화를 살펴보는 장입니다. 저자가 애초 그쪽 분야 연구자인 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10대, 20대 혹은 문인-지식인의 문화야 우리 이미 앞서 유럽 사례도 볼 만큼 봤잖아요? 작년(2024년) 8월에 읽었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에서. :) 이 책에 등장했던 인물 가운데 오토 딕스의 판화가 『3월 1일의 밤』 2부 2장 '약육강식'에서 등장하는데 혹시 체크하신 분들 계실까요? 214쪽.
임시정부에서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국제회의를 불신케 된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워싱턴회의를 '제국주의적'인 행사로 규정하고 대신 소비에트 러시아로 희망을 옮기는 자취는 회의 직전부터 보인다. 3·1 운동 후 여러 달이 지나고 심지어 1~2년이 지날 때까지 계속된 독립에의 기대가 이때쯤 좌절됐다고 해도 되겠다.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던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이 맥락에서 징후적인 글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0-531쪽, 권보드래 지음
이 중요한 각성은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라 하는데, 이것이 곧 3.1 운동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논리적으로 부연하자면 3.1 운동은 곧 '구원을 우리 밖에 구'하고 '목적을 요행에서 구'하려 한 어리석은 행동으로 평가되는 셈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1쪽, 권보드래 지음
...신상우는 이광수가 꺼내든 문명/야만 이분법을 비판하는 가운데 문명국이라는 유럽 제국에 의해 자행된 각종 학살극을 상기시키며, 그런 문명을 표준 삼을 수 없는 만큼 이광수가 사랑하는 부(富)와 강(强)과 지(知)의 가치 역시 비판되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문명화 정도는 이제 재부와 강력과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등과 안전과 자유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3.1 운동이야말로 문명화를 선도한 사건이다. 그 핵심 요구가 "인권에는 평등을 여(與)하라! 생활에 안전을 여하라! 자유롭게 생(生)하겠다"는 절규였기 때문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2쪽, 권보드래 지음
거꾸로 해석하자면, 일을 성사시킬 자신과 실력이 없이 터져나오는 봉기는 의존심이나 요행심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존재란 사건 없이 성장하지 않는다(learning curve)는 명제는 어불성설일 터이다. 더불어 이광수는 3.1 운동 때도 문제됐던 바 있는 각자 행동을 극도로 경계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3쪽, 권보드래 지음
"우리의 민족적 이상을 말할 때에 문화 한 가지만을 말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 감각이란, 선진(국)/후진(국) 혹은 개화/미개라는 서열을 문화 부문에 한해서만 철폐한 고식적 대처에 지나지 않는다. 「개척자」에서 낭만적 저항의 한 극점을 보여준 바 있으나 근본적으로 문명과 성장의 서사를 추구했던 이광수는, 스스로 성장의 책임을 달성하기 전에 세계의 변혁과 폭발을 목표하는 일체의 기획을 혐오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7쪽, 권보드래 지음
3.1 운동을 겪고 상해에서의 경험을 거쳐 귀국한 후 이광수는 이 모두를 주변적이고 잉여적인 존재로 만드는 선택을 감행한다. 청년 세대를 혁명적 존재로 만든 3.1 운동이 이광수에게는 오히려 고착과 보수화의 계기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7쪽, 권보드래 지음
이광수가 시간과 성장의 서사-따라서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타락의 서사를 중시했다면 동인지 세대는 공간의 상징, 회귀와 비약의 서사를 좇는다. 이들은 이미 1910년대 중후반부터 오이켄·베르그송과 신칸트학파 등을 동시대 사상으로 호흡했고, 더구나 제1차 세계대전을 목격하면서 구미 문명의 우월성이라는 신화의 몰락을 절감한 세대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8쪽, 권보드래 지음
3.1 운동에 대한 염상섭의 평가는 두 가닥이다. 하나는 3.1 운동을 통해 개선된 바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내용이다. 무단통치가 문화정치로 치장을 바꾸었지만 일본의 경제·문화적 지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넓게는 세계적으로도 해방의 과제가 전연 달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염상섭은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백성이 3.1 운동을 통해 "그래도 우리가 민족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중외에 선포하였고"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입증을 하는 데서 마음 든든한 정적 결속을 얻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3.1 운동은 폐색과 해방이라는 이중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평가의 골자라 할 수 있겠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43쪽, 권보드래 지음
염상섭의 시각마따나 3.1 운동은 종착점보다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3.1 운동은 개인적·민족적 층위에서 공히 불회귀적 사건인 동시, 실패냐 성공이냐의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사건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나'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존재의 기초이자 폭발적 성장의 계기인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43-544쪽, 권보드래 지음
그렇다고 염상섭이 3.1 운동을 영광의 계기로 수락해버리는 것은 전혀 아니다. 염상섭은 3.1 운동의 기억을 박제화하는 데 반대한다. 그 신화 때문에 상투화하고 그 알리바이 때문에 현재를 정당화하게 되는 기제를 경계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44쪽, 권보드래 지음
이렇듯 문학사에서 계속 형상화돼 왔음에도 3.1 운동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이광수 장편에서의 타락-배신과 심훈 장편에서의 성장-사회주의를 두 축으로 둘 때 그 사이, 후일담 이전 3.1 운동을 그 자체로 탐사한 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편재하지만 결코 풍부하지 않은 3.1 운동의 유산 가운데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그 충격과 모순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특이한 지점에 도달하고 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52쪽, 권보드래 지음
이 책을 통해 제안하고 싶은 바는 간단하다. 3.1 운동을 그 세계사적 맥락으로 되돌리고 3.1 운동에서 토의된 정치·경제·문화적 쟁점들을 오늘에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3.1 운동은 빛나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 빛은 천상의 순일성이 아니라 지상의 악전고투로 물들어 있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으나 가능성을 오용할 위험 또한 수태하고 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55쪽, 권보드래 지음
어릴 적부터 독립운동가들은 고립된 영웅처럼 보였다. 외롭고 때로는 무서워 보이기마저 했다. 만세 외친 대가로 고문당하고 난자당했다는 유관순의 일화는 어린 마음에 악몽 같았다. 그가 그렇게 기억되길 즐길까 싶었다. 개발독재 시절 본격화된 유관순 신화는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 숭고의 선양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에의 공포를 조장한 은밀한 덫이 아니었는지, 그 고통의 반복적 현시는, 섣불리 정치에 뛰어들지 말라는 경고는 아니었을는지. 나는 위대한 운동가들을 고립과 소외에서 구출해내고 싶다. 인간으로 마주 대하되 여전히 숭고하게 느끼고, 그 단처와 약점을 받아들이면서 그럼에도 경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57쪽, 권보드래 지음
옥관빈·윤치호·이광수......그런 문제적 생애를 이 책을 통해 문학사적으로는 이광수 대신 심훈을, 또 염상섭을 세워 보려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이광수를 망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광수를 몰아내는 대신 그와 대결하고 싶다. 그는 아직 내게 맞설수록 새로운 대상이다. 그러므로 적대와 분할이 기승스러워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3.1 운동의 봉기 대중처럼, 대결할지언정 누구도 추방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죄를 묻고 벌을 정해야겠지만 궁극에는 모든 존재를 품는 그런 질서를.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58쪽, 권보드래 지음
3월엔, 다 끝난 후 허겁지겁 마무리 하지 않고 일정에 살짝 앞서서 끝냈습니다. ‘다 똑같고 뻔하다고 느낄 때 ‘, ‘살아갈 필요가, 공부할 필요가 더더구나 휘발돼 버리는 순간‘ 에 이런 훌륭한 책을 읽게 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잘 읽히는 책이었던 만큼 좋은 책 소개해주신 @YG 님께 다시 감사드리고 4월에 셰익스피어를 만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Nana 님,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Nana 님 취향일까 걱정했었는데 다양입니다. 멀리 가 있는 옛 동거인에게도 추천해 주세요! :) (공부하느라 정신 없을까요? ㅠ.)
네, 같이 읽지 않았으면 손이 안 갔을 책은 맞습니다만, 너무 좋았지요. 믿고보는 @YG! 안그래도 강용흘 작가님책을 지난 학기에 읽었다고 들었는데 이 책에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했었거든요. 그런데 학기 중엔 다른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 시간이 나면 노느라…그런 것 같습니다만….)
3·1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비로소 집단적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서의 정체성을, 즉 저항하는 존재로서의 자존을 형성할 수 있었다. 조직망도 통신망도 저발달한 상태에서 사실상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운동은 지금까지도 부동(不動)의 민족적 알리바이다. '우리'는 단연 일제에 반대했던 것이다. 비록 힘이 모자라 짓밟혔을지언정 그것은 식민지시기 내내, 그리고도 오래 더 살아남은 기억이었다. '3·1운동이 없었다면 민족으로서의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p.544, 권보드래 지음
저도 오늘 완독했습니다. 저에게는 꽤 어렵기도 하고, 버겁기도 했던 책이었어요. 3·1운동이라는 명칭과 대략적인 내용만 알았지 이렇게 면밀히 오랫동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여러 인물들의 빛과 그림자를 골고루 본 느낌도 들었고요. 지금의 한국은 여전히 혼란하지만, 이 혼란한 시기를 잘 이겨내고 다시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담아봅니다. 내용도 물론이지만 책 표지 또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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