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 님, 고생하셨습니다. 달맞이 님 닉네임에 갑자기 3월 1일의 밤 즈음에 이곳 저곳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봉화가 오르는 장면이 겹치네요! 4월 벽돌 책 함께 읽기 모임 때도 뵈어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YG

YG
강화회의 당시 파리에 체류했던 조소앙은 당대의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을 방문한 후 “쥐뿔도 모르는 놈!”이란 조롱마저 뱉을 수 있었던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부 1장 442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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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앞에서 이광수의 호기로운 발언도 인용했었지만 (권보드래 선생님도 뒤에서 다시 한번 복기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엘리트 지식인에 한정하자면 100년 전의 그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세계 흐름에 조응했었고, 또 마냥 수동적으로 경탄하고 수용하는 데에만 주력했던 게 아니라 자기 사고로 맞서려고 했던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100년 전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aida
이 글을 책에서 만났을때 조소앙 선생님에 대한 폭풍검색으로 헌법 1조를 만든 임시헌장의 1조 민주공화제.. 민주공화제가 헌법에 들어간 세계최조라고 하더라구요.. 헌법이 이렇게나 회자되는 시국에 말씀하신대로 100년 전 주체적인 사상가를 만나보네요.. ( 아래 동영상에서 육성을 들었습니다. 17분45초에 46년 3.1절 기념사)
[기억록2 : 기억하여 기록하다] 조소앙, 대한민국 헌법 1조, 희망과 용기의 이정표가 되어준 '그 말'
https://youtu.be/6JH8_-jnhKE?feature=shared
밥심
영상 잘 봤습니다. 감동적이네요. 기념관이 양주에 있군요.

borumis
“ 김필순과 이태준이 중국을 향했던 1910년대 초반은 한반도를 벗어나려는 이동성이 최초로 의식화·본격화된 시기다. 그 이전의 이주가 주로 생활에 쫓긴 결과였다면 1910년대부터는 이주를 새로운 삶에의 출구로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38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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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민족국가 체제의 완성과 그 위기의 동시적 현시로 요약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내적 통치성의 완성과 외적 경계의 정돈을 핵심으로 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46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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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신 유대인 수난사가 보여주듯 '국가 없는 민족'·'국가 없는 유럽인'은 점차 존립할 땅을 찾기 어려워졌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47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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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제1차 세계대전 전후 등장한 '난민'의 형상이 1910년대 식민지 조선인들의 모습과 겹친다는 사실만을 확인해두록 하자. 생각해보면 식민지시기 조선인들은 늘 '국가 사이의' 또는 '국가 너머의' 존재였으며 그 때문에 쫓기고 박해받고 죽음을 당해야 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48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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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난민'의 반면(反面)인 '국민'은 과연 당연한 존재인가? 민족국가가 이상적 정치체로서 불가침의 주권(sovereignty)을 갖는다는 정치적 구상은 진정 최선의 결론인가?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448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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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borumis 4부 1장에 등장하는 이태준은 울란바토르에 기념 공원이 있을 정도로 몽골에서도 대접 받는 분이에요. 맥락 없지만, 저 몽골 이태준 기념 공원에 가봤습니다. 신 나서 이런 기사도 썼습니다.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1962370
몽골 초원에 묻힌 청년 의사…무슨 일이 있었나?

borumis
우와... 친구들 중 몽골 의료봉사가서 여기 가보았다고 하는데.. 정말 대선배시네요.. 이 힘든 시절에 의열단 항일운동과 의료봉사를 .. 괜히 벅차고 감동스럽습니다.
"미국인 의사든, 일본인 의사든 한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동양의 근대 의학 수용은 제국주의라는 어두운 얼굴을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준의 예는 제국주의와 관계 없는 방식으로 근대 의학을 전파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제3의 길을 선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어두운 얼굴 뿐만 아니라 소설주인공이지만 '꺼삐딴 리'같은 의사도 많았겠죠.
이당시부터 이런 좋은 인상을 남겨서 지금 울란바토르에 '서울의 거리'도 있고 cu 편의점이 그렇게나 많은가봅니다..^^;;

stella15
소설 같은 이야기네요. 누가 소설로 안 냈나요? 이런 거 정말 널리널리 알려야하는데...

오구오구
정말 소설같은 삶을 사셨군요. 이런 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한여름 몽골에 가보고 싶네요~

꽃의요정
378p 마지막줄에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버리는 것"이란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문장을 수집하고 싶었으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참으려다 못 참겠어서 이렇게라도 올립니다.
이 오빠 쫓아가서 맴매해 주고 싶네요.
밥심
이 책에는 제주에서의 운동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 같다고 일전에 말씀드렸는데 ’제주’ 단어가 드디어 한 군데 나오네요. 그것도 각주에서. 485쪽 귀향 후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조직하는데 기여한 학생을 소개하면서 제주 조천리 봉기를 주도한 휘문고보생 김정환 을 언급합니다.
저자가 나가는 글 556쪽에서 ‘이 책에는 맹목의 지점이 많다. 지역 계층 사건 간 균형이 부족하고 문제의식도 편중돼 있다’고 고백(?)했으니 제주는 지역간 균형 부족 사례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겠어요. 저자의 수고가 너무나 많이 들어간 역작 잘 읽었습니다.

연해
“ 후일 함석헌이 말한 대로 3ㆍ1운동은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식민지의 하급 공무원으로 그럭저럭 자족하던 사람들이 사회운동가로 변신했고, 제 한 몸의 안녕을 목표 삼던 이들이 민족과 혁명의 대의에 투신했다. 생성과 초월에의 정념이 부활하여 배움에의 열망도 불타올랐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p.431,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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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삶이 공포·고통·비애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와 세계 또한 무한대로 확산된 시공간으로서 무미(無味)한 연장(延長)이요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론적 진보의 관념이 사라진 자리에 이 시공간 개념은 썩 적절하다. 그러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