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제주에서의 운동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 같다고 일전에 말씀드렸는데 ’제주’ 단어가 드디어 한 군데 나오네요. 그것도 각주에서. 485쪽 귀향 후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조직하는데 기여한 학생을 소개하면서 제주 조천리 봉기를 주도한 휘문고보생 김정환을 언급합니다.
저자가 나가는 글 556쪽에서 ‘이 책에는 맹목의 지점이 많다. 지역 계층 사건 간 균형이 부족하고 문제의식도 편중돼 있다’고 고백(?)했으니 제주는 지역간 균형 부족 사례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겠어요. 저자의 수고가 너무나 많이 들어간 역작 잘 읽었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밥심

연해
“ 후일 함석헌이 말한 대로 3ㆍ1운동은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식민지의 하급 공무원으로 그럭저럭 자족하던 사람들이 사회운동가로 변신했고, 제 한 몸의 안녕을 목표 삼던 이들이 민족과 혁명의 대의에 투신했다. 생성과 초월에의 정념이 부활하여 배움에의 열망도 불타올랐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p.431,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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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삶이 공포·고통·비애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와 세계 또한 무한대로 확산된 시공간으로서 무미(無味)한 연장(延長)이요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론적 진보의 관념이 사라진 자리에 이 시공간 개념은 썩 적절하다. 그러나 '죽음'이 문학적 주제의 핵심이 된 순간, 개체들이 저마다의 자유와 공허 속에서 씨름해야 했던 시절은 근대 한국에서 오래 가지 않는다. 3·1 운동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신생에의 의지와 공동체적 감성, 개조에의 의지를 키워내게 됐기 때문이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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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1910년대 내내 억눌려 있다가 3·1 운동으로 출로를 찾았던 민족 감정은 다시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한편 '조선'은 이제 지식과 담론의 층위에서라면 엄연한 현실로 자리 잡았다. 3·1 운동 이후 언론 ·출판 공간의 개방 속에서 '조선인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기만적 유사 사회(psuedo society)에 불과했지만, 입법권도 선거권도 없는 식민지 사회에 불과했지만, 형용모순인 채로나마 '자유'의 여지를 부여하는 듯 보였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