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정부에서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국제회의를 불신케 된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워싱턴회의를 '제국주의적'인 행사로 규정하고 대신 소비에트 러시아로 희망을 옮기는 자취는 회의 직전부터 보인다. 3·1 운동 후 여러 달이 지나고 심지어 1~2년이 지날 때까지 계속된 독립에의 기대가 이때쯤 좌절됐다고 해도 되겠다.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던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이 맥락에서 징후적인 글이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30-531쪽,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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