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책 읽으며 호흡 곤란을 일으키기는 간만입니다. 말이 만연체이지, 마침표가 찍혀 있을 자리에 쉼표가 있을 뿐인데도 숨이 가빠지네요. 부호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 여태 노안이 빨리 찾아올 정도로 다독을 하면서도 몰랐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유의미한 한 권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쉼표보다는 마침표를 선호하는 인간이었네요.
"너는 두려움이 이 생물계와 무생물계의 모든 구성원을 봐, 그러면 너는 두려움이 이 생물계와 무생물계에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요소임을 알게 될 것이니 두려움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그 밖의 무엇도 그토록 무시무시한 힘을 속에 지니지 않았기 때문으로, 두려움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생물계와 무생물계의 어느 것 하나 그토록 거대한 정도로 정의하지 못하기에 모든 것은 두려움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데, 이것을 추적해도 저것을 추적해도 두려움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므로 더는 이 문제로 전전긍긍하지 않겠지만 이 엉큼한 변명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할 테니 지금은 두려움에 주목하기로 하고,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이 존재의 본질이 되는 지점에 도달하나 나는 지나치게 앞서간 게 아닌가 싶으ㄴ데, 존재에 대해서는 그 밖의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존재가 두려움에 이끌린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네게 말한 것은..."
이 정도의 만연체는 극히 드문 시도이긴 하지만, 참신한 발상은 아니지요. 사유의 전개도 방대하기는 하나 '오호라!'를 이끌어낼 만한 무언가는 없다는 게 제 감상입니다. 번역가 선생님의 노고 덕에 가독성은 양호하지만, 좀처럼 진도를 빼기 힘든 건 작가와 저의 궁합의 문제, 전적으로 제 취향의 문제네요. 판에 박힌 <돌아온 탕아>적 설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서사 전개가 한정되어 있고, 책과 읽어보신 분들의 감상을 쫘악 스캔해 본 바, 저의 한정된 시간을, 호흡 곤란의 고통을 감내하며 이 책에 쏟아야 할 당위성을 못 느끼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단으로서의 의무감에 읽고는 있습니다만, 정말 싫은 사람과 데이트를 강요당하는 기분이네요. 기호에 따라서는 그냥 '벽돌'일 수도 있는 책 같습니다.
정말 싫은 사람과 데이트를 강요당하는 기분! 저도 지금 살짝 그런 느낌 오려고 하네요 ㅎㅎ
너무나도 공감합니다. '데이트를 강요당하는 기분'이라니 진짜 최고의 표현..! 책이 주는 메시지가 나쁘진 않았지만 제게 맞지 않는 문장을 뇌에 힘주고 읽을 정도의 것이었냐면 또 그렇지는 않았기에...
정말 공감... 덕분에 다른 독서단 책이 너무 재밌어요.
너무 공감하는 댓글입니다. 정말 싫은 사람과의 데이트,,,
드디어 초코하임님이(ㅋㅋ) 귀향을 하셨네요..휴..다음 파트는 또 어떤 내용의 만연체가 기다리고 있을 지..긴장하며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교수가 중심으로 나온 부분과 남작이 중심인 부분이 확연하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이야기 자체는 @Mojito 님 말씀처럼 <돌아온 탕아>의 익숙한 이야기로 보여 엄청난 만연체를 걷어내고 나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읽을 수록 리듬을 타게 되어 점점 익숙해고 있긴 하지만 작가가 왜 이런 문체를 선택했을까 알고 싶고, 책의 후반부에 남작과 교수가 어떻게 교차할지도 기대되네요. 저는 주말에 영화 <사탄탱고>를 보려고 합니다.
다들 기다리신 것처럼 책 제목의 남작은 소설이 한참 진행된 뒤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독 남작이 중심화자인 챕터가 저는 잘 읽히더라구요. 그래서 남작 너는 정체가 뭔데 다들 이렇게 귀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거야? 라는 마음으로 기나긴 문장의 숲을 헤치고 나아가게 만드는 벵크하임 남작 너는 누구인가...수많은 독자들조차 기다리게 만드는 남작의 귀향, 남작이라는 표현도 묘하게 옛스러우면서 이 소설의 배경을 착각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남작에 꽂혀서 어렴풋이 19세기 정도로 예상하며 읽다가 스마트폰이 튀어나오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여기서 모든 것을 감독하는 자요, 무엇도 창조하지 않고 그저 모든 소리 앞에 존재하는 자요, 신의 진리에 따라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그저 기다리는 자" (p17)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아니라)듣는 사람이네요. 우리 역시 플로우에 몸을 맡기고 듣다 보면 음악이, 노래가 끝난 뒤 무엇이 남을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젠 볼일이 하나도 없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생의 말년에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가 돌아가려는 곳은 자신이 떠나온 곳이요,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요, 모든 것이 늘 아름다워 보이던 곳이지만 그 시절 이후로 모든 것이 지독하게 달라진, 하지만 지독하게 잘못된 쪽으로 달라진 곳이었다.(132p) 그리움, 회긔의 본능. 어쩌면 불안과 그리움은 어느 정도 양의 상관관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를 변수로 둬야하나.. 어느 정도 나이가 많이 들면 불안해서 그리울거 같진 않지만,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경험한 과거도 아닌 한 지점을 영원히 그리워하니까요..
오늘 아침부터 달려서 '럼/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챕터까지 진도를 따라잡았습니다. 문체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가도 중간중간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네요. 곱씹어가며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일단 앞으로 나아가보자는 생각으로 읽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 교수나 남작을 만난 후,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 등에서 후일담 형식으로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서술이 반복적으로 나왔던 게 기억에 납니다. 사건을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느낌이라 재밌네요.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작중 배경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현대로 그려지지만, 헝가리의 시골마을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책의 분위기 탓인지 저한텐 계속해서 현실과의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바이에른 뮌헨의 단테가 나와서... 소설의 시점도 확실해지는 한편(단테가 뮌헨에서 뛰던 2012~2015, 이 책이 2016년에 나왔으니 집필할 당시 시점이네요!) 이야기가 현실과 확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갈 앞으로의 이야기는 또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저도 이 소설이 내뿜는 묘하게 뒤틀린... 시간 감각이 '단테'의 어긋남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 같아 재미있었어요. 남작과 비서(?)가 '단테'를 두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장면에서 지금껏 소설이 혼란스럽게 왔다갔다 했던 과거-현재 배경이 한데 겹쳐 펼쳐지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어요. '럼/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부분에서 가장 웃겼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럼' 챕터를 다 읽었습니다. 남작의 귀향길을 묘사한 챕터네요. '트르르르'에서 남작의 귀향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묘사되어있었는데 알고보니 남작은 도박벽이 있어 돈을 탕진한 상태였어요. 식사 후 값을 지불할 때는 물가를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여기서 돈을 탕진한거에 대한 조바심과 같은 감정도 과연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솔노크의 단테라는 사람이 비서를 자청하는데 남작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오로지 돈을 노리고 그러는 것 같아보여요. 남작과 동행을 하게 될지, 남작이 돈이 없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솔노크의 단테가 궁금한 것 처럼 저도 남작이 나이가 든 후에 왜 귀향을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그와 남작의 지난 서사가 무척 궁금해지는군요. 세계적인 이끼 전문가가 금수탑 꼭대기에 은둔한 이유, 그리고 뱅크하임 남작이 아메리카에서 돌아오는 이유, 그 두 사람의 만남이 기대됩니다. 이보이커 여사의 마음 따뜻한 린처토르테의 향기도 느껴봅니다.
문장이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간다는 사실과 주저리주저리 장광설을 늘어 놓는 듯한 어투가 읽을수록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네요. 위에 언급된 것처럼 저도 읽을수록 시대배경이 과거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혼란 속에서도 백작과 '단테'의 등장, 가문에 의해 포장된 백작의 귀향에 대한 소식이 앞으로 어떤 오해와 웃지못할 사건들로 이어질지 궁금해져서 책을 쭉쭉 읽어나가게 됩니다.
저도 돈키호테 생각이 많이 났어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어서 쇠락, 소멸해가는 제국의 느낌이 계속 나네요
전 이 부분 다시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들 간의 갈등 구조가 눈에 띄네요 이렇게 단순화시키면 안될지도 모르지만 유독 <기득권층이거나 나이 많은 어른들 - 지위가 낮거나 나이 어린 청년들>이라는 갈등 구조가 자주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교수와 딸, 남작과 단테처럼요. 남작과 단테도 남작이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폭발할 것을 생각하니 일종의 잠재적 갈등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사실 뒤에도 더 등장하지만 스포니까 비밀!) 작가가 클라이막스를 위해 세대갈등이라는 기폭제를 곳곳에 심어두는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럼 _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정말 대단한 사람이 귀향한다고 한껏 부풀어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벵크하임 남작은 노름빚으로 파산한 초라한 노인입니다. 기차에서 남작의 비서를 자처하는 단테 역시 남작에게 바라는 게 있기 때문임은 뻔해 보입니다. 「럼」에서는 21세기에 들어선 헝가리의 사회 문제도 사이사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난민 문제라든가 가짜 뉴스 같은 현대 사회에서 이슈화 되고 있는 부분들인데요, 작가는 이 부분들을 마치 있을 법한 일이라는듯이 예사롭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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