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확실히 읽어나가면서 속도가 붙는 소설 같습니다. 저도 점점 더 읽는 속도가 빨라지네요.
이 시대는 자유가 아니라 치욕의 연대기에 불과하며 다시 한번 무신론자들이 득세했고 이는 개탄할 만한 일이니 그들이 실제로는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요, 한 발 더 내디디는 용기, 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언제나 그들에게 결여된 것이었으니 그들은 비난받았으며 어쩌면 오늘날에도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바,(...)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용기였으니 그들은 비겁했고 이날까지도 여전히 비겁하며 참된 무신론자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쨌든 저 측은한 거렁뱅이들, 어제와 오늘의 무신론자들, 그들은 거창한 문장을 내뱉었고 자신들의 말 때문에 즉시 바지를 적시고 말았으나 그들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그 중요성을, 자신들이 방금 발견한 것의 놀라운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기 때문이며ㅡ(후락)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481,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유럽권 독자들에게 별점이 높다는 것이나 정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이 혼자 읽었다면 몰랐을텐데 뜻밖이에요. 오해로 비롯되는 한바탕의 상황들이 재밌어요.
소설이 쓰여진 헝가리어는 물론이고, 다른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해요. 과연 우리가 같은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요. 모든 번역에는 그런 면이 있지만, 이 소설은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하네요.
390.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를 들여보내주는 것으로, 그 건물의 이름은 카지노였고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남작이 숙소로 간 후 피곤해서 완성되지 않은 침대에 눕는 모습이 정말 잘 묘사되어있어서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오랜 비행 후 여행지에 밤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시장이 만찬에 데려가려고 할때 저도 피곤함이 같이 몰려왔어요 ㅋㅋ 스위트룸을 마련해준 걸 보고 편안.. 남작은 마리에타를 만나는데 알아보지 못해요. 남작이 좀 모자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남이 닿는 거를 끔찍이 싫어하고, 자신의 또래였던 마리에타가 늙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사기꾼인 단테를 믿고, '카지노'에 머무르기 위해 도박을 해 모든 돈을 날려버렸다는게.. 정상적인 사람 같지는 않네요.
앞서 친척 회의 할 때 '바보'라는 식의 표현이 몇 번 등장하기도 하고, 이번에도 머리커와 대화하며 자신의 '질병'을 언급하는데, 확실히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요...
이 여정의 목적이 뭔가? 어딜가고 싶은거야? 그들는 우리가 고아라고 말하지만 버려지지 않아도 고아가 될 수 있어. 현대에 사는 우리는 버려지고, 좋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렇게 불안하게 붕뜬 채 살아야하는 걸까요? 어쩌다 보니 외국에서 조금 이동하면서 읽고 있어서 결국 인간의 삶이란 디아스포라인가... 벵크하임 남작이 마지막에 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저도 절감하게 되네요.
외국에서 이동하며 읽으면 느낌이 또 다를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두꺼운 책을 외국에서 이동 중에 읽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저 끔찍한 경적이, 저 너절한 농사꾼 여편네들이 마이크에 대고 악을 쓰는 <에비타>의 저 끔찍한 노래가 정말로 필요했는가, 저 모든 연설이, 그에게 걸맞지 않은 저 모든 요구가 필요했는가였던바 그들은 그를 대체 어떤 사람으로 여겼기게 가장 세련된 분위기에만 익숙한 그를 저렇게 몰아붙였을까,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 324,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내게 말했으므로] 남작이 왜 귀향을 하고자 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 수 있어서 답답함이 조금 풀렸어요. 하지만 마리에타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에는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요. 그런 행동이 마리에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남작'이라는 단어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 중세의 분위기를 머릿속에 떠올렸어요. 그 때문인지 아이폰이나 스마트폰 등의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을 빨리 지워야 하는데 만연체 때문인지 쉽게 지워지지 않네요. 또한 남작의 생각은 안중에 없이 그의 돈을 탐내는 이들의 욕심이 저열하게 느껴지네요. 과연 누구를 위한 환영회였을까요. 치적을 내세우려는 관료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비판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머리로는 분명 현대가 배경이라는 걸 아는데도 저 역시 스마트폰이나 문자 메시지 등이 나올 때면 놀라게 되네요. 단순히 남작의 돈을 탐내는 걸 넘어서 환영회에서 숫제 재산을 기부하라고 종용하는 장면이나 시장이 기자들에게 '그의 일정은 전적으로 그가 결정할 것이다 여러분은 민주주의에 익숙해져 있어서 낯설겠지만 그는 영주나 다름 없고 그가 하는 건 통치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는 장면에서는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긴 우리 모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잖아, (p.440) 쫓아가면서 읽고 있는데 어쩐지 이 문장이 마음에 박히네요. 정말 스쳐 지나가는, 줄거리에 큰 영향을 주는 문장도 아닌 짧은 푸념일 뿐인데도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른 문장이에요.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이 위태롭고 불안한 작중 사람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인데 인용해주신 문장을 보며 과연 어떤 상황에서 누가 한 말인지 상상해보게 되네요. 이런 것도 함께 읽기의 재미인 것 같아요.
아, 이제 좀 읽기 좋네, 싶다가 이해하기 어려워지면 아, 의식의 흐름!이란 생각을 하며 머리를 비우고 다시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다가 다시 혼란스럽고. 익숙해질만하면 낯설어지고 낯설다가도 쉬워지는 소설이에요.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
저도 정확히 같은 느낌이네요. 765쪽이나 되는데 만만하면 재미 없었을 것 같아요!
이 시대는 한편으로 기세등등하고 한편으로 괴멸적이고 한편으로 의기양양한데-깊이 들여다 보면 이 시대는 자유가 아니라 치욕의 연대기에 불과하며 다시 한번 무신론자들이 득세했고(...)실제로는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요, 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 용기, 이것이야 말로 언제나 결여된 것이었으니(...) 481p 유럽의 가장 큰 고민이지 않나 싶네요 EU로 묶여 있긴 하지만 예전의 종교처럼 그들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 묶어줄 강력한 무엇인가가 나타나지 않는한 유럽 내에서도 디아스포라를 계솟 느끼려나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종교없이 스스로 선택할 용기, 책임질 용기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불안만 야기되는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2.0시대라 그런지 더더욱..
며칠 정신없어서 그믐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오늘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400쪽) 몰아서 읽고 확인하고 있는데, 제가 아직 읽지 못한, 인용해주신 문장들을 보고 있으려니 아니 이 소설에 저런 문장이 나온다고? 하게 되네요. 과연 무슨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두근... 그리고 말씀해주신 부분 또한 공감이 됩니다. 유럽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전세계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오늘까지 겨우겨우 진도는 따라 잡았습니다. 위에 어느 분인가 써놓으신대로, 만연체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느라 정신없이 흘러흘러 이제막 어느 낯선 무인도에 표류한 느낌으로 한숨 돌립니다. 헝가리어로 읽으면 또 다른 뉘앙스가 있을테지만, 꿈도 꾸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이런 격랑의 만연체 소설을 번역해내신 번역가님께 무한 경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진짜 이런 소설을 번역하는 건 과연 어떤 경험일지, 무척 궁금하지만 다른 한편 상상하고 싶지도 않네요.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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