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를 다 읽었습니다. 역시나 소설의 전개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게 읽혔는데, 많은 분들이 독서 중에 써주신 이야기들을 읽으며 소설을 곱씹어보니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산머루 님께서 중후반부의 내용을 언급해주시면서 맨앞 <경고>를 '전체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고로 읽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소설을 읽으면 읽을 수록 모호했던 <경고>에 대한 독해가 제 나름대로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전환되고는 있었는데(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요!) 저와는 다른 관점에서 읽어주셨지만 아주 흥미로운 말씀이신 것 같아요. 저도 작가가 인간들이 집단화되어 가는 과정, 질서를 중시하는 비장함 등에 주목하고 그것이 얼마나 우습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네요.
아무래도 저도 이 장에서 가장 '사건'이라 할 만한 점은 두 가지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마리에타(머리커)와 남작의 만남, 그리고 실종 상태에 있었던 단테(콘트라)와의 만남이요. 둘다 기대와는 다른 것들만 남겨준 만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처럼 화려했던 환영식에도 불구하고 남작의 귀향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낙차 때문인 것 같고요.
저는 마리에타에게 이입을 좀 했더니 너무 너무 슬프기도 하고... 너무 웃기기도 해서...ㅋㅋ @고양이라니 님이 말씀해주신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마리에타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보는 관점), 그렇게 읽어도 확실히 재미있는 것 같아요. 남작이 그리움과 노스탤지어적 정서에 빠져 실체는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헝가리와 마리에타가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덜 아프기도 하고...ㅎㅎ
그럼에도 @sophia80 님 말씀처럼 저에게는 마리에타의 "큰 고통"이 크게 다가왔는데요. 특히나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 그러니까 머리커는 남작을 알아보고 남작은 머리커를 마리에타의 할머니 정도로 생각하며... 아니 근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진짜 너도 늙었잖아... 아무튼 그런데 머리커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작을 감당해야 하고요. 말을 해줄 순 없고 저도 절대 절대 말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입술을 과하게 오므리며 커피를 홀짝대는데, 작가도 너무하네요 그걸 포착해서 집요하게...
남작이 그 집에서 나오기 직전 둘의 침묵 속 대치 상황은 (이번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는데) 남작도 그 진실을 알아버렸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단테도 알고보니 이 마을에서 유명한 사기꾼이었던 거죠. 심지어 경찰서장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이고요. 얼 빠진 남작과 단테가 어쩌다보니 경찰서장으로부터 도주 중인 상황이 된 것인데, 두 빈털터리가 어떤 (끔찍한) 일들을 맞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소란스러웠는데요. 여전히 압도적인 속도감과 화려한 문체, 선명한 캐릭터성 등등 작가의 농락(?)에 기분 좋게 말려들면서요. 라슬로는 우리의 하루 중 가장 짧은 순간, 가장 작은 장면을 크게 늘리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가 같아요. 길게 늘린다고 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게. 태블릿에 크게 펼쳐진 화면이 있다면 그중 아무곳에서 두 손을 대고 한 점을 죽죽 늘여 보이는...그런 것에 비유할 수 있달까요. 두 사람이 커피 마시는 장면만 해도 그 자체로 엄청나게 세밀하거나 미묘한, 혹은 민감한 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오직 문장만으로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연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전략을 구사하는데, 그렇다고 시간을 무한화하는 언어의 장엄함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우리 모두가 함께 읽으며 발견한 것처럼 소설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은 비장하고 엄숙한데, 어투는 가볍고 냉소적이기도 하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그 동일한 기법을 통해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종 수준으로 집단화했다가,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적인 층위로 끌어내리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많은 분들이 짚어주신 환영식이나 오토바이 무리, 경찰 서장, 시장 등을 묘사할 때는 개인성이 제거되고(캐릭터성은 부각되는 데 반해) 인간의 전형적이고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모습들이 조명되고, 이렌과 머리커, 머리커와 남작, 단테와 남작(심지어 단테와 택시운전사)에게서는 정말이지 개인적인 의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조명되잖아요. 인간에 대한 이런 양가적인 모습들이 작가가 헝가리를 바라보는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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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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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저도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까지 읽고, <펌/무한한 어려움>을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소설이 길기도 하고 정신 없는 면도 있지만 그 틈에 캐릭터들을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금정연 작가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여담'으로 나오는 캐릭터들도 그렇고요. 남작 캐릭터도 저는 참 재밌다고 생각했는데요, 소설 속 남작은 '자신의 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의 전형이죠. 괴수와 히어로의 싸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화인 <원펀맨>에 보면 '킹'이라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사실 싸움은 하나도 할 줄 모르지만 '킹'은 어떤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서 그 세계에서 히어로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히어로 랭킹 1위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리인데... 사실 '킹'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속임수를 쓴 것도 아니고, 1위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사실 히어로와 전혀 맞지 않게 겁이 엄청나가 많은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만화적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계속 괴수를 무찌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인물이에요. 자신의 지위에 전혀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그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부담스러울 뿐이고 돈도 없지만 사람들은 마을을 구원해줄 구세주처럼 여기고 있는 남작이 딱 그런 인물 같다는 생각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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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사실 '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이 '남작'이라는 자리가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 아이러니가 우스꽝스럽고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다는 느낌이네요. 남작은, 실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 인간들을 두려워하고요. 남작에게는 삶이 너무 거추장스럽기만 한 것처럼 보여요. 남작이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고 해서 왜 그랬을까 궁금했었는데, 이번 장에서 남작은 단지 '카지노'라는 공간에 앉아 있고 싶었을 뿐이고 카지노에서 나올 수 없도록 하는 수작에 계속 당해서 그냥 모든 재산을 탕진할 때까지 거기 그렇게 슬롯머신과 포커를 하며 앉아 있었다는 설명이 나왔는데 그게 참 재밌었어요. 그는 자신의 '마리에타'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지만 사실은 그 마음을 진정한 것으로 유지할 역량조차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고요. 그가 다른 모든 세계를 배척하며 그 대신이라고 할 것처럼 간직해온 어떤 순정...마저도 정작 머리커를 마주하고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에서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작가는 이에 대해 풍자도 연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마 풍자도 연민도 인간을 대상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이 비인간으로서의 남작이 제게는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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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머리커도 재미있는 인물인 것 같아요. 마을사람들처럼 드러내놓고 속물적인 건 아니지만 머리커에게도 기본적으로 허영이 있는데요, 금정연 작가님이 지적해주신 대로[머리커는 사실 편지를 받고도 벵크하임(벨러)를 기억하지 못했고 겨우 기억을 더듬은 끝에 "그래, 그녀가 고등학교 다니면서 도보시 아담과 깊은 관계였을 때였는데, 그때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또 다른 남자애와 몇 번 만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죠.] 벨러 남작이 원래 머리커에게 그렇게 대단한 인상을 준 사람은 아니었죠...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 부분을 보면 본인 말로도 아담에게 푹 빠져 있던 시기였고, 벨러에 대해서는 뭔가 나이도 헷갈리는 것 같아요. 211쪽에 보면 "난 열일곱인가였고 그는, 즉 벨러는, 그러니까 그는 분명히 좀 더 어렸어, 열다섯쯤, 아니면 열여 섯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사실 기억이 안 나"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조금 지나 216페이지에서는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를, 그러니까 벨러를, 역에서 나오는 그를 다시 만났어, .... , 그 순간 깨달았지, 그래,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그도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그에겐 뭔가가 있었어"라고 나이를 헷갈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요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강보원
늘 어떤 다른 세계를 꿈꾸고, 더 높은 무엇인가를 꿈꾸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머리커의 그런 마음은 말하자면 세계와의 대면 속에서 일종의 패배를 겪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적어도 겉으로는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죠. 그러다 갑자기 날아온 한 통의 편지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요. 스쳐지나갔던 인연을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이었던 것으로 바꾸어 기억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이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게다가 할머니가 된 머리커에게 아주 깊은 곳에 불씨처럼 남아 있던 허영은 또 젊을 때와 같을 수도 없고요. 저는 머리커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머리커가 세상에 잘 녹아들고,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실망에 익숙해지면서도, 남작처럼 세상(혹은 삶 자체)를 완전히 등져버리거나 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완전히 버려버리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 지금의 머리커에게 껍데기 같은 남작은 앞으로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머리커를 봐서라도 둘이 어쨌든 잘 됐으면 좋겠지만 이 상태의 남작과 잘 되는 게 머리커에게 좋은 게 맞긴 할지도 걱정이 되면서... 소설의 뒷부분이 참 궁금해지네요...

Henry
고백하건데, '이 계절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과 그믐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씸 좋은 분들의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이상하게도 등가에 수렴합니다. 어떻게 읽고 반응할지, 마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미스터리 스릴러 연재물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금정연
이 계절의 소설 겨울과 가을에는 모임 시작 전에 제가 먼저 책을 읽고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동시에 읽어나가니 또 전혀 새로운 느낌이네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 진도를 못 따라갔을 때면 올려주신 내용들을 보고 다음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이런 게 함께 읽기의 즐거움인 것 같아요!

금정연
“ ...그녀의 안마법은 자기만의 즉흥적 수법이어서, 남편이 안마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면 늘 이렇게 말하길 그럴게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즉흥적 수법으로 하는 것밖에 몰라요, 그러고는 어깨에서 시작하여 승모근을 타고 목으로 가서 목덜미까지 올라갓으나 사실 이 부위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으로, 남편의 몸에서 이 부위는 좋아하지 않았으며 물론 결코 그에게 말하지는 않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목덜미뿐 아니라 머리 뒷부분 전부가 싫었으나 남편은 늘 목부터 정수리까지 이 부위를 안마받고 싶어 했으며 물론 그녀가 싫어한 것은 그의 대머리 머리통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차라리 머리통 전부가 대머리였으면 더 나았을 것이고 그녀는 개의치 않았을 테지만 이렇게 정수리 앞쪽은 벗어졌으되 뒤통수 아래쪽부터 목까지는 아직도 털이 조금 남아 있었고 그 아래로는 뻣뻣한 센턱이 되었던바, 글쎄, 이건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녀가 여기에 익숙해지지 못했다고 잘라 말하진 않았을 것이, 30년이면 무엇에든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만 좋 아한다고 묻는다면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61~362,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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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너무 상세하고 사실적인(현상이 아니라 심상의 차원에서) 묘사라 읽으면서 한참 웃은 장면이에요.

내가그린기린
딱 과하기 직전의 선까지 닿은 상세한 묘사에 저도 온몸을 배배 꼬면서 읽었습니다.

금정연
전체적으로는 쉽지 않은 독서였지만, 중간중간 이렇게 생생한 부분들이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금정연
“ ...옆에 놓인 콘크리트 슬래브로 터덜터덜 돌아가 한참 동안 코를 풀며 고개를 끄덕거리되 마치 어디선가 음악이 연주되기라도 하는 듯, 마치 베이스 드럼의 리듬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듯 끄덕거렸으나 음악은 어디에도 없었고 기억뿐이었던바 그것은 '해피 하드코어' 음악으로, 이따금 시설의 인터컴 시스템에서 흘러나왔는데, 그들에게는 오로지 힉시였기 때문으로, 아아아니, 개머뿐이지, 그래, 좋아, 그들은 이렇게 합의했는데, 하지만 최고는 스코티 브라운이지, 무슨 응원가처럼 그들이 말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실제로 응원가여서 이따금 그들은 저 이름들을 되뇌면서 다리로 박자를 맞췄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 말하자면 앉아 있을 때면 계속 다리를 흔들었다는 것으로, 이젠 할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76-377,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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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소설에 음악이 나오는 부분을 항상 주의 깊게 보는 편인데, "마치 베이스 드럼의 리듬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뜻 끄덕거렸으나 음악은 어디에도 없었고 기억뿐이었던바"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더 놀라운 건 등에 용 문신을 생긴 야쿠자 워너비인 이들이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13살짜리 소년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가요? 어쩐지 이상우 소설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특히 중간까지) 근데 해피 하드코어라니,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장르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있군요. 들어봐야겠어요.

금정연
“ ...그가 다시 동료들을 향해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들은 택시 운전사 특유의 무한한 인내심을 품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그에게 귀를 기울인 채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해설이 썩 흥미로워서라기보다는 누구든 무슨 얘기든 해주는 게 고마워서였으니 그에게 귀를 기울일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갔으므로 무슨 이야기인지는 상관없이 그저 계속 이야기만 흘러나오면 되었기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자에 더욱 깊숙이 퍼더앉아, 계속해봐, 얼리커, 그만두지 말고, 자네가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82-383,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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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한 챕터에 평균 26번 내외로 마침표가 찍히는데요 그래서 그럴까요? 언제부턴가 이 소설에서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데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이가 하는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에 감사함을 느끼며 그가 이야기를 멈추지 않도록 독려하는 장면이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산머루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에 이어서 3인칭 대명사 ‘그’로 소제목을 지었는데,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는 머리커 입장에서 벵크하임과의 사랑을 기억 저 너머에서 현실로 끄집어내는 부분이었다면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에서는 벵크하임의 입장에서 마리에타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환영식 이후 벵크하임은 고향을 떠난 40여 년동안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던 마리에타의 사진을 보며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벵크하임은 마리에타를 찾아가고 머리커에게 자신의 삶의 존재 이유가 마리에타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머리커가 마리에타임을 알아보지 못한 벵크하임은 단테에게 ‘카지노’에 갈 것을 요구합니다. 도박을 좋아해서 전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진 벵크하임은 사실 ‘카지노’에 가고 싶었을 뿐이며(물론 도박인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머커리의 회상에 의하면 ‘카지노’는 한 번도 입맞춤을 해보지 못한 벵크하임이 머리커와 처음으로 입맞춤한, 쾨뢰시강이 내려다보이는 평범한 과자점 이름이었습니다. 그곳 테라스에는 마리에타와 벵크하임, 둘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당구장으로 변한 그곳 테라스에서 그때처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아 쾨뢰시강을 내려다 봅니다. 그 옆에는 빈 의자가 있었는데 좀 더 가까이 당깁니다.
벵크하임은 어쩌면 머리커가 마리에타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녀와 헤어져 있었던 46년동안 그를 지탱하게 했던 것은 오직 마리에타였으니까요. 그가 귀향하여 처음으로 갈 곳은 ‘카지노’였고 같이 갈 사람은 ‘마리에타’였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의 머리커는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마리에타’는 아니었습니다. 머리커를 만난 후에 몽롱한 상태로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초점 없는 퀭한 눈으로 있었던 벵크하임이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카지노뿐’이라고 말함으로써 현실의 머리커와 자신의 마음속 마리에타를 등치시키는 것을 포기합니다. 설명하자면 구차해질 것 같은 남작의 이 헛헛한 마음에 읽는 동안 한없이 몰입돼있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온갖 인물이 등장하고 조금은 엉뚱한 각자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풀어 놓아 바깥으로 끊임없이 이끌어가려고 하지만 언제나 마리에타와 벵크하임의 사랑 이야기에 묶여있어 조금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슬픈 사랑이라니요.

금정연
자세한 정리 감사합니다. 남작이 마리에타를 알아봤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만약 그렇다면 '카지노'에 간 남작의 모습이 더욱 씁쓸하게(여러모로) 느껴지네요...

내가그린기린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더 슬퍼지네요 세상에...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오늘은 '펌/ 무한한 어려움'을 읽는 첫날인데요, 다들 어떠셨나요?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틀 정도 책을 읽지 못하다 오늘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부분을 읽었는데요, 그래서 교수가 재등장한다는 '무한한 어려움' 부분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오늘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읽으며 제 의식에 떠오른 생각들을 몇 개 공유해봅니다.
이번 장은 사물을 주어의 자리에 놓고 시작하는 게 특이했어요. 작가는 서술의 초점을 옮겨 가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관점과 입장을 보여주는데요, 이제는 정차해야 하는 선로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어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덜커덩거리는 기관차까지 등장하다니!
환영회에서 재산을 기부하라고 종용하는 시장과 서장의 말은 충격적이었는데요, 그보다 더 큰 충격은 갑자기 시장이 기자들에게 "하지만 그의 역량으로 보건대 오늘부터 그가 이곳의 영주이자 주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오"라면서 더이상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통치'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어요. 왜? 귀족이라서? 돈이 많아서? 후덜덜...
오토바이족의 구호가 "깔끔한 마당, 단정한 주택, 질서가 있으리로다"라는 건 웃기면서도 어딘가 오싹했고요.
@강보원 평론가님이 남작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머리커는 남작을 회상하며 처음에는 자기보다 한두 살 어렸다고 하더니 얼마 후에는 자기보다 한 살이 많았다고 하죠. 그런데 머리커가 67살이니 남작은 65~68세인 셈이에요. 남작은 자신의 나이도 이제 65살이 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런데 시장은 남작이 64세라고 이야기하네요. 기억의 오류, 혼동, 오해... 뭐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이것이 본문 첫 장에 등장했던, 정확한 시간에 집착했던 교수의 강박과 대조되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몇 시 몇 분인지 매번 꼼꼼하게 따지는 교수(혹은 교수 부분을 서술할 떄의 작가)와 몇 년의 오차가 있는 남작의 나이. 두 캐릭터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말씀해주신 씁쓸한 재회도 안타까웠(던 동시에 의아했)고, 재등장한 사기꾼 단테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이제 중국인이 운영하는 당구장이 된 '카지노'에 간 남작이 테라스에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놓고 앉아 "바람이 버드나무의 길고 촘촘하고 헐벗은 가지를 흔들리게, 앞뒤로 흔들리게, 강의 얼음장 같은 물 위로 차갑게 하늘거리게 하는 광경"을 보는 장면이었네요.
(여러분, 근데 혹시 그거 아시나요? 제가 5일 전에 이미 남작이 도박으로 패가 망신한 이유가 그가 머리커가 같던 과자점 이름이 '카지노'여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는 걸요. 이렇게 썼네요.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머리커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둘이 첫키스를 한 곳이 '카지노'라고 불리던 과자점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말년의 남작은 머리커를 잊지 못해 '카지노'(그런데 이번엔 진짜)를 들락거리다 패가망신 한 걸까요?"
소름...)
이제 내일은 '무한한 어려움'을 읽는 두 번째 날인데요, 장 제목과 달리 소설을 읽는 우리들이 느끼는 것은 '무한한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얼른 쫓아갈게요!
깜주
계속 일정이 밀려 저는 이제 무한한 어려움 부분을 읽고 있네요.
처음에는 끔찍했던 무한한 만연체. 이제는 쉼표를 마침표로 생각하고 읽고 있습니다. 그냥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써놓은 느낌이라 저도 부담없이 의식의 흐름으로 활자를 읽고 있습니다. 대신 머리에 남는 게 거의 없긴 해요. 똥개와 교수, 뱅크하임 남작과의 연관성이 궁금하네요. 교수는 진짜로 미친인간임에 틀림없고 남작은 덜떨어진 인간 같아요.
처음에 읽었을 땐 의식의 흐름인 것이 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푸르스트가 생각났고(1도 안읽었으나 그런 책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미친 교수가 마음속으로 안절부절하고 호들갑 떠는 것 보고 카프카가 떠올랐습니다. 카프카의 성과 소송을 읽었는데 단편 말고 장편에서는 꼭 주변에서 호들갑떨고 정신 사납게 하는 머저리들이 나오더라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다행인 것은,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의식의 흐름대로 읽으면 된다는 것이며 비록 머리에 남는 것은 없으나 페이지는 넘어가는 것이 신기한 바, 나름 꾸역꾸역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며, 아쉬운 바는 과연 기간 내에 이 책을 마칠 수 있을지가 의문이며 거의 한 달 내내 이 책을 붙들고 있다는 점이며,이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알게 된건 교수는 미친놈이며 딸이 있으며 미쳐서 총알이나 쏘는 인간이며 똥개한테 츤데레라는 점이며, 남작은 덜떨어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고집하는 늙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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