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저도 예전에 책을 미리 읽고 진행을 하면 스포가 좀 신경 쓰이더라고요. 편안하고 자유롭게 떠오르시는 생각들 마구마구 올려주세요!
오 경고....책 다시 펼치고 싶지 않지만(ㅎㅎ)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의외로 한 번 다시 펼치면 덮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 책을 읽으며 참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는데, 우선은 저도 완독 후기부터 남겨보아요 ㅎㅎ 일단 참 저도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또 다른 분들처럼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가 아니었으면 결코... 이번 생에는 읽을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결말은 정말 예상못했었는데, 중간중간 나왔던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이 극단적인 결말에 어떤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것 같아서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도시 전체가 순간적으로 멈춰버리는 장면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약간 낯설고 뜬금없기도 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와 별개로 그 장면이 없었다면 도시가 다 불타버리는 마지막 장면이 지금보다 훨씬 '맞지 않다'고 느껴졌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 작가의 어떤... 설계랄까, 책을 구조화하는 기술이 멋있다고 느꼈고요. 한편으로 이 불탄 도시에서 (작가가 '유실물들'이라고 얘기하는) 목록들, 특히 머리커가 살아남은 것이 저에겐 뭐랄까... 합당하고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졌어요. 사실 이 묵시록적인 소설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혹은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는 선택은 이 도시를 떠나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요.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요. 그런 관점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사실 저로서는 상당부분 심정적으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그것이 좋은 일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요. 이제는 다시 한 번 '경고' 부분을 읽으며 그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ㅎㅎ
목차의 마지막에 써진 '다 카포 알 피네', 그러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피네(Fine, 끝)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라는 요구를 따라 첫 장을 다시 펼쳤어요. 이런 제사가 적혀 있네요. "영원--지속되는 한 지속되는 것"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같은 재기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읽고 다시 읽으니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 소설에는 '피네'가 없고, 결국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영원히 반복-지속되는 파국. '주의'에 있는 "이 소설의 인물, 이름, 장소가 실제와 비슷하거나 같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우연이며 결코 저자의 의도가 표명된 것이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표현도 달리 보여요. 그렇다면 '헝가리인'들은 '우연'에 포함되는 걸까요 아닐까요? 그리고 문제의 '경고'입니다. 함께 읽기의 첫날, 우리는 이 부분을 처음 책을 펼친 우리에게 하는 경고로 읽었었죠. 그런데 다시 볼까요? "그는 바구니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어 닦고 들어올려 햇빛 아래 뜯어보고 사방이 반짝이는지 확인하고는 베어물고 싶은 듯 입으로 가져갔으나 베어물지는 않고 입에서 떼어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는 동안 자기 앞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사과를 들고 있던 손을 무릎으로 떨어뜨리며 깊은 한숨을 쉬고 몸을 약간 뒤로 젖혀 해 아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오랜 침묵 끝에 자신에게 말하라고,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청할 생각이 없었으니 상대방이 이렇게 얘기하든 저렇게 얘기하든 아무 의미도 없을 터였기 때문이요(...)" 이거 어쩐지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어리둥절해서 작가에게 달려온 독자들, 그러니까 우리들을 묘사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나 태연하고 너무나 뻔뻔하게 사과를 굴리더니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해보라'고 하네요. 실제로는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킹받아... "자네들이, 그가 쇳소리로 말하길 결코 내게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고 자네들이 자네 악기를 다루는 것만으로 족하고도 남은 것은 그것이야말로, 자네 모두가 자신의 악기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요, 자네들이 악기를 울리게 하고 말하게 하고--그가 목소리를 높여--말하자면 악기로 하여금 '묘사'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지(...)" "그가 설명하길 '악기'라는 단어는 간단히 말해서 일반적인 의미로서, 즉 누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하는지, 누가 반도네온이나 베이스나 기타를 연주하는지 시시콜콜 따지지 않을 텐데, 이 모든 것이 '악기'라는 말로 한결같고도 적실하게 지칭되는 바이니(...)" 악기는 우리가 가진 것이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악보는 우리 앞에 책의 형태로 놓여 있으니, 결국 우리가 우리의 악기를 다뤄서 울리게 하고 말하게 해야 한다고 하네요. 다시 말해,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읽은 것을 통해 무슨 의미든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역시 킹받아... 모든 책은 끝까지 읽고 다시 첫 장을 읽으면 새로운 부분을 보여주게 마련이고, 그래서 제가 책을 읽은 다음 다시 돌아와 첫 장을 읽기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인데, 이 소설만큼 다시 돌아왔을 때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책은 처음인 바, 어쩐지 오기가 생겨 이대로 소설을 끝까지 재독해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고 잠을 청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오늘 밤 꿈에는 활활 불타오르는 도시가 등장할 예정이고, 따라서 저는 내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공들여 이를 닦고 외투를 걸친 후 거리로 나가 제일 처음으로 눈에 띄는 복권방에 들러 로또을 사겠노라 다짐, 또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로또 되면 좋겠다.
인간의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걸까요?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파괴하고 비극은 반복됩니다. 다 카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또 이 지난한 삶을 살겠죠. 그게 가장 큰 비극이면서도, 자명한 삶의 공리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악기로, 같은 악보로도 다양한 연주를 하니 조금은 달라진 연주를 하기를. 지금은 미국에 있는 누구의 카덴짜를 듣는거 같아서 귀가 시끄럽지만요. 인생은 지휘자도 악장도 없는 오케스트라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점점 나아지는 건지 뭔지 저도 요즘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래도 좋은 책과 사람들이 있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인생이 지휘자도 악장도 없는 오케스트라라도, 그래서 대개는 들어줄 수 없는 연주가 들린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아무도 지휘하지 않지만 기적처럼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화음이 있으니까요.
지난 주말에 완독하고 정리되지 않은 어리둥절함으로 완독후기를 적은 후에 저도 처음으로 돌아가 경고를 다시 읽어봤어요. 그랬더니 작가는 이미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나처럼 경고를 무시하고 악장에게 반항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결국 작가에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게되는 기분을 느끼도록 내용을 배치하고 인물과 사건을 구성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거만하게 연주용 참고자료를 내어놓고 마무리한 것은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고를 새겨들은 이들에게 참고자료는 아, 그렇지!라며 동의했을 내용일테지만 경고를 무시하고 마이웨이로 이해하려던 저에게는 아, 그거였구나...라며 꼬리를 내리고 항복하게 만드는 부분으로 완독의 기쁨은 잠시, 작가에게 졌다는 패배감마저 느껴지는 결말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될 것 같습니다. 반복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모든것처럼 읽으면서 처음처럼 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서, 두번째인데도 왜 그럴까라며 제 이해력에 의문을 갖다가 다시 악장의 경고를 떠올리면서. 아, 고전지수 잘못 줬네.
저랑 비슷한 감상을 느끼셨군요. 졌다... 저도 딱 그런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 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고 하더라도(아마 저도 그럴 것 같은데) 그건 첫 번째 헤맴과는 또 다른 헤맴일 것 같아요. 근데 정말 '경고'까지 다 해주시고... 은근히 친절하지 않나요?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보스턴 리뷰에 헝가리의 사회적 맥락을 짚어준 서평이 있네요. 일부분을 여기에 옮깁니다. (AI 번역인 걸 감안하고 봐주세요. 전문은 여기- https://www.bostonreview.net/articles/holly-case-laszlo-krasznahorkai/ ) ""권력은,"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가 썼듯이, "항상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협력하여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반면에 폭정은 사람들을 서로 대립시켜 협력적 행동을 방해한다. 그것은 "전혀 행동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능력"으로 특징지어진다. 아렌트의 사상은 현대 헝가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자기 의식적으로 미디어, 사법부, 공공 재정에 대한 거의 독점적인 통제권을 축적하고 공고히 했다. 1년 전, 그의 정부는 사립 중앙유럽대학과 여러 NGO를 국외로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헝가리 대학들과 헝가리 과학아카데미를 자신의 정부 의제에 종속시켰다. 그리고 모든 독점처럼, 오르반 정부는 자신에 대한 협력적 행동을 저지하고 종속자들을 의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어제도 여당 연합은 의회 진행을 "방해하는" 야당 의원들을 제재하기 위한 "재갈법"을 통과시켰다. 올해 초 나는 헝가리의 한 대학 교수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정부가 대부분의 공립 대학에 대한 자금을 삭감하고 남은 자금의 분배 권한을 정부 친화적 관료들의 손에 맡긴 후였다. "모두가 줄서기를 하고, 뒷문을 찾고, 그저 버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녀는 썼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통일되고 결정적인 행동, 더 정확히 말하면 저항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부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정부의 도끼가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위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밀도 높고 광범위한 새 소설 '바론 벤크하임의 귀향'이 돌아온 것은 바로 이 헝가리이다. 중국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한 몇 편의 소설을 쓴 후, 헝가리 작가는 그의 출생지인 귈라라는 대헝가리 평원의 중간 규모 마을로 "귀향"하여, 그곳을 다성부 비극희극의 중심에 두었다. 불균형한 이원론(악에 기울어진)을 기본음으로 하는 문체적으로 곡예적인 소설로 알려진—그중 몇 편은 헝가리 예술 영화 작가 벨라 타르에 의해 화려하게 각색되고 변형되었다—크라스나호르카이는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의 일부인 희귀한 특성을 지닌 소설을 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월적이고 어두운 존재에 대한 언급도 있어요. "크라스나호르카이는 현대 헝가리 생활의 단어와 구문을 곳곳에 심는다. 그 효과는 아직 그 근원을 찾지 못한 고조되는 긴장감이다. 이 특이한 전람회 속 마지막 필수 인물은 검은 오토바이 행렬로 두 번 마을을 휩쓸며, 맥주 잔과 심지어 빗방울까지 제자리에 얼려버리는 "악하고, 병들고, 전능한" 인물이다. 그는 "전혀 행동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능력" 뒤의 신비로운 힘이다. 그가 일으키는 분열은 다른 헝가리 비평가들이 제시한 특성화에서 명백하다. 귈라의 한 지역 신문에 글을 쓴 한 사람은 이 악한 남자에게서 "지난 세기 가장 잔인한 [사회주의] 당 인물 중 하나"를 보는 반면, 다른 사람은 빅토르 오르반 자신을 본다. 소설 자체는 단지 "그는 악했다"고만 밝힌다. 그의 본질이 무엇이든, 소설은 악이 그렇게 깔끔하게 외부화되거나 고립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있군요! "영어권 독자들은 "비참한 우연의 일치"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헝가리 독자들은 번역이 가능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이는 번역가 오텔리 물제트의 잘못이 아니며, 그녀는 복잡한 산문을 감탄할 만큼 읽기 쉽고 명확한 영어로 옮겼다. 오히려, 이는 크라스나호르카이가 현대 헝가리 생활의 단어와 구문을 곳곳에 심기 때문이다—거리, 랜드마크, 역사적 인물(바론 자신 포함)의 이름부터, 최근의 정치적 사건을 연상시키는 구절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충전된 참조의 친숙함은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반복적으로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아이러니한 트위스트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것들을 포함하는 스토리라인이 흐려지거나 사라진다. 그 효과는 아직 그 근원을, 또는 더 정확히는, 그 표적을 찾지 못한 고조되는 긴장감이다."
"때때로 그것들을 포함하는 스토리라인이 흐려지거나 사라진다. 그 효과는 아직 그 근원을, 정확히는 그 표적을 찾지 못한 고조되는 긴장감이다."란 표현 정말 탁월한 듯 싶습니다. 이 작품을 싫어하시는 독자분들이 거의 열에 아홉은 문체 때문일 것 같은데 저는 이게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느낌'.(정확한 무엇이라고 지칭하기엔 뭔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을 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분명 작가도 그걸 바라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불안불안하고 불길한 그 느낌을 탁월하게 표현한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독보적 개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맞아요 ‘느낌’... 미묘하거나 강렬하거나 형용할 수 없거나, 어떤 느낌이든 결국 문학은 그러한 느낌을 창출하는 인간 행위가 아닌가 싶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크라스나호르카이는 독자를 '마법적으로' 참여시키고 싶었다고 하네요. 제 생각엔, 성공한 것 같아요. 비록 흑마법에 조금 더 가깝긴 하지만... "크라스나호르카이는 자신의 이상적인 독자를 묘사했다. 2011년 인터뷰에서, 그는 그가 살던 곳의 민감한 마을 의사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의사는 타르가 감독한 그의 소설 '우울의 대가'(1989)의 영화 버전인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2000)를 보러 갔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거친 군중이 병원을 습격하여 모든 환자들을 잔인하게 공격하다가, 욕조에 서 있는 벌거벗은 노인의 방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들은 멈추고, 장면은 긴 숏으로 정지된다. 이는 크라스나호르카이와 타르가 정당하게 유명한 그런 종류의 장면이다. 타르가 자기 부과한 은퇴에서 벗어나 '바론 벤크하임의 귀향'을 영화로 각색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노인과의 장면은 정말 매우 강렬했다,"라고 마을 의사는 그들이 다음에 만났을 때 크라스나호르카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거기 서 있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우리"는 정확히 크라스나호르카이가 목표로 하는 반응이었다. 그는 '바론 벤크하임의 귀향'이 "나의 모든 글처럼, 일종의 마법적인 텍스트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독자를 무언가에—마법적으로—참여시키고 싶은 의미에서."" 그리고 실제로 사이가 소원한 딸이 있군요... "하지만 크라스나호르카이는 이 감정에도 완전한 지지를 주지 않는다. 그가 지휘자가 열망하는 냉정한 천사가 아니라는 징후와 암시가 있다. 그는 아버지/딸 하위 플롯의 주인공들을 파괴된 것이 아닌 실종된 것들 중에 남겨두며, 심지어 그들 사이의 인식이나 화해의 희망을 반쯤 암시한다—적어도 그녀가 연설하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서. 이 전망은 또한 비참한 우연의 일치를 지니고 있다; 크라스나호르카이는 헝가리에 소원해진 딸이 있으며, 그녀는 많은 면에서 책 속의 젊은 시위자의 묘사와 일치한다. 2011년 인터뷰에서 한 인터뷰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운 때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두 가지 대답을 했다. 첫 번째는 그의 딸과 소원해진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내면에서만 운다, 나는 운다.""
헉 실제로 사이가 소원한 딸이 있군요! 이 책에서 교수의 딸은 첫 챕터 이후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유실 목록에 딸을 남겨둔 것이 화해의 희망을 암시한다는 점은 흥미롭네요... 도시가 파괴된 이후 교수와 딸의 만남이 있었을 지도 상상해보게 되네요 ㅎㅎ
"나는 그것 때문에 내면에서만 운다, 나는 운다"라는 말이 너무 마음 아프더라고요. 부디 교수와 작가 모두 딸과 화해하기를......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트 작가의 『타임셸터(2024)』 도 그랬듯, 실제 작가의 출생지나 시대상, 경험을 반영한 내용이 독자들에게는 좀 더 와닿기는 하는 것 같아요. 교수가 총을 구매하는 장면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 왜 기자들을 향해 총성을 울렸는지... 새떼처럼 파드득 흩어지는 장면은 은근 재미있었네요.
경고 파트를 다시 읽으니 마지막 부분이 특히 더 으스스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자네들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내가 보기에 자네들은 모두 지옥에 갈 것이고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나는 여기서 모든 것을 감독하는 자요, 무엇도 창조하지 않고 그저 모든 소리 앞에 존재하는 자요, 신의 진리에 따라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그저 기다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악장은 계속해서 전체가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보면 심지어 그 악장마저도 대체될 수 있는 하나의 부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지휘자가 되었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날 것이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멸망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요.
하지만 매번 멸망으로 끝나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똑같이 시작할 수 있으니, 그것이 영 슬픔만은 아닐 것 같아요. 어쩐지 니체의 영원회귀가 떠오르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남작의 죽음 전과 후로 소설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남작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부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산만함 속에서 남작만이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느릿느릿 마리에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반해(<조심하라>장을 다 읽고 나서야 마리에타와의 만남은 예정된 죽음의 통과의례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작의 죽음 이후에는 남작을 둘러싼 인물들이 질서정연하게, 하지만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남작과 관련된 모든 관계를 없애려 하는 소동 속에서 전자가 폭이 넓은 강물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았다면 후자는 급한 여울처럼 종말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었달까요. 호송차가 나타나 장면이 정지되기도 하고 헝가리인에 대한 ‘도덕적 타락’를 실랄하게 비판하며 이런 타락을 심판하듯 도시는 불타고 모든 게 소멸됩니다. 후자의 이 과정이 문장이나 구성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속도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작의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리기도 했는데요, 호송대가 나타나는 장면에서 ‘호송대 중간에 있는 그’와 남작이 겹쳐보였습니다. ‘인간의 삶에 묶여 있긴 했지만-그는 실존의 굴레에 매어 있지 않았으며 그가 지닌 무시무시한 힘의 현현이 어떤 대상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은’이나 ‘검게 칠한 차유리를 통해 이전에 한번 저 도시에 나타났던 죽은 얼굴’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러 다시 온 남작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럼 남작에게 이런 역할을 부여하는 근거는 뭘까? 고민하면서 <무한한 어려움> 중에 교수의 ‘생각 면역 연습’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인간은 시간을 관측한다는 말도 안되는 바보짓을 하고 있는데 인간은 유한만을 인정할 수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실재는 무한 속에서 생겨납니다. 여기서 ‘실재(존재)’와 ‘현존’을 구분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결코 현존하지 않는데 오직 일어나는 것(모든 과정, 사건, 사례는 배타적으로 유한하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유한하다고 인간의 뇌가 인식하는 것)만 현존합니다. 인간이 인식하는 것은 ‘현존’이고 무한 속에 존재하는 것이 ‘실재’인 것이죠. 유한한 것, 즉 시작과 끝이 있는 것에서 신의 존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유한을 부정하고 무한을 긍정하는 무신론자가 나타나는데 이들은 용기(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이 존재의 본질이 되고 두려움이 창조적 힘이 되고, 두려움에 의해 인류 문화가 창조됩니다. 문제는 ‘인류의 모든 문화를 비롯한 모든 것이 잘못된 토대 위에 건설되었’고 ‘우리의 열정을 자극한 모든 것, 인간의 창조적 정신이 낳은 모든 유일무이한 작품들의 환상에 기대고 있으며, 그 환상에서 생겨났’다는 것인데 교수는 그래서 칸토어와 그의 신(무한)에 관심을 가집니다. 남작의 죽음은 유한한 사건속에서 ‘현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한의 관점에서 보면 남작은 여전히 ‘실재’합니다. 그래서 도시가 잘못된 토대 위에 건설된 문화라면 ‘우리가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도록 프로그램밍된다면 정말이지 어쩌면 즉각적으로 절멸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교수의 생각처럼 도시의 절멸을 암시하러 남작이 호송대로 온 것은 아닐까요? 호송대 속의 그가 ‘나는 창조자도 파괴자도 아니’라고 하면서도 ‘나는 다시 올 것이니 그것은 내가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때는 산산조각 난 순간에 담긴 현현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도시의 종말과 남작의 또다른 귀향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쓰고 보니 더 어지러워졌습니다. 머리커가 부다페스트에서 보았던 교수의 ‘코트’와 집회 연사였던 ‘젋은 여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는데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고 덧대어져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저 좋았습니다.
"전자가 폭이 넓은 강물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았다면 후자는 급한 여울처럼 종말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라는 말씀이 정말 와닿네요. 저도 '호송대 중간에 있는 그'와 남작이 겹쳐 보였는데, 아마 그건 처음 남작이 도시에 온다는 소문이 들리고 사람들이 남작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뜬금없이 '호송대 중간에 있는 그'가 나타났기 때문인 것 같고 여기에는 둘을 겹쳐 보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그 '겹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씀해주신 내용을 보니,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몽글몽글 영감 비슷한 것이 피어나는 것 같아요! 소설이 너무 좋으셨다니 저도 정말 좋네요. 남은 기간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 많이많이 공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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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탐험단의 5번째 모험지!
스토리탐험단 다섯 번째 여정 <시나리오 워크북>스토리탐험단 네 번째 여정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스토리 탐험단의 두 번째 여정 [스토리텔링의 비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 속으로!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셰익스피어 - 한여름 밤의 꿈, 2025년 6월 메인책[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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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함께 조용한 질문 하나씩[n회차 독서기록]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를 다시 펼치며, 두 번째 읽는 중간 단상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예제가 궁금한 사람들, 주목!!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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