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다시 읽으면 소름이 좀 가실까요? 역사는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같은 말처럼 분위기에 눌랴 웃지 못하고 지나갔던 부분들에서 비로소 웃을 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어쩐지 이 소설이라면 더욱 소름이 돋을 것 같네요 처음엔 미처 읽지 못했던 디테일 속에 녹여진 것들을 발견하며...
앗, 후반부에 남작이 쓴 편지라는 언급이 있었군요...! 두 번이나 읽었는데 왜 놓친건지😂 독서지구력(?)이 떨어지나봐요 전..ㅠㅋㅋㅋ 그동안 이 소설에서 본 남작의 모습과는 생경한 태도네요. 읽으면서 느낀 남작은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하지 못한 소년같았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남작이 쓴 편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639쪽에 "이 글줄은--그의 중립적 견해로는 이 신문 편집국뿐 아니라 이 도시를 통틀어보더라도 최근에 제출된 글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으로--반송 주소가 기재되지 않은 봉투에 담겨 배달되었으며 글의 맨 아래에 타자기로 입력한 문구는 반어적인 의도가 명백했으니 그것은 '여러분의 남작으로부터'였으나 서명자는 저 비극적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망자와 같지 않음이 분명했는데, (...) 한편으로 이 글은 타자기로 작성되었는데, 망자는, 이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언제나 수기로 글을 썼으나, 말하자면 타자기를 한 번도 쓰지 않았으나 어쨌든--편집장이 고개를 저으며--그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짓을 겁니다, 아니, 그 글을 쓴 자는 딴 사람이었고 어쩌면 언젠가 그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글줄의 중요성으로 보건대 누가 썼느냐의 문제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으로"라는 부분이 있어요. 남작이 쓴 편지라고 되어 있는데, 남작이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누군지 알 수 없고, 어쩌면 남작이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그렇게 따지면 이 소설엔 이상한 것 투성이니까요...)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독서지구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 소설을 읽는 건 원래 그런 거 같아요. 저 역시 이 소설에서 제가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네요...
드디어 저도 완독을 했습니다. 인생 첫 벽돌책.... 올려주시는 의견들 보면서 덕분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내가 이해한게 맞는 것인가? 아니 잠깐 갑자기 어디로 넘어가는것인가? 읽는 동안 의심과 의문 사이에 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앞에서는 호송대가 주는 위압감이 엄청나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일어나는 일들의 무게가 커져서 강렬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잠시 읽는 고통을 잊게 되었습니다.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 좀 필요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경찰서장은 무능력하게 느껴지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고 부하가 가져오는 이야기들로만 무언가 파악하려고 하다 모든 것이 끝났으니.. 기차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작의 귀향을 환영하는 장면과 대조가 되면서 남작의 죽음을 대처하는 행동들 그리고 그 누구도 도시의 회복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남작이 귀향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상황(아무렇게나 사는 듯한 모습들)이 유지되었을까요? 다들 남작을 살림밑천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불쾌하기도 하고..과거의 남작은 어땠을까요. 탱크로리는 일종의 시각적 경고였을까요? 아니면 혹시 그 안에 가스가 가득찬거 아니였을까요? 누가 그랬을까요..운수업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그 정도의 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연주용 참고 자료'는 소름이 돋기도 하고 영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그런데 맨 앞으로 가서 '경고'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장도 그렇고 시장도 도서관장도 편집장도 모듀 말 뿐인 사람들이죠. 하다못해 오토바이족 대장도요. 헝가리 사회에 대해 알면 또 다른 게 보이겠지만, 우리 사회에 대입해서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문학의 힘이겠지요. 독서모임을 진행하며 독자분들께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앞부분을 다시 읽기를 매번 권해드리는데요, 이 소설은 반드시 돌아가 읽어야 하는 소설 같아요. 완독 축하드려요!
저도 금정연 작가님의 글처럼 다 읽고나서 제일 크게 든 생각은 교수, 교수 딸, 단테 등등 우리가 주요 인물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엔딩은 어디로 갔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놓친건가 싶어 몇 페이지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엔딩을 없앨 정도로 사이드 인물이었던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관습적인 전개를 철저하게 비트는 소설이니, 아마도 작가는 우리의 인물들에 대한 기대를 일부러 배반하는 방식으로 썼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곧바로 유실된 것들의 목록을 나열하며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의 이름을 썼겠죠. 하지만 얄미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토론의 첫 날이 밝았습니다! ‘토론’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냥 나는 이렇게 읽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읽었습니까, 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에요. 한 마디로, 작품에 대해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먼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근데 이건 요청이라고 해야 할 텐데, 책을 다시 펼치고 처음으로 돌아가 ‘경고’ 부분을 읽어주십사 하는 거예요. 그리고 감상을 공유해주세요! 저는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첫장을 읽는 것을 즐기는데요, ‘다 카포 알 피네(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피네‘에서 종료하라는 음악 용어죠-근데 피네가 없다면?!)로 끝나는 이 소설은 반드시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또한 처음과 끝이 이어지기도 하죠. 악장이 신을 참칭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처음과 ‘저능아’가 우아하게 독자들을 향해 같이 할 것을 지휘하는 마지막의 이미지는 대조적이지만 그만큼 밀접하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럼 여러분의 많은 이야기 기다릴게요!
저는 이 달의 소설 할 때 1번 읽었던 책이기도 해서 그런지 다른 분들보다 읽는 게 좀 더 빨라서 진도에 맞춰서 읽고 감상을 공유하는 게 스포를 한 다던지 그런게 좀 힘들었는데 이런 시간이 있으니 좋네요. 경고 부분을 나중에 읽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부분들을 들춰보면서 참여해보겠습니다.
저도 예전에 책을 미리 읽고 진행을 하면 스포가 좀 신경 쓰이더라고요. 편안하고 자유롭게 떠오르시는 생각들 마구마구 올려주세요!
오 경고....책 다시 펼치고 싶지 않지만(ㅎㅎ)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의외로 한 번 다시 펼치면 덮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 책을 읽으며 참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는데, 우선은 저도 완독 후기부터 남겨보아요 ㅎㅎ 일단 참 저도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또 다른 분들처럼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가 아니었으면 결코... 이번 생에는 읽을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결말은 정말 예상못했었는데, 중간중간 나왔던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이 극단적인 결말에 어떤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것 같아서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도시 전체가 순간적으로 멈춰버리는 장면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약간 낯설고 뜬금없기도 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와 별개로 그 장면이 없었다면 도시가 다 불타버리는 마지막 장면이 지금보다 훨씬 '맞지 않다'고 느껴졌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 작가의 어떤... 설계랄까, 책을 구조화하는 기술이 멋있다고 느꼈고요. 한편으로 이 불탄 도시에서 (작가가 '유실물들'이라고 얘기하는) 목록들, 특히 머리커가 살아남은 것이 저에겐 뭐랄까... 합당하고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졌어요. 사실 이 묵시록적인 소설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혹은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는 선택은 이 도시를 떠나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요.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요. 그런 관점이 약간 애매하기는 하지만, 사실 저로서는 상당부분 심정적으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그것이 좋은 일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요. 이제는 다시 한 번 '경고' 부분을 읽으며 그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ㅎㅎ
목차의 마지막에 써진 '다 카포 알 피네', 그러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피네(Fine, 끝)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라는 요구를 따라 첫 장을 다시 펼쳤어요. 이런 제사가 적혀 있네요. "영원--지속되는 한 지속되는 것"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같은 재기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읽고 다시 읽으니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 소설에는 '피네'가 없고, 결국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영원히 반복-지속되는 파국. '주의'에 있는 "이 소설의 인물, 이름, 장소가 실제와 비슷하거나 같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우연이며 결코 저자의 의도가 표명된 것이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표현도 달리 보여요. 그렇다면 '헝가리인'들은 '우연'에 포함되는 걸까요 아닐까요? 그리고 문제의 '경고'입니다. 함께 읽기의 첫날, 우리는 이 부분을 처음 책을 펼친 우리에게 하는 경고로 읽었었죠. 그런데 다시 볼까요? "그는 바구니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어 닦고 들어올려 햇빛 아래 뜯어보고 사방이 반짝이는지 확인하고는 베어물고 싶은 듯 입으로 가져갔으나 베어물지는 않고 입에서 떼어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는 동안 자기 앞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사과를 들고 있던 손을 무릎으로 떨어뜨리며 깊은 한숨을 쉬고 몸을 약간 뒤로 젖혀 해 아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오랜 침묵 끝에 자신에게 말하라고,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청할 생각이 없었으니 상대방이 이렇게 얘기하든 저렇게 얘기하든 아무 의미도 없을 터였기 때문이요(...)" 이거 어쩐지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어리둥절해서 작가에게 달려온 독자들, 그러니까 우리들을 묘사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나 태연하고 너무나 뻔뻔하게 사과를 굴리더니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해보라'고 하네요. 실제로는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킹받아... "자네들이, 그가 쇳소리로 말하길 결코 내게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고 자네들이 자네 악기를 다루는 것만으로 족하고도 남은 것은 그것이야말로, 자네 모두가 자신의 악기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요, 자네들이 악기를 울리게 하고 말하게 하고--그가 목소리를 높여--말하자면 악기로 하여금 '묘사'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지(...)" "그가 설명하길 '악기'라는 단어는 간단히 말해서 일반적인 의미로서, 즉 누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하는지, 누가 반도네온이나 베이스나 기타를 연주하는지 시시콜콜 따지지 않을 텐데, 이 모든 것이 '악기'라는 말로 한결같고도 적실하게 지칭되는 바이니(...)" 악기는 우리가 가진 것이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악보는 우리 앞에 책의 형태로 놓여 있으니, 결국 우리가 우리의 악기를 다뤄서 울리게 하고 말하게 해야 한다고 하네요. 다시 말해,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읽은 것을 통해 무슨 의미든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역시 킹받아... 모든 책은 끝까지 읽고 다시 첫 장을 읽으면 새로운 부분을 보여주게 마련이고, 그래서 제가 책을 읽은 다음 다시 돌아와 첫 장을 읽기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인데, 이 소설만큼 다시 돌아왔을 때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책은 처음인 바, 어쩐지 오기가 생겨 이대로 소설을 끝까지 재독해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고 잠을 청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오늘 밤 꿈에는 활활 불타오르는 도시가 등장할 예정이고, 따라서 저는 내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공들여 이를 닦고 외투를 걸친 후 거리로 나가 제일 처음으로 눈에 띄는 복권방에 들러 로또을 사겠노라 다짐, 또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로또 되면 좋겠다.
인간의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걸까요?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파괴하고 비극은 반복됩니다. 다 카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또 이 지난한 삶을 살겠죠. 그게 가장 큰 비극이면서도, 자명한 삶의 공리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악기로, 같은 악보로도 다양한 연주를 하니 조금은 달라진 연주를 하기를. 지금은 미국에 있는 누구의 카덴짜를 듣는거 같아서 귀가 시끄럽지만요. 인생은 지휘자도 악장도 없는 오케스트라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점점 나아지는 건지 뭔지 저도 요즘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래도 좋은 책과 사람들이 있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인생이 지휘자도 악장도 없는 오케스트라라도, 그래서 대개는 들어줄 수 없는 연주가 들린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아무도 지휘하지 않지만 기적처럼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화음이 있으니까요.
지난 주말에 완독하고 정리되지 않은 어리둥절함으로 완독후기를 적은 후에 저도 처음으로 돌아가 경고를 다시 읽어봤어요. 그랬더니 작가는 이미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나처럼 경고를 무시하고 악장에게 반항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결국 작가에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게되는 기분을 느끼도록 내용을 배치하고 인물과 사건을 구성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거만하게 연주용 참고자료를 내어놓고 마무리한 것은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고를 새겨들은 이들에게 참고자료는 아, 그렇지!라며 동의했을 내용일테지만 경고를 무시하고 마이웨이로 이해하려던 저에게는 아, 그거였구나...라며 꼬리를 내리고 항복하게 만드는 부분으로 완독의 기쁨은 잠시, 작가에게 졌다는 패배감마저 느껴지는 결말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될 것 같습니다. 반복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모든것처럼 읽으면서 처음처럼 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서, 두번째인데도 왜 그럴까라며 제 이해력에 의문을 갖다가 다시 악장의 경고를 떠올리면서. 아, 고전지수 잘못 줬네.
저랑 비슷한 감상을 느끼셨군요. 졌다... 저도 딱 그런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 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고 하더라도(아마 저도 그럴 것 같은데) 그건 첫 번째 헤맴과는 또 다른 헤맴일 것 같아요. 근데 정말 '경고'까지 다 해주시고... 은근히 친절하지 않나요?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보스턴 리뷰에 헝가리의 사회적 맥락을 짚어준 서평이 있네요. 일부분을 여기에 옮깁니다. (AI 번역인 걸 감안하고 봐주세요. 전문은 여기- https://www.bostonreview.net/articles/holly-case-laszlo-krasznahorkai/ ) ""권력은,"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가 썼듯이, "항상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협력하여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반면에 폭정은 사람들을 서로 대립시켜 협력적 행동을 방해한다. 그것은 "전혀 행동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능력"으로 특징지어진다. 아렌트의 사상은 현대 헝가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자기 의식적으로 미디어, 사법부, 공공 재정에 대한 거의 독점적인 통제권을 축적하고 공고히 했다. 1년 전, 그의 정부는 사립 중앙유럽대학과 여러 NGO를 국외로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헝가리 대학들과 헝가리 과학아카데미를 자신의 정부 의제에 종속시켰다. 그리고 모든 독점처럼, 오르반 정부는 자신에 대한 협력적 행동을 저지하고 종속자들을 의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어제도 여당 연합은 의회 진행을 "방해하는" 야당 의원들을 제재하기 위한 "재갈법"을 통과시켰다. 올해 초 나는 헝가리의 한 대학 교수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정부가 대부분의 공립 대학에 대한 자금을 삭감하고 남은 자금의 분배 권한을 정부 친화적 관료들의 손에 맡긴 후였다. "모두가 줄서기를 하고, 뒷문을 찾고, 그저 버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녀는 썼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통일되고 결정적인 행동, 더 정확히 말하면 저항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부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정부의 도끼가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위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밀도 높고 광범위한 새 소설 '바론 벤크하임의 귀향'이 돌아온 것은 바로 이 헝가리이다. 중국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한 몇 편의 소설을 쓴 후, 헝가리 작가는 그의 출생지인 귈라라는 대헝가리 평원의 중간 규모 마을로 "귀향"하여, 그곳을 다성부 비극희극의 중심에 두었다. 불균형한 이원론(악에 기울어진)을 기본음으로 하는 문체적으로 곡예적인 소설로 알려진—그중 몇 편은 헝가리 예술 영화 작가 벨라 타르에 의해 화려하게 각색되고 변형되었다—크라스나호르카이는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의 일부인 희귀한 특성을 지닌 소설을 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월적이고 어두운 존재에 대한 언급도 있어요. "크라스나호르카이는 현대 헝가리 생활의 단어와 구문을 곳곳에 심는다. 그 효과는 아직 그 근원을 찾지 못한 고조되는 긴장감이다. 이 특이한 전람회 속 마지막 필수 인물은 검은 오토바이 행렬로 두 번 마을을 휩쓸며, 맥주 잔과 심지어 빗방울까지 제자리에 얼려버리는 "악하고, 병들고, 전능한" 인물이다. 그는 "전혀 행동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능력" 뒤의 신비로운 힘이다. 그가 일으키는 분열은 다른 헝가리 비평가들이 제시한 특성화에서 명백하다. 귈라의 한 지역 신문에 글을 쓴 한 사람은 이 악한 남자에게서 "지난 세기 가장 잔인한 [사회주의] 당 인물 중 하나"를 보는 반면, 다른 사람은 빅토르 오르반 자신을 본다. 소설 자체는 단지 "그는 악했다"고만 밝힌다. 그의 본질이 무엇이든, 소설은 악이 그렇게 깔끔하게 외부화되거나 고립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있군요! "영어권 독자들은 "비참한 우연의 일치"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헝가리 독자들은 번역이 가능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이는 번역가 오텔리 물제트의 잘못이 아니며, 그녀는 복잡한 산문을 감탄할 만큼 읽기 쉽고 명확한 영어로 옮겼다. 오히려, 이는 크라스나호르카이가 현대 헝가리 생활의 단어와 구문을 곳곳에 심기 때문이다—거리, 랜드마크, 역사적 인물(바론 자신 포함)의 이름부터, 최근의 정치적 사건을 연상시키는 구절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충전된 참조의 친숙함은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반복적으로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아이러니한 트위스트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것들을 포함하는 스토리라인이 흐려지거나 사라진다. 그 효과는 아직 그 근원을, 또는 더 정확히는, 그 표적을 찾지 못한 고조되는 긴장감이다."
"때때로 그것들을 포함하는 스토리라인이 흐려지거나 사라진다. 그 효과는 아직 그 근원을, 정확히는 그 표적을 찾지 못한 고조되는 긴장감이다."란 표현 정말 탁월한 듯 싶습니다. 이 작품을 싫어하시는 독자분들이 거의 열에 아홉은 문체 때문일 것 같은데 저는 이게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느낌'.(정확한 무엇이라고 지칭하기엔 뭔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을 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분명 작가도 그걸 바라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불안불안하고 불길한 그 느낌을 탁월하게 표현한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독보적 개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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