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저도 인터뷰 찾아보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중에서 몇 부분만 고르는 게 어려울 정도로요. 마음 같아선 다 올리고 싶지만... 듣자마자 귀에 꽂히지만 몇 번 듣다보면 질리는 노래가 있고, 아무리 들어도 와닿지 않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되고 계속 찾아듣게 되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후자인 것 같아요.
책을 덮고, 고전지수 평가를 하며, 이 책이 왜 이계절의 소설로 선택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보여주었던 의미들이 책을 덮은 후에도 문득 문득 생각납니다. 마치 처음 맛본 평양냉면처럼.. 앞으로도 문득 문득 생각나 책을 열어볼 것 같습니다.
평양냉면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물론 평양냉면은 슴슴하고 밋밋한 느낌이라면 이 소설은 정반대지만요.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먹는/읽는 동안에는 ‘이게 뭐지?’ 싶다가도 종종 생각나는 매력이 있는 것이, 갑자기 작가님에게 평양냉면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과연 어떤 뱐응을 보이실지...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작가님이 올려주신 인터뷰 중 이 부분이 참 인상깊네요. "아니요, 내 소설들은 절대 중간 수준에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글쓰기는 완전히 사적인 행위입니다. 나는 내 문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그것은 당신이 나의 가장 사적인 비밀에 대해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사회적 의미에서 작가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결코 문학 생활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당신과 몇몇 다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와 문학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문학에 대해, 특히 내 문학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매우 사적입니다." 읽히기 쉽다는 것, 수월하다는 것은 분명 어떤 공공성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는데요. 사실 우리가 '고전'을 선택한다면 이 공공성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면 이 작품은 이 책에 재미를 느낄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는 인상을 주는데요. 작가는 그것을 '사적이다'라는 말로 표현하고요. 그런데 사적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읽지 않을 이 책을 읽고 저 자신부터 어떤 매혹을 느끼게 되고, 또 이 책을 (거의 역설적인 의미에서) '고전'으로 꼽게 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고 신기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저도 점점 더 문학이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사적인 문학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읽기는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것이 실은 모두에게 널리 읽혀야 할 좋은(그러나 실상은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기 때문에 그 책을 읽고 가치가 있는 고전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좋기는 하지만 거의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이기 때문에 그 책을 읽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 또 그래서 고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엄청난 횡설수설이지만 그래도 ㅎㅎㅎ 인상만이라도 남겨두고 싶어 적어보았습니다...
매번 진도가 밀려 이제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문인 '경고'를 읽으면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본문으로 들어가니 내용이 자극적이어서 오히려 더 잘 읽혔던 것 같아요. 빽빽한 글자들 사이에 숨 고를 부분이 나올 때마다 힘을 받아 더 신나게 읽었습니다. 매 문단마다 바뀌는 '그', '그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덕분에 정신 빼놓지 않고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교수와 남작, 고위 인사들의 분량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목수나 아이들처럼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로 대표되는 인물들의 '사는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해 더 좋았습니다. 이런 인물들이 잊힐 때쯤 카메오처럼 다시 등장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고요. 어쩌면 이들이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경고'와 '연주용 참고 자료'까지 읽고 나니 그제서야 이 소설이 하나의 곡처럼 느껴졌습니다. 특이한 캐릭터의 교수를 내세우는 통통 튀는 도입부터, 묵직한 전개에 이은 남작의 성대한 등장, 불과 죽음으로 표현되는 클라이맥스를 지나 짧고 차분한 결말까지. 전체 내용을 되짚어 보게 만드는 구성인 것 같습니다. 교수와 남작은 어떤 관계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었는데 이 부분은 작가님이 신경 쓴 포인트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남작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세하게 풀리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놓친 게 있나 다시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도 선뜻 시도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 소설이 다루는 사회가 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인간 본성, 부패한 권력 등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에 특색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서 매주 방문을 했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됩니다. 이 공간에 남겨진 다른 독자 분들의 감상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이 두껍고도 심오한 책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성실히 매주 들러 그때그때의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말씀을 보며 남작의 어린 시절, 교수와 딸의 사연, 오토바이 갱댠의 이야기 등 다른 소설이라면 한 권을 채우고도 남을 이야기를 앞뒤 없이 잘라서 보여주면서, 대신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가의 선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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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너무 호평만 소개했죠. 사실 찾을 수 있는 영미권의 리뷰가 대개 호평일색이긴 한데요, 그중 눈에 띄는 혹평이 하나 있어서 여기 옮깁니다. 월드 리터레쳐 투데이의 리뷰인데요. (원문: https://worldliteraturetoday.org/2019/autumn/baron-wenckheims-homecoming-laszlo-krasznahorkai ) “...2016년 원작으로 쓰인 '바론 벤크하임의 귀향'은 지루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산문은 자기 귀중함 속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진다. 작가를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분명히 불공정할 수 있으며, 확실히 여기에는 작품이 빛나는 구절들이 있다. 여기서 그것을 샘플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장이 페이지에 걸쳐 있어 그 효과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일부 섹션은 심지어 베케트에 견줄 만한 지속적인 부조리함으로 돌파하기도 한다. 크라스나호르카이는 문체의 대가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심지어 놀랍도록 현명한 교훈들이 숨어 있기도 하다—그러나, 전반적인 실행은 게으르게 느껴지며, 초안과 같다. 작품의 자기 부정적이고, 종종 평범한 톤과 지루한 단어 선택이 헝가리어에서 더 잘 작동한다는 것도 아마 번역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영어에서, 그것의 많은 부분은 그저 이렇게 들린다: "오, 페리가 더듬거렸다, 하지만 위대한 지휘관은 다시는 그에 대해 듣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조용한 삶을 살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는 조용한 삶을 살았고, 파리 한 마리 다치게 하지 않았으며, 그는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전 생애 동안 작은 파리 한 마리도, 그리고 글쎄, 그의 삶이 어렵고 많은 비극으로 가득 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글쎄, 신경 쓰지 마라, 위대한 지휘관이 말했고, 페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이제 자신이 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공포 이야기가 좋은 결말을 맺는 것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 등등 수백 페이지에 걸쳐 계속된다. 헝가리 문화가 계속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가운데, 이 작품의 가짜 정치적 분노와 우유부단하고 냄새나는 구세계의 매력이 그곳에서는 여전히 관련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슬픈 메타 논평이지만—우리가 그것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일부는 이 책이 크라스나호르카이 작품 세계의 정점이라고 제안할 수도 있다. 그것은 아니다. 그 대신 작가의 이전 책들이나 다른 중요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읽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어떨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우리 발밑의 땅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반영한다, 진흙 속에서 보석을 찾기 위해 고생하면서.”
'작품의 자기 부정적이고, 종종 평범한 톤과 지루한 단어 선택이 헝가리어에서 더 잘 작동한다는 것도' 의 부분에서 생각이 탁, 걸렸는데요. 요즘 제 일상이 너무 건조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하고 지루한 선택을 하며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만연체의 글이나 긴 호흡을 갖고 행위하는 것들에 지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싶고요.
사실 대부분 우리들의 삶은 지루하고, 그래서 '불닭볶음면' 같은 자극적인 맛이나 '도파민 컨텐츠' 같은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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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혹평에 대한 대답처럼 들리는 리뷰도 있어서 함께 소개합니다. ‘더 먼슬리’라는 곳에 실린 리뷰인데요, 평소에는 그럭저럭 읽을만한 번역을 해주는 클로드ai가 여기서는 조금 어색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봐주세요.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시간은 가치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으로 무엇을 할 건가요? 당신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합니까?“라는 구절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스의 책 It’s a good life if you don’t weaken의 제목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한 것도 재밌고요. (원문: https://www.themonthly.com.au/blog/adam-rivett/2020/13/2020/1584057091/make-em-laugh-baron-wenckheim-s-homecoming#mtr ) ”일부 독자들에게 이 영속적인 최대주의는 즉시 불쾌감을 주는 접근 방식이거나, 기껏해야 잘못 적용된 스타일의 비극적 사례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 미화된 기분 전환인 재미를 목적으로 의식적으로 형성된 자료에 웃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바론'과 같은 소설 앞에서 압박받고 도전받아 굴복하도록, 그렇게 영광스럽게 괴롭힘을 당하고 거부당하도록? 앤디 워홀의 'Empire', '일본에서의 라이브'를 마감하는 존 콜트레인의 "나의 가장 좋아하는 것들"의 한 시간짜리 연주, 또는 존 카사베테스의 '남편들'의 영광스럽게 취한 방종적 무형태성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무엇일까요? '바론'에서 중요한 시점에, 관대하게 말해서 이야기 선이 수렴할 때, 나는 책에 기대며 마치 종결이 곧 일어날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리고 더 전통적인 작가라면 해결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이곳에서, 크라스나호르카이는 대신 헝가리인들의 부족한 도덕적 성격에 관한 정말로 긴 독백에 자리를 내주었는데, 이는 끝이 없는 것 같은 영광스럽게 비장한 베른하르트식 폭언이었습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에서 웃음의 싸구려 반응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나타나며, 그것은 정신적으로 항복에 가까운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그러한 확장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불필요한 장황함에 자신을 맡기도록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있지만, 이 질문 자체가 마케팅과 금융의 기름진 언어(시간 가치, 현명한 투자, 견고한 수익 등)로 포장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역겨운 것입니다. 아마도 요즘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이미 자신의 시간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접착제와 판지로 묶인 종이 조각의 직사각형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필요한 헌신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고 있다"고 확신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미 자신들도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지연시키기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가치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으로 무엇을 할 건가요? 당신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합니까? 이 터무니없고 운명이 정해진 나라의 지배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장된 모든 척도에 의하면, 문학은 비생산적인 패배자들의 영역입니다. 확실히 잔인하고 불공정한 운명이지만, 당신은 결코 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주장하며 그들을 되찾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운명에 기대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약해지지 않으면 좋은 인생입니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자기 고백적인 세계관으로 잘 알려진 북미 작가 세스Seth의 대표작. 모두가 잊은 지 오래인 만화가를 찾아 떠나는 일종의 퀘스트 저니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미국 유수 만화잡지 『코믹 저널』에선 '20세기 최고의 만화'의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우리의 시간은 가치가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으로 무엇을 할 건가요? 당신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합니까?' → 이 부분은 공감합니다. :)
저도 그 구절이 오래 눈길이 머무르더라고요. 과연 나의 시간은 가치가 있는지, 나는 나의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나는 종종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고 느끼지만 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것은 과연 옳은 생각인지...
평론과는 상관없이 처음 내가 읽을 때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혼자서 계속 읽는다면 초독으로 갖게 된 편견과 새로운 것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편견이나 거부가 을 없애는데 가장 좋은건 역시 함께읽기인 것 같습니다. 함께 읽을 사람이 없다면 이런저런 평론들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그러니 우호적인 평이든 신랄한 비평이든 다 읽어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가지를 모두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직접 읽으며 받은 느낌인 것 같아요. 함께 읽기를 통해 내가 받은 느낌에 더해 내가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을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알게 되는 건 소중한 일이고요. 평론은 함께 읽기처럼 내가 알지 못했던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고 재미있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참고하기 좋은 것 같아요.
상반된 인터뷰들의 핵심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양분되는 의견의 논지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아요 ㅎㅎ 그리고 개인적으론 후자의 인터뷰의 생각에 더 공감을 합니다. 읽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다라는 발상으로 작품의 효용과 의의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본래 문학의 정신과는 동떨어져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오히려 취향에 안맞다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 더 받아들이기 쉽다는 사실이 문학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보다는 감성과 직관의 영역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문학 독자'로서 작품의 효용과 의의를 찾는 독서에 오랫동안 반대해 왔는데요, 나이를 먹고 보니 저도 모르게 효용과 의의를 찾고 있더라고요. 마치 어릴 땐 소설과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과 중년이 되어서는 돈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요... 이 책과 책을 둘러싼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으며 요즘의 저를 돌아보게 되었네요.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벌써 한달이네요. 처음 읽을 때는 적응이 될까, 어떤 내용이 나올까 생각하며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고 재미있을지 걱정되었는데 재미는 있었습니다. 다만 책의 내용을 반은 이해했나 싶어요. 이젠 지겨워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연체로 이루어진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왜 이렇게 쓰기로 선택했나 싶다가도 내용을 마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매우 생생하게 다가와서 정말 겪은 것 처럼 이 소설의 세계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읽었다는 것도 한 몫 할테지만요. 한줄평을 하자면 다시는 이 작가의 책을 읽고 싶지 않다... 여담인데 내용 중간에 '라슬로'라는 이름이 두 번 정도 나온 것 같은데 유머일지 진짜 라슬로라는 이름이 많아서 아무 생각 없이 한걸지 궁금하네요 ㅎㅎ
저도 헝가리에 대해 몰라서 검색을 해봤는데요, '라슬로(László)'라는 이름은 헝가리에서 상당히 흔한 남성 이름이라고 해요. 헝가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 중에도 라슬로 1세(Szent László, 성인으로 추앙받는 헝가리 왕)를 비롯한 여러 왕과 유명 인사들이 같은 이름을 가졌다고 하네요. 하지만 동시에 크라스나호르카이가 굳이 그 이름을 작품에 넣었다는 것은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흐리는 일종의 메타적인 장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저 역시 당장은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시간이 흐르고 문득 다른 작품을 잡게 될 것 같다는 예감 아닌 예감도 들어요.
저는 4월초 즈음에 완독했습니다. 사실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종종 읽으면서 피식 했던 장면들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식했던 장면을 옮겨봅니다. 그때 이런 비슷한 걸 봤어. 여기서 화염이 솟아오르는 모습과 같았다고, "이건 불이 아니야." 서장이 단언했는데, 그때 지프에 정적이 감돈 것은 그가 하려는 말을 그들이 대충 이해하긴 했으나 이게 불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느냐고 그들이 스스로에게 물었기 때문으로, 여기 가시검불땅의 불은,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큰불'이야 읽을 땐 괴로웠는데 나름 세뇌?가 되었는지 종종 일상에서 만연체로 혼잣말을 하게 되었네요.ㅋㅋㅋㅋㅋ 모두들 수고많으셨습니다!
저도 그 부분 보면서 혼자 웃었어요. 문체라는 게 은근 전염성이 있는 데다가, 특히 이번처럼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만연체 문장에 노출되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문장이 길어져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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