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D-29
이건 내 책이다. 나는 물론 안 읽을 것이다. 이 책은 김태길 교수가 지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수필의 제목과 같다. 나는 다른 책을 읽으며 댓글에 그냥 그 소감을 적을 뿐이다. 나는 매일 책에 감사의 절을 세 번씩 지낸다. 그리고 해마다 책 한 권씩을 내는 게 내 목표다. 지금까지 여섯 권의 책을 냈다. 나는 남은 생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낼 것이다. 나는 아마도 퇴직하면 공기 좋고 조용한 시골 도서관에 다니며 그게 가능하면 독서모임도 갖고 하며, 그런 식으로 책을 주무르며 살다가 저승으로 때가 되면 바로 갈 것이다. 그게 내 남은 생의 목표다.
어느 걸 택할 것인가? 나라가 두 동강 나 있다. 결국 이런 것 같다. 자율(Autonomy)로 사느냐 아니면 남의 밑으로 들어가 그의 지시대로 사느냐 하는 문제. 온건한 민주화가 지지부진하면 나폴레옹이나 박정희 같은 인물이 역사에 등장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난리를 일으킨다. 레닌이나 마오쩌둥처럼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혁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체제가 지속되다가 다른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건 바로 자율이냐,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의 밑으로 들어가 마치 노예처럼 그저 편하게만 사느냐 하는 문제다. 만해 한용운의 『복종』에도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라고 노래한 것처럼 (물론 여기선 사랑하는 사람이나 조국에 대한 희생의 의미로 복종을 말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복종을 바란다는 점에선 같다.) 인간은 자유만 바라는 게 아니라 복종(Obedience)도 바란다. 어쩌면 자신은 의무에서 벗어나 지시만 받는 삶을 더 원할지도 모른다. 주인 밑에서 시키는 일만 하겠다는 것이다. 종교(Faith)도 결국 이런 것 아닌가. 자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는 성정에 따라 자율로 사느냐 남의 밑으로 들어가 안온하게 사느냐 이 두 가지가 반복해서 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율적 인간과 노예적(Slave) 인간과의 투쟁의 역사. 결국 둘의 엎치락뒤치락이 인간 역사 아닌가. 계엄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하는 사람과 계엄 협력자와의 싸움. 전자(자율형 인간)가, 쉽지 않기에 당연히 그 수가 적다. 인간은 항상 정신을 못 차린다. 어리석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영도적(領導的) 지도자를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한 시대엔 그 지도자가 꼭 내란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엄청난 사람이 죽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처럼 그들을 전쟁 부역자(附逆者)로 단죄를 하면 자신들은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한다. 지도자의 밑으로 들어가 그의 지시만 따르는 삶을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는 전쟁을 낳을 수 있다. 전적으로 부모의 보호를 받을 때와, 그 부모도 그때가 자식이 평생 할 효도를 다 받을 때라고 하듯이 부모 자식 모두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니까 좋은 거지, 이런 삶의 지속이 어디 제대로 된 인생이랄 수 있을까.
여자의 가만한 응시 내성적인 쪽에 가까운 등장인물 중 특히 여자가 멈춰 서서 골똘히 아니면 물끄러미 뭔가 바라보는 장면을 대개의 여류 작가들이 곧잘 표현한다. 이런 장면은 내게 아주 임팩트(Impact) 있게 다가와 약간의 전율(戰慄)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그런 장면은 앞으로의 일에 복선의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 후에 일어나는 자살이나 큰 사고의 발생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드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 후 갑자기 오뉴월에 서리가 내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응시가 복선(伏線) 역할도 하지만 뭔가 그 여자가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임 없이 뚫어져라, 아니면 무심히 보는 행위는 큰 결심 같은 것이었거나 해서 그 여자의 캐릭터가 바뀌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가만히 멈추어 뭔가 응시하는 여자는 이제 평소의 그 여자가 아니다. 뭔가 한(恨)의 종식이나 생의 마감을 다짐하는 것일 수 있다. 지금까지 쌓인 걸 이제 끝내거나 포용하려는 행동의 시발점이다. 그 여자에겐 그게 터닝 포인트로 작용한다.
족발은 잘못 만든 곳의 것으로 막으면 느끼하고 질릴 수 있다. 그럴 땐 보관해 두었다가 작게 잘라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먹으면 그런 게 다 달아난다.
허리와 방광 부분이 술을 많이 마셨더니 거북하다. 그리고 기침을 해도 허리가 울려 아프다. 파스를 붙여도 소용없다. 뭐야, 이제 몸이 다 된 것인가?
일본은 위계질서가 있다. 일정한 나이가 안 되면 식당에서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남자는 예쁜 여자에게 처음부터 마음을 바로 주는데 여자는 안 그런 것 같다. 좀 오래된 관계여야 마음을 주고 안심하는 것 같다. 여자에게 묵은 건 별거 아닌 게 아니다. 밤일에서도 여자는 나중에야 달아오른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곧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냥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생명도 있다.
이 세상에서 못 견디는 사람은 사라져 간다.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그들도 있어야 평범한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그들이 사라지니 세상이 얼마나 재미 없어 지나.
일본 식당은 양이 조금이고 저렴해 한번에 여러 개를 시켜 먹는 것 같다.
잘리는 사진을 이어붙이는 것보다 하나로 연결된 파노라마 사진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 눈에 욕심나는 장면을 다 담기 위한 것이다. 인물 사진도 인물만 명함사진처럼 있는 것보다 주위 배경이 있는 인물사진이 더 나은 것처럼 풍경도 파노라마 사진이 더 나은 것이다.
나는 버스터미널 내리는 곳으로 간다 나는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비행기를 잘 안 타지만(그것보다 실은 여행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붐비는 공항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버스 터미널은 좋아한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터미널에 가기도 한다. 구내에 있는 저렴하고 맛 좋은 기사 식당도 자주 애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인천 터미널을 좋아한다. 지하 영풍문고에서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이곳 대합실에서 빈둥거리며 읽고 온 적도 여러 번 있다. 약간 서늘한 대합실 구내와 낭랑한 여앵커의 TV 뉴스 소리, 주변을 급히 오가는 신발 소리, 공중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이런 소음들이 ASMR(백색 잡음)이 되어 내 독서 삼매경(三昧境)을 지원한다. 동서울터미널로 옮겨가기 전, 추억의 마장동 터미널이 그립다. 70년대, 시골 촌놈이 서울 구경 오면 서울깍쟁이가 마장동 터미널까지 황송하게 마중 나와주었다. 터미널은 타는 곳보단 내리는 곳이 한갓진데, 이곳에서 300원 동전을 넣고 자판기 커피를 홀짝인다. 정면 벽엔 YTN 뉴스만 나오는 TV가 걸려 있고, 내리는 사람은 대개 대합실에서 쉬지 않고 곧장 가기 때문에-주로 화장실행-의자가 만석인 경우는 별로 없어 내리는 이곳을 나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타는 곳이 이별의 장소라면 내리는 곳은 만남의 장소라서 그럴까. 지금은 공항에 그 자리를 내줬지만 전엔 이곳으로 마중을 나와 반가운 사람을 맞았다. 한때 번성했지만 이젠 한물간 곳, 그래서 지금은 쓸쓸한 곳을 나만이라도 왕년의 명성과 영화(榮華)를 알아주며 잊지 않겠다는 의지와 의리로 굳세게 방문한다. 우리나라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런 추억의 장소는 보존했으면 좋겠다. 나 같은 인간은 어디 갈 곳이 없다. 정거장, 비 내리는 호남선, 이별의 부산 정거장, 마포종점, 대전 블루스, 안동역에서, 비에 젖은 터미널 등 알고 보면 기차역이나 터미널과 관련된 노래가 많다. 아마도 이곳이 이별의 장소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타는 곳보다 내리는 곳이 좋다. 헤어지는 건 이젠 싫고, 느긋하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 흰 종이컵을 입에 물고 우아하게 마실 수 있어서. 여유롭게 가로로 배열된 긴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가끔은 책에서 눈을 떼 YTN 뉴스를 시청할 수 있어서. 이 순간, 나는 좋다. ● 터미널 내리는 곳의 한산함을 만끽하며 서로 손을 잡고 흔들며 즐거워하는 타인의 만남 구경 ● 맛 좋고 우아함을 겸비한 대합실 자판기 커피 ● 주변 ASMR과 섞여 매진하는 독서 ● 가끔은 YTN 뉴스로 세상 동향 파악, 연예인 가십 기사 음미, 정치인 욕하기 ● 청소 도우미가 다가오면 발을 잠시 올리고, 대합실로 침입한 햇살에 존재가 막 드러난 먼지 입자 응시하며 멍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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