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김혜나 소설가와 [깊은 강] 함께 읽기

D-29
@새벽서가 예전에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남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가족들이 아닌 반려견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집에 들어갔을 때 자신을 반겨주는 존재는 오직 그 반려견 뿐이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더는 할 말이 없어졌어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어떤 사물이라 할지라도 온전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대상과의 교감이 얼마나 커다란가 싶어요. 아무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바라봐주는 유일한 대상...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도 감사한 일이죠.
저는 강아지 두마리를 키우고 있어서 누마다의 경우가 공감이 갔습니다. 사실, 힘든 일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둘에게 베이비톡을 하면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만. 서로 교감한다는 것, 나의 감정을 그 아이들이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Nana 확실히 내가 기쁠 때 혹은 슬플 때 나를 보는 강아지의 표정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단순히 듣고만 있는 게 아니라 듣고 난 뒤 반응해주는 모습에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유기견이었던 강아지를 15년째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눈도 안보이고 귀도 안들리고 오로지 촉각과 후각으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집에 온 건 우연이지만 아이들이 크는 동안 살아있는 역사를 함께 했던 일들로 인해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널까 늘 긴장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체가 이렇게 귀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랜 시간 같이 하고 싶어요~
@커피홀릭이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가족이 된 강아지와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우연이 이어지면 필연이라는 말처럼, 이렇게 나에게 소중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 겹쳐온 우연들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들 행복한 성탄절 보내셨나요? 날이 많이 추운 와중에 모처럼 따듯한 사랑이 넘치는 시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소설 <깊은 강>은 전반부 막이 내리고, 중후반부 인도행이 드디어 시작되네요. 중심인물 중 한명인 '기구치의 경우'는 모두 읽어보셨나요? 전쟁 중 미얀마에서 참혹한 실상을 겪고 전우인 쓰카다와 함께 살아 돌아온 기구치의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전쟁의 참상이야 모르는 바가 아니나, 그것을 실제로 겪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사실적으로 와닿아 놀랍고 괴로웠습니다. 알코올중독 혹은 폭력적인 중년의 가장에 대해서라면 이해하거나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오기도 했으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한강 작가님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여러분은 이런 폭력적인 사람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연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던가요? 누구든 타인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이야기/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폭력이나 알콜중독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한 이해나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몇년을 함께 일했던 친구가 알콜중독자가 된걸 작년에 알았어요. 남편이 몰던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남매까지 몇해 전에 가족 전체를 교통사고로 잃고 많이 괴로워하는건 알았지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때까지 사실 주위에서 몰랐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어요. 얼마 전에 읽은 책을 보니 여러 연구 결과가 알콜중독에 쉽게 걸릴 수 있는 유전자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술을 단 한모금도 마시지 않는다고요. 그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자리 봐가며 적당히 한두잔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새벽서가 그렇죠... 지금 같은 시대라면 전쟁후유증 치료나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혜택이 있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렇게 폭력과 알코올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지인의 아버지도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뒤로 아내와 아이들을 자주 때리고 늘 술에 절어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이라 전문가의 도움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을 테고요.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그런 이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 또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어요. 이 소설을 읽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병원에 입원해서도 계속해서 술을 찾는 쓰카다에게 기구치는 그저 화를 낼 뿐이고, 아내 또한 그저 울기만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죠. 어느 누구도, 가스통처럼 쓰카다를 대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좀 슬프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저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되고요.
어쩌면 가족이어서 친구여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타인은 사건 자체만 놓고 볼 수도 있고, 인간사이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덜 생각하게되잖아요. 그러면서도 이야기 끝머리에 사라진 가스통을 보면서 과연 누구였을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새벽서가 저도 가스통의 존재가 가장 궁금해요. 작가가 의도한 소설적 장치로서 등장하는 인물이겠지만, 그래서 더 생각해볼 공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전쟁은 얼마나 비극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일본은 전범이지만, 전쟁에 참여한 개인에게는, 누가 초래한 일인가와는 상관없이 비참하고 참혹한 경험임을 느꼈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가 떠오르는 챕터였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성격이 바뀌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면서 PTSD 라는 질병명도 생겼죠. 요즘, 트라우마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남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꼰대스러운 사람이지만, 이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의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치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Nana 저도 이 부분을 읽은 뒤 전쟁에 대한 참상을 다룬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언급해주시니 올가 토르카추크의 장편소설 <태고의 시간들>도 떠오르네요. 전쟁의 시기에 여성들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존재하는지 환상적 기법으로 잘 보여주는 소설인 것 같아요. 이 책도 독서모임으로 함께 읽으면 이야기할 꺼리가 많아서 좋을 것 같고요 ㅎㅎ
저는 토르카추크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작가님이 모임하시면 꼭 참석해서 같이 읽어보고 싶어요~
@Nana 이 책으로 모임 하면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 같아서 재밌을 것 같아요 ㅎㅎ 좋은 기회로 또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도 성탄절 잘 보내셨죠~^^ 요새는 무탈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것 같기도 해요. 코로나가 벌써 삼년째이고 북극한파가 영하 45도인가? 이른다 하기도 하구요; 알콜중독자를 어릴 때 본 적이 있습니다. 단골 문방구 주인아저씨였는데, 평소에 무척 마음이 여리시고 뭘 잘주시고 잘 웃으시던 분이셨는데 술드시고 주체를 못하셔서 나중엔 파출소에서 출동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선량하신 분이 저렇게 되실 수도 있구나!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채식주의자의 폭력은 그에 비하면 약과?가 아닌가 해요. 물론 물리적 폭력보다 인식적 폭력이 어떤 지적인 사람들에겐 더 잔인할 수 있겠지만요.
@느려터진달팽이 알코올중독과 폭력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최악이죠 ㅠㅠ 말씀해주신 문방구 주인아저씨는 마치 이 소설의 주제와도 같이 선과 악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일 수도 있겠네요. 그 둘을 분리하거나 분별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갈 것이고, 그렇게 지나가고 또 지나가다 보면 언젠가 저 먼 깊은 강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12월도 벌써 말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네요. 독서모임을 시작한 날짜도 어느덧 19일이나 지났고요. 저는 오늘 소설의 7장 여신 편까지 읽었습니다. 에나미의 안내로 인도 시내 관광을 마치고 바라나시로 들어선 일행의 모습이 보이네요. 전반부에서 언급한 인물들처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안내인 에나미에 대한 서사도 돋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번 장에서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비로소 맞춰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별, 나이, 직업은 물론 살아온 배경과 환경이 모두 다른 인물들의 서사가 어떻게 엮일지 매우 궁금했거든요. 바로 이곳, 성스런 갠지스 강이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여러 인물들의 개별적인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마치 깊은 강으로 흘러들어 함께 유영하는 물고기들처럼요... * 안내인 에나미는 일행을 사원으로 이끌어 차문다 여신을 보여주고 설명해주는데요, 힌두의 수많은 여신 중 왜 하필 차문다 여신일까요? 여러분은 이 차문다 여신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이번 장에서 인상 깊은 부분 혹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많은 이야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는 이소베가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했던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던것 같아요. 모임 시작하자마자 한번에 책을 완독했더니 그새 내용이 가물가물해지네요. “그의 말대로 서로가 공기 같은 존재가 되면, 아내는 아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며, 여자도 아니게 되고 만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부부의 관계를 넘어서 오래되고 편해진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던것 같아요.
@새벽서가 맞아요 이 부분에서 저는 꽤 놀랐어요. 아내에게 자상하고, 아내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고, 아내가 떠난 뒤 공허함에 마음을 잡지 못하는 이소베의 모습은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 상이었는데, 이부분을 보니 사실은 무심하고 냉소적인 남편이었구나 싶더라고요. 겉으로 드러난 모습 너머의 안쪽의 모습들은 사실 우리의 기대나 상상만큼 아름답거나 대단하지 않고, 어쩌면 추악하고 초라한 모습일지도 모르죠... 마찬가지로 간병인 자원봉사를 하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쓰코 역시 자신의 악한 내면을 타인이 알게 된다면 어떨지 상상하고요. 인간과 관계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네요.
“이소베가 몸을 일으킨 뒤에도 그네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저 홀로 흔들렸다. 마치 그의 아내가 죽고서도 그 말이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듯이. 우리들 일생에서는 무엇인가가 끝났어도,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20대 시절 친구의 어머님이 투병 끝에 돌아가셨습니다. 긴 병원 생활하는 동안 서로 최선을 다했음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남은 자녀들은 병원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치료 때문에 음식 제한을 한 것이 옳았는지 등을 두고 오랫동안 힘들어했습니다. 너무 어렸고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의 삶에 긴 시간 영향을 미쳤습니다. ‘깊은 강’을 읽으면서 죽음과 남은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네가 흔들리듯 누군가의 일생에 파동을 남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남겨질 이들을 위해 젖을 내주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병고와 아픔을 견디는 차문다의 운명을 조금씩 짊어지고 있겠죠.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용기가 먼저 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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