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찬 계획을 세우고 계시네요. 연말을 느긋하게 보내긴 힘든 것 같아요. 손카드를 보내신다니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저도 손편지 손카드를 친구들에게 건넸었는데요. ㅎㅎ 요즘은 저도 병렬독서가 더 효과적으로 느껴집니다. 즐겁고 편안한 연말 보내시길요!
<소설가의 인생책> 김의경 소설가와 [청소부 매뉴얼] 함께 읽기
D-29

김의경

Nina
저는 [콘지에게]까지 읽었습니다.
제 연말 휴가는 일월 육일까지입니다. 둘째의 소울푸드, 김치만두를 빚고 찌고 얼리는 일 외에는 뭐든 대충 먹고 대충 치우고 마룻바닥을 기는 굼벵이처럼 동면하는 그리즐리베어처럼 지낼 생각입니다. 구매한 책들도 좀 뒤적거리고 날이 풀리면 낮에는 짧은 산책도 하고요. 아, 저는 온라인 수업 듣는 게 있어서... 잠깐 정신 차리고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
정진호 번역의 [청소부 매뉴얼]을 읽고 있는데 다들 같은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읽다 보면 어딘지 어색하거나 표현이 명확하지 않는 느낌이 제법 들어서요. @새벽서가 님, 한국에 출간되는 외국 소설은 어쩔 수 없이 번역본이라 올바른 어휘 선택이나 문장 해석의 전문성 혹은 이전 번역본의 오류 수정등의 목적으로 개정판이나 에디션이 꾸준히 출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책도 오타가 제법 많네요. ^^ 그동안 제가 읽어본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고종석 번역본(2021)이 가장 매끄럽더군요.

새벽서가
저는 리* 에서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다가 집에 영문판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영문판으로 읽고 있는데, 지금 한국어판 전자책을 보니까 공진호가 옮긴이로 되어 있네요.

Nina
아, 맞아요. 제가 읽는 것도 공진호 번역입니다. ^^

김의경
김치만두라니... 침이 고입니다 ㅎㅎ 초판이어서인지 오타가 보이네요. 쇄를 거듭할수록 사라지는 게 오타인데 말이죠. 그리즐리베어처럼 느긋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오늘은 <울면 바보>까지 읽었습니다. 바실이 너무 답답해서 <울면 바보>를 읽으면서 하마터면 저도 울 뻔네요.... 9번째 질문입니다.
질문9.
“바실, 어떻게 바다를 따분하다고 할 수 있어?”
“너는 따분한 게 없어?”
“없어. 정말로. 난 따분했던 적이 없어.”
“하지만 따분하지 않은 대신 고생이 많았잖아.”
바실은 약간 먹다 만 샌드위치를 옆으로 밀어놓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몸을 앞으로 당겼다.
“칼로타, 이 친구야....... 그러다 지난날을 어떻게 주워담으려고 그래?”
“난 지난날은 필요 없어. 그냥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냥 가던 길을 갈 뿐이야.”
“말해봐, 너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뭘 성취한 거 같아?” -353p
<울면 바보>의 한 장면입니다. 한때 바실은 칼로타를 좋아했다지만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실, 어떻게 00를 따분하다고 할 수 있어?”
여러분에겐 칼로타의 ‘바다’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남들은 따분하다고 하지만 자신에겐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책 제목이어도 좋고 다른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여러분의 00를 알고 싶어요!
(저부터 말하자면... 저는 고등학교 때 ‘삼국유사 읽기반’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동아리가 아니었고 빈자리가 있는 모임에 얼결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어요. 그렇게 그 책을 1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입시에 치여서 그랬는지 그 책이 너무나 재미있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그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읽느냐고 했지만 저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그 책이 재미있었어요.)

새벽서가
저는 ‘사전’이에요. 원래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았지만 직업과도 관련이 있어서 사전을 늘 곁에 두는데요. 십여년전쯤에 지독한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사전을 읽으면 졸음이 오지않을까 싶었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아예 잠자리에 들지도 못하고 사전을 읽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스트레스 받거나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게 싫을 때는 사전을 읽습니다.

김의경
저에게도 요즘은 잘 들춰보지 않는 국어사전이 있는데요 인터넷 국어사전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서 가끔 집어들게 됩니다. 잠자리에서 사전을 들춰보시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즐겁네요^^

Nina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스무살 무렵, 더플백 가득 소설책을 넣고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을 방문해 회원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소설책을 빌려주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예닐곱 권쯤 빌리곤 했는데요. 책을 반납할 때면 늘 그 직원이 묻곤 했습니다. "어떤 책이 재미있었나요?" 저 나름 재밌게 읽은 책을 알려 드리곤 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제가 반납하며 칭찬한 책들을 가방 제일 구석에 넣으시더군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 재밌다고 하셨던 책들을 다른 분들이 모두 너무 지루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음..... 그 중 하나가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소설로 풀어낸 [레 퀴엠]이었다는 게 기억납니다.
보라매 공원 근처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점심시간이 겨우 삼십분이었습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공원까지 걸어서 십 분, 공원 벤치에 누워 하늘 바라보는 데 십 분, 다시 돌아와 오후 근무 준비할 때까지 십 분. 하늘 푸른 날, 구름 많은 날, 바람 부는 날.... 이런 저런 핑계로 점심 대신 하늘로 배를 채우던 때였습니다. "하늘이 밥 먹여주디?" 같이 근무하던 선배들이 웃으며 묻던 기억이 나는군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 너무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져서 지인들 생일이면 예쁘게 포장해 선물을 하곤 했는데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쩌면 나는 과연 호수에 빠져 푸른 이끼로 변해가는 골프공일까..... 잠깐 생각했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안경>을 추천합니다.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섬을 배경으로 슬로우 라이프를 보여주는 일본 영화입니다. 느릿느릿 잔잔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깊이 스며드는 감동이 있습니다. ^^

새벽서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너무 좋죠! 그러고보니 2020년에도 새 작품이 나왔다고 했던것 같은데, 전 마지막으로 본 작품은 <토일렛> 인것 같아요. 방학이 끝나기 전에 그동안 못봤던 작품들을 찾아볼까봐요.
소설책 빌려주던 회사분은 너무 하셨네요! 그런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니나님의 글을 읽다가 풋! 하고 웃음이 났어요. 사실 마이너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김의경
적은 비용으로 소설책을 빌려주는 회사라니 낭만적으로 느껴지네요^^ <레 퀴엠> 이야기 재밌네요 ㅎㅎㅎ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는 저도 좋아하는데 마음이 어지러울 때 보면 차분해집니다. 연말에는 <안경>을 한번 더 보고 싶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오늘 읽은 소설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돌로레스 공동묘지>와 <애도>가 기억에 남네요.
엄마, 엄만 오프렌다에 없었어. 일부러 뺀 건 아니야. 사실 지난 몇 달 동안 샐리와 난 엄마를 생각하며 애정이 담긴 말을 했어.
오랜 세월 샐리와 난 만나기만 하면 엄마가 얼마나 잔인하고 미친 여자였는지 강박적일 정도로 성토했어. 그런데 지난 몇 달은...... 글쎄, 아마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것, 아름다웠던 것, 그런 것들을 정리해보게 되나봐. 우리는 엄마의 농담, 아무것도 놓치지 않던 엄마의 시선을 상기했어. 시선. 엄마는 우리에게 그걸 각인시켰지.
하지만 듣지는 않았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한 5분이나 들었을까. 엄마는 곧 “됐다!”라고 말하곤 했지. -370p <돌로레스 공동묘지> 중에서
<애도>는 이 소설집에서 특히 인상적인 단편이었어요. 집을 좋아하는 나는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은 흑인 우체부의 집을 청소하면서 집안의 물건이라든가 가족사진을 통해 그의 가족에 대해 상상합니다. 그리고 집에 찾아온 그의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죠. 그리고 남매가 화해하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우리 화해하자. 우리 집에서 주말 같이 보내자. 데비와도 친해지게. 우리 라타니아는 한 번도 못봤잖아. 아주 예뻐. 꼭 너 닮았어. 부탁이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은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한다. 울는 외롭게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363p <애도> 중에서
돌이켜보면 저는 저의 인생에 드물게 찾아온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애도란 어떤 것인가요?
(내일 목표 분량은 419p, 모레는 439p입니다. 그럼 모레 찾아오겠습니다.)

새벽서가
좋은 애도라… 이 단어들을 여러번 읽었어요. 그리고, 좋은 애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떠난 후에 남은 가족과 친구들이 저를 떠올리며 울기보다는 웃어줬으면,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생각만 하게 되네요.

김의경
이런저런 재난과 참사를 거치면서 애도는 어떻게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니 좋은 애도란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좋은 애도란 말은 너무 막연하고 어색하네요. 말씀하신대로 망자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웃어준다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새벽서가
위에서 니나님도 말씀하셨는데, 확실히 서양의 장례 문화와 한국의 장례 문화는 많이 다른것 같기는 해요. 미국의 경우 웬만하면 open casket 이어서 관의 뚜껑의 반을 열어놓고 얼굴 부분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고인을 볼 수 있게 하거든요. 그리고, 장지까지도 보통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움직입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운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요. 저는 재작년에 아주버님이 돌아가셨을때 코로나로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을 했고, 고향인 그리스 바다에 뿌려지고 싶다고 해서 국경이 열리지 않았던 작년을 넘기고 올여름에 온가족이 그리스에 갔어요. 요트를 빌려서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섬 여러곳을 돌며 바다에 재를 뿌렸고, 함께한 친구, 가족들이 모두 고인과의 추억과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함께 웃고 울었어요. 그렇게 보내드리고나니 그동안 가슴 아프기만했던 느낌, 마음이 조금 사그러들더라구요. 위애서도 말씀드렸지만, 망자와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애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의경
드라마에 나오는 장례식 장면을 떠올려보면 곡을 한다거나 초췌한 얼굴로 조문객을 맞는 장면.. 이런 것들이 떠오릅니다. 보통 장례식날 경황이 없어서 가족들이 모여서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드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Nina
친한 친구의 아버님과 제 이모부님의 장례 과정을 캐나다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습니다. 친구의 아버님은 교회에서 모든 절차를 거쳤는데 무척 짧고 간단했습니다. 예배 후에 교인들은 각자의 차에 올라 장지까지 이동했는데요. 장례차를 따르는 모든 차량은 앞유리에 장례차량이라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줄지어 도로를 달렸습니다. 장례차량은 신호등이 붉은 색으로 바껴도 행렬을 멈추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예식이라고 할까요. 어느 차량도 장례차량 사이를 끼어 들거나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모부님의 장례식은 좀 달랐습니다. 장례식을 행하는 건물 안의 제법 널찍한 공간에 이모부가 누워계신 관의 상반신쪽 뚜껑을 활짝 열어두어 누구라도 언제든 이모부의 얼굴과 손을 만지거나 곁에 서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흘 간 이모부의 가족은 물론 지인들은 그곳에 와서 이모부를 보고 또 누군가는 마이크로 성경 구절을 읽거나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복도에는 방문자들을 위한 간식과 커피, 음료등이 준비되어 있어 관이 있는 방을 나오면 서너명씩 모여 앉아 망자와의 추억을 이야기 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서너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이모부는 갑자기 돌아가셨지만 저는 며칠 동안 이모와 사촌들과 이모부를 떠올리며 울고 웃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모부의 손은 더이상 따뜻하지 않았지만 갈 때마다 이모부의 얼굴을 보고 손을 만지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수도 있었구요.
한국에서 치른 큰외삼촌의 장례는.... 망자보다는 남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장례식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외삼촌과의 기억이나 추억보다는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이민을 떠난 내가 기억하면 좋을, 큰외삼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한참 주의를 기울였지만 그런 기회는 제게 오지 않더군요. 큰외삼촌과의 추억은 장례가 모두 끝나고 얼마만큼의 시일이 지난 후에 사촌과 만나 나누었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이든 병치레로 오래 자리를 보존하다 떠났든 또는 억울하고 불운한 죽음을 맞이했든, 망자에 대한 애도는 그가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는 순간까지, 남은 이들이 그에 대한 기억들로 그가 머무는 시간과 공간을 채워주는 게 제 생각에는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를 떠나 보낼 상여에 하얀 종이꽃을 빽빽히 꽂는 마음으로....

김의경
그가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는 순간까지 남은 이들이 그에 대한 기억들로 그가 머무는 시간과 공간을 채워주는 것.... 적어주신 문장을 곱씹어 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질문9.
여러분이 생각하는 '애도'는 무엇인가요? (좋은 애도란 말이 막연한것 같아서 정정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2022년의 마지막 날에는 <연애 사건>을 읽었습니다.
루스는 천진난만하고 발랄한 사람입니다. 철이 없는 것도 같은데 사랑스러운 인물이라고 할까요. 연애에 목숨 걸었는지 ‘나’를 팔고서 남편이 아닌 남자를 만나러 가기도 하지만 미워할 수가 없네요. 루스에겐 그런 만남과 과정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같습니다. ‘나’는 그런 루스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루스를 통해 활력을 얻죠.
제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등장하는 <웃음을 보여줘>는 반쯤 읽었는데 내일 마저 읽을 생각입니다. 파출소에 잡혀가서도 제시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제시의 눈을 덮은 피를 핥는 매기를 보면서 심장이 쫄깃했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매기를 비난해야겠지만 매기도 루스도 미워할 수가 없네요.
질문11.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서(이 책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그럼 이틀 뒤에 또 오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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